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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성인 환자를 위하여

25. 치료비는 당당하게

by FraisGout 2020. 6. 3.

치료에 대해 의사가 환자와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대개 이런 일은 비서나 간호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바쁘다며 슬쩍 
피한다, 혹은 월말이나 연말에 청구서를 보내기 때문에 환자로서는 
진료비가 얼마나 되는지를 전혀 알 길이 없다. 어떤 의사들은 아예 
청구서도 보내지 않고 환자가 알아서 결재해 주길 기다리기도 한다. 특히 
환자 친척이거나 병원 관계에 종사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진료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힘들어 아예 무료봉사를 해 버린다. 어떤 의사는 
그와는 반대로 지나치게 과다한 진료비를 환자에게 청구하기도 한다. 또는 
환자의 재산 능력에 따라 진료비를 조절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환자마다 얼마의 진료비를 청구해야 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에겐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타주의 
탐욕주의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의사들에겐 이런 방법상의 문제들이 
진료비 청구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셈이다. 그래서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적당한 요금을 결정하기까지 몇 달씩 청구서 발송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부분의 의사들은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기준을 따름으로써 진료비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즉 의사회나 보험 
회사, 혹은 보건소 등에서 정한 진료 수가 규정에 따라 청구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진료 수가표각 점점 공식화되고, 
진료비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이용되는 추세이다. 이 방법이 편한 것은 
무엇보다 의사 개인이 결정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점점 그 적용 범위가 
넓어져 앞으로 의사는 환자와 직접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떤 의사들은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들이 환자에게 
진료비를 이야기해야 하는 그들의 어려움을 완전히 없애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료보험 계획이 포함된다. 
많은 의사 단체와 환자들 모임에 의해 시작되고, 제3의 단체에 의해 
관리되는 이 계획들은 의사는 물론 환자들까지 진료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의사협회와 환자들 모임, 그리고 제3의 단체가 계약을 맺은 
것이므로 환자나 의사가 개인적으로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더 이상 의사가 돈에 관해서 환자와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가? 또는 더 이상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가? 하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대답은 '필요하다' 이다. 첫 번째로, 
개인적인 몇 년 동안은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환자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진료비에 한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돈은 환자의 생활 전반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환자의 건강, 안녕을 빌어야 하는 의사로서 돈에 대한 이야길 
외면한다면 말이 안 된다. 만약 의사가 환자와 건강 질병에 대해 폭넓고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그는 돈에 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어야만 한다. 환자의 수입원이나 부채, 혹은 환자의 질병에 따른 
치료비가 지급 능력에 대한 두려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진료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돈에 
관한 것이라면 아무리 환자 생활의 일반적인 이야기라도 쉽지 않다. 
환자만이 돈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의사 자신도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돈에는 과민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돈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사람의 걱정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돈 그 자체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돈 그 자체에 
어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동전 수집가나 수전노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돈 그 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돈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돈으로는 옷, 반찬, 
어린이, 장난감, 냉장고 등을 살 수 있다. 이것 하나하나가 환자의 
생활이다. 진료비 청구서는 이 중의 어느 몇 가지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지불할 수 없고 따라서 환자로서는 어려운 고통임에 틀림없다.
  만약 의사가 돈의 이런한 상징적 의미를 깨닫는다면 돈에 대한 이야기를 
왜 완전히 거부할 수 없는 것인지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어질 것이다.
  돈에 관한 한 사람마다 엉뚱한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의 어릴 때 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대개의 
가정에서 어린이에게 돈에 관한 이야기는 쉬쉬하고 감추거나 좀체 똑바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봉급이나 은행 잔고 또는 부채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비밀이며, 헌금이나 세금, 식료품이나 외복비, 또는 빌린 
돈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가 이런 것에 대해 
물으면, 부모들은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라는 둥,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것은 
나쁘다는 등   하며 꾸짖다가, 여하튼 걱정하지 말라고만 하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돈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쓸데없는 돈 걱정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생각한다.
  돈에 대한 부모들의 이런 비밀스런 태도는, 성이나 배설기능에 대해 
갖는 태도와 거의 일치한다. 거기에는 이런 건 어른들만 하는 
이야기라거나, 또는 성을 부끄러워 한다거나, 이런 부끄러움이 이런 것들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창피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 사실 어떤 환자들ㅇ느 돈보다는 성에 관해 더 편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어린 시절 경험들의 결과로 인해, 의사가 환자와 
돈에 관한 이야기한다는 죄책감이나 거부감, 부끄러움 같은 것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입은 얼마나 되나요?" 라고 질문을 하면, 환자는 마치 
"부부생활은 어때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와 같은 모호하고 회피적이며 
불편해 하는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금전상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라는 질문에는, "부부 생활에 어떤 문제라도 있어요?" 하고 
물었을 때와 같이 멍한 눈길과 어색한 미소로 답할 것이다. 남편의 수입 
능력에 관한 질문을 받은 부인은, 마치 남편의 정력에 관해 물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잘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란, 질문을 전지는 
것보다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다. 효과적인 질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기보다는 환자에게 돈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돈이란 환자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환자에게 돈에 관한 이야길 끄집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낯이 간지러울 수도 있다. 아마 환자의 입장에서도 이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해야 한다. 환자의 병이 처음부터 돈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 또 병의 경과중에 돈 걱정을 너무 해서 옳은 
치료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몸이 불편할 떄 돈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져, 
환자에게 치명적인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의사는 그렇지 않겠지만, 만약 환자의 재정상태를 더 깊이 
알고 싶어한다면, 환자가 각 신체 부분에 대해 느끼는 것을 돈에 대한 
태도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환자의 재정상태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료비에 대한 것을 말할 수 있다. 진료비를 결정할 때, 환자에게 액수 
결정의  이유를 설명해 주고, 지불 방법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또 
환자가 묻기 전이라도 진료비는 대개 얼마가 될 것이며, 또 왜 그렇게 
드는지, 혹은 환자 형편에 따라 경감한 내용까지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 만일 환자가 너무 엄청나다고 이야기한다면 그 사실을 불쾌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환자의 생각이 옳기 때문이다. 그땐 반대를 할 게 
아니라 조용히 그렇다고 인정하곤, 아프다는 게 사실 비싼 것이 의사 
개인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당한 범위의 청구라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물론 진료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죄책감을 
느껴야겠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당하게 비싼 진료비를 청구하는 
의사일수록 전혀 이런 죄책감이 없고, 양심적인 의사일수록 진료비를 
청구할 때마다 환자에게 미안해서 쩔쩔맨다. 여하튼 진료비는 엄청나진 
않다 하더라도 대부분 상당한 금액임에는 틀림없다.
  환자가 엄청난 금액의 청구서에 대해서 부담을 느낀다면 의사는 뭐라구 
말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대부분이 진료 
청구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하더라도 동정어린 
말밖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환자에게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은 의사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많은 의사나 간호사가 새로 
온 환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대화중 때때로 믿기 어려운 
일들에 직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주의로 의료보험 가간을 넘긴 
환자가 있다. 이 지압에서 저 지방으로 이사가는 중에 기간을 넘겨 
버리거나, 직장을 옮길 때, 또는 일식적으로 실업상태여서 돈이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무런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의료보험 기간을 
넘긴 한자들의 경우에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환자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에 
가입조차 하지 않는 다. 이런 환자들은 보험을 믿을 수 없다거나, 의료비는 
정부에서 지원해 주어야 ㅎ나다고 주장하다. 또 다른 환자들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다거나, 자신이 아플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경제적으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런 환자들은 가려진 
감정의 그늘 아래에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봄직하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환자를 치료하게 
되었을 때 의사의 도덕적 책임은 무엇인가? 환자의 금전적인 문제에 
연연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환자가 좋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가? 환자가 의료보험 미가입 자라면 의료보험에 가입할 
것을 강요해야 하는가? 만약 그들이 거부한다면, 거부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파헤쳐야만 하는가? 그들이 아무런 대안도 필요없다고 한다면 
환자인 그들을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야만 하는가? 어떤 의사들은 
이런 일에 말려드는 것이 거북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이런 일에 말려드는 
것이 거북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환자들이 의사가 돈에 굶주렸다거나, 진료비를 내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저런다는 식으로 의심을 하는 것이 싫고 두렵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환자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의사에게 그런 생각을 
직접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환자들이 그러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환자의 대부분이 진료비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 순간 환자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환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이 
경제적 참사르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아야 한단 말인가? 결국, 
심각한 병에 걸리면 환자는 엄청난 금액으로 불어난 병원비나 치료비를 
부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 앞에 놓여진 요인들을 알려주고, 
앞으로 그가 처하게 될 상황들을 미리 내다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의사로서의 도덕적 책임이 아닐까? 또한, 고의나 부주의로 그 자신과 
가족을 경제적 파탄, 혹은 자기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환자에게 그 
가능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 좋은 치료가 아닐까?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의사는 그의 화술을 통해 환자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위험한 일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또 다른 가능성은, 환자와 돈에 관해 훨씬 광범위하게 
이야기하는 의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환자로 하여금 일반적인 
의료 정책에 대한 의견이나 지불 방법, 재정에 관한 구체적인 생각들을 
말하게 한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런 이야기에서는 별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보다 넓은 의미의 의료 정책을 이야기할 때, 환자에게 의사 
자신의 견해를 납득시킬 수도 있다. 환자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사실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내 생각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지금까지 제시된 의료 정책 가운데 
최고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있는가? 또 의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나라가 있었던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환자와 의사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정말 새롭고 의미있는 정책,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그런 정책이 없을까?
  만약 더 많은 의사들이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이러한 개발의 씨앗은 이미 심어져 있는 것이라. 의사는 
그들이 환자와 갖는 독특한 관계를 통해 의료 정책 이용자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고 있다. 또 환자들도 하여금 의료 
정책, 환자 자신, 그리고 진료비 모두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을 모색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의사는 미래의 
의료 정책에 훨씬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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