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 정보/암

제1장 암치료 여기까지 왔다

by FraisGout 2020. 6. 16.

    암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생명의 고귀함
  미국 센프란시스코에 필자와 20년 전부터 알고지내는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올해 53세로서 미국에서 30년이상 살면서 시민권도 획득했다.
  1990년 6월. 그는 등부분에서 둔한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췌장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암덩어리는  정상적 췌장의  3 배
정도나 되는 사과만한 크기가 되어 척추를 압박하고 있었다. 부위가 부위인
만큼, 주위의 임파선에 전이되었을 가능성도 있었고 제거 수술을 하게 될
경우 신경을 절단하게 될 위험성도 있었다. 병원 의료진(전문의 6명으로
구성)은 이 종양을 완전 제거하는 것은 어려우며 생명을 보증할 수도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수술을 단념했다.
  장소가 미국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을수
있었고 항암제 투여밖에  방법이 없다는 선고도 받았다. 곤경에 빠진  그는
국제전화로 필자에게 의논을 해왔고, 필자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직감하고서 급히 센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직행해서 주치의에게 그의 상태를 물었더닌 어떻게
해서든 그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주치의와  본인의 양해를 얻어
필자 나름의 지혜를 짜냈다.  항암성 한방약과 암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치료성 건강식품을 강력하게 투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담배와 술을 끊게 하고 식이요법을 하게했다. 또, 운동의  요령,
산소를 많이 흡입하는 호흡방법, 충분한 수면, 암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가짐, 스트레스 해소법 등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지도도 병행해서 
행했는데 환자도 적극적으로 충실하게 지도에 따라 주었다.
  주치의 역시 필자의 설명을  잘 이해하고 이런 치료방법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항암제 사용량을  적당히 조절해 주었던것 같다. 필자의 치료
방법을  주된 것으로 삼고 항암제 사용은 종속적인 치료방법으로 전환시켜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암치료에의 한방약 응용을 아직 정식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는 미국의 현상황을 고려해 보면  파격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그의 치료를 맡았던 6명의 의사들은 “6 개월
안에 사망할 것”이 분명했던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종양역시 점점 작아져
가는  상황을 보고서 “저 환자는 어떻게 된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고 모일때마다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가 건강을 회복한 데에는 본인의 왕성한 투병정신과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필자가 행했던  한방요법인 영구금사지침(금침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법)요법, 항암성  한방약 투여, 항암 성분이 있는  건강
식품인 에바영(항암성 다당체), 드나리에라(천연 베타카로틴), 크로스타닌
골드(N 베타 1-3글루컨), 천연 비타민 C 등등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 내심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합리적인 미국방식
  그 병원에서 필자의 흥미를 끈것은  암환자의 정신적인 안정을 꾀하는 일상
생활지도 방법이었다.
  암치료 방법중 하나로 항암제 점적(한방울씩 떨어뜨리는)주사를 들 수
있다. 일본의 병원에서는 1회 주사를  위해 5~7일동안 입원해야하고 부작용이
심한 때는 3주일 동안 입원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하루 입원해서 
항암제 점적 장치를 부착하고 다음날이면  퇴원하곤 했다. 그 장치는 왼쪽팔
혈관에  카테텔을 깊이 집어넣고 반창고로 팔의 피부에 고정시키는
것이었는데 전기식 점적주사기가 붙어 있었다. 호주머니에 넣을수 있는
휴대용 라디오  크기 정도인 이 기계는 약 1주일 동안에 걸쳐 천천히 조금씩
항암제를  주사해 준다. 그동안 그는 가정에서 그다지 무리가 가지않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항암제 주사가 끝나면 병원에서  간호사가 이 기계만을 떼어가되 혈관속의
카테텔은 그대로  둔다. 그리고 환자 본인이  의사에게 지도받은 방법대로,
카레텔 속의 혈액응고 방지용 주사액을 손수 카테텔에 접속시켜 주사한다.
하루 한번씩, 매일 밤 9시가 되면 그는 꼭 이 일을 실행했다.
  항암제를 주사하면 백혈구가 줄어들므로 한달에 한번 정도씩 혈액검사를
해서 회복상황을 확인한 다음에 두번째 항암제 주입치료를  똑같은 방법으로
한다. 여섯번을 목표로 이런  치료를 한후, 그 결과를 보아 다음번  치료로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단순히
혈액검사뿐만 아니라 초음파 검사나 CT 사진등으로 종양 상태를  살핀 다음에
방침을 정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와같은  점적 주사방법이 일본에서는
의사법에  의해 규제되어 허가되지 않고 있다.

    일상생활속에서 암을 극복한다
  두번째로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것은 환자  본인이 거의 입원을
하지 않은채 가족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점이었다. 자유롭게 텔레비젼을 
보면서 즐기고 자기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산책을 하기도 하면서 암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채 암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그는 손수 
운전을 하고 공항까지 마중나와 주었다. 골프장에도  안내해 주었으며
암환자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을 정도로 늘 밝은 표정이었다.
  일본 암치료법과 비교해 볼때 이런 점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재의 일본 병원에서처럼 암환자들끼리 서로 섞여서 입원 생활을 계속한다면
나을 병도 낫지않게 되는게  아닐까. 암화자를 문병하러 병원에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병원분위기를 통해 그렇게 느끼게 될것이다.
  암환자를 암이라는 스트레스  환경으로부터 멀어지게해 날마다 가족들과
더불어 생활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정신 신경면역 항진효과가 나타나게
되는게 아닐까.
  이렇게 해서 그는 꼭 1년에 걸쳐 동서양 합병치료를 받았고 췌장 종양이
거의 소멸됨으로써 담당의사들을 놀라게 했다.  한방치료와 건강식품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또 항암제 효과가 작용했던 것인지 정확하게 밝힐수는
없지만 경과는 대단히 좋다. 현재는 혈관에 장치해 두었던  카테텔도 떼어내
팔이 자유로워짐으로써 건강하게 골프도  즐길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식욕도
왕성하고  혈색도 예전 보다 좋아져 아주 건강해 보이며 머리카락도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원폭피폭의 후유증?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의사들은 그의 놀라운 회복상태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을때 그가 히로시마시 
교외에 살고 있었다는 점, 피폭자 구호를 맡아 한 경력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어쩌면 원폭 후유증이 아니었을까 하는  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또 
췌장암이라고 생각했었던 종양이 과연 진짜  악성이었는지 어떤지 재고해
보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도 했다.
  곧 수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커진 췌장암은 현대의학의 통상적인
수단으로는 치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단기간에 확실히 사망하는 병이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 히로시마 원폭병원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파견나와있던 이토 지카코
선생과 수행원 몇명이, 그를  만나 검진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미국에는
캘리포니아 주에만도 원폭투하때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주변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이 6백명 정도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 원폭병원의 
의사들을 파견해서 이들 한사람 한사람을 면접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곧 일본에 갈 기회가  있으니 그때 원폭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원폭투하로 부터 4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피해의 흔적이
나타날수 있고 악성 종양을 발생시키기 쉬운 체질로 변했을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도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필자는 1991년 8월, 3개월만에 샌프란시스코의 그를 방문했다. 그가
발병한지 1년 3개월이 될때였는데 주치의에게 최근의 검사결과를 들으니
췌장종양이 처음의 사과만한 크기에서부터 5분의  1이하로 줄어들었고 본인도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등부분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식욕도 컨디션도
좋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생선초밥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저는 살고  싶습니다. 50살 때까지는 식생활도  제멋대로였었지요.
그러나 암에 걸리고 난 지금만큼 절실하게 느낀적은 없었어요.  치료 도중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고통스러운 나날이 이어졌을 때는 이제는
끝이다 하는 생각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30년 동안 이 미국땅에서
죽어라 일하다  겨우 가게 하나도 갖게 되었고 귀여운  두 딸아이도 얻어
한숨 돌릴만  하게 되니 병이 든 것입니다. 그 투병중에 온가족이 힘을 합해
저를  지켜주는 모습을 대하니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다시한번 힘을
내야만 하겠다 싶어 잠못 이루는 밤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얼핏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 박사님, 하지만  암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생선초밥이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박사님 정도 연세가 될때까지 앞으로 20년 남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어요.”

    암에 걸림으로써 비로소 깨달은 삶의 고귀함!
  1991년 9월 그른 히로시만의 원폭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일본에 왔다.
그가 췌장암임을 알고 있었던  병원의사들은 세심한 검사를 했지만 암은
소실되어 완치에 가까운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샌프란시스코의
병원에서 받은 암 치료 방법은 현재 일본에서  하고있는 방법보다 훨씬
진보된 것이라고 단언하더라는 것이었다. 특히 항암제 사용방법이 능숙했고,
입원시키지 않은채 가족들 속에서 안정된 치료를  하는 방법(항암제를
주입시켜 나가는 방법)에도  감탄을 한 모양이었다.
  그의 치료에는 필자가 처방한 한방약이나 건강치료 식품이 덧붙여졌었지만
원폭병원에서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만일 히로시마 원폭병원 의사들중에 동양의학을 연구한 사람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필자가 어떤 한방약이나  건강치료 식품을 그에게 투여했는지, 또
암에 대해 어떤 생활이나 지도를 행했는지 질문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에 대한  반응은 없이 그저 항암제  투여에 관해서만
시종일관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암치료의 새로운 방향
  최근 미국에서는  암치료의 현행요법과 비현행 요법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바로 그 OTA 보고서를 참고하면서 필자나름의 견해를 밝히고 싶다. 1990년
9월, 미국의회 기술 평가국(OTA)은 암조사 위원회를 설치해서  현재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통상요법’- 암의 일반적 치료법(수술, 항암제, 방사선
요법의  세 가지 방법)을 암치료의 유일한  요법이라는 것-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근래 3~40년  동안에 거의 진보가  없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더 나아가서는 OTA 보고서는, 비통상 요법에 의한 수많은 효과
사례를 소개하면서 통상요법의 많은 결함을 지적하고 미국 국립 
암연구소(NCI)및 미국 암학회 대해 비판과 질책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정부와 암연구소에 의한 현재의  암치료및 연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 결과 지금 낭비와 무의미한 노력만을 초래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따라, 식사, 영향, 면역요법, 자연적인 약물, 그리고
자연 면역치유력, 심리적 정신적  요법등의 응용에 의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암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시키고 그 저항력으로 암을 극복하고자  하는 요법,
다시말해서 비통상 요법(뒤에서  언급하게 될 겔슨요법, 케리요법,
레션요법등)이  갑자기 부각되게 되었다.
  이 OTA 보고서는  레너 박사를 중심으로해서 미국  상.하 양원 40명이
3년에 걸쳐 조사한 것인데 그 내용중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 통상요법에 의한 암치료로는 낫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말기
암화자가 비통상 요법으로는 많이  치료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런 사실을 
상세하게 조사해서 이 비통상적 요법을 연구, 국민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
  동향의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에서 
말하는 비통상요법이라는 것이 한방의학적 요법을 가리키는 것쯤은 추측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미국이나  일본에서 암치료에 종사하고 있는 암전문 
의사들(서 양의학에 기초하고 있는 이들)은 통상요법이야말로 암치료의  최고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또, 항암제가 오히려 암에 대한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목숨을 단축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부작용(전신권태증,
식욕부진, 구토증, 체력및 정신력 감퇴, 탈모, 불면, 정신불안정등)으로
고통을 겪고  말기에는 통증과 싸우다가 결국 환자  스스로 서양의학적
치료에 불신감마저 품으면서 죽어가는 예가 많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방사선 요법, 항암제에 대한 의문
  방사선 요법도 역효과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1990년 3월, 방사선 요법
전문의인 브레너 박사가  OTA 공청회에서 행한 증언을 보면 “방사선에  의한
39년 동안의 암치료에서 근본적으로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으며
불만스럽다”고 되어 있다.
  항암제건 방사선 요법이건  마찬가지로, 현대의학에서 행하는 통상요법은 
 종양이 줄어들든지 어떤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확실히, 종양이 있는 위치나
종양크기로 인해 고통이 오는 것이므로 수술에 의해 이것을 떼어내거나
항암제및 방사선으로 축소, 경감시키면  생존기간을 연장시킬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을수 있음을 고려해야만 한다.  격심한
부작용을 동반하지 않은채 생존 기간을 연장시키는 예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또, 암제거 수술을 받은후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가 오히려 종양
재발시 종양이 커지는  속도가 느렸으며 생존기간도 더 길었다는 사실도  OTA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종양을 억지로 없애 버리려고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오래사는
방법이다" 라고 히포크라테스도 말한바 있다.
  1988년 일본 암학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만 미국 NCI의  데이비드
소장은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까지는 암세포에 항암제를  사용함으로써 암을 퇴치시킬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장기 몸속의 유전자 작용으로  항암제를 무력화 시키는
반 항암제 유전자가 생겨나  그 약효를 무력화 시키고 만다는 사실이  최근
발견되었다.
  "이것은 자연계의 동물이나  식물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농약을  써서
해충을 죽였다 싶으면 별개의 해충이 나타나  때로는 인간 자신이 해를
당하는 일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결국, 환자의 몸에는 항암제의
부작용만 남게 된다."
  최근, 병원에 감염증(MRSA)이 문제시 되고 있는데, 이  역시 항생물질을
남용한 결과 일어난 질환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OTA  보고서가 미국에서 발표되자마자 종래  행해졌었던
수술 요법, 방사선 요법, 항암제 요법등등의 통상요법을 대신해서 비통상적
요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래서  OTA는 미국 정부와 NCI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에 부응할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그  연구
자금을 보조하고 병원이나 치료가에게 임상 응용 협력을 요청하며 그 성과를
평가하는 작업을 진척시켜야 한다. 그리고 보험제도의  대상으로서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필자는 이 OTA  보고설를 대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의사들이
동양의학을 연구, 비통상적 요법이라는 동양  의학적 이념에 합치되는 
의료를 암치료에 솔선해서 응용해야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궁극적인 치료에의 길
  통상적인 요법으로는 고치지 못하는 병을 비통상적인 요법으로 고치는
암환자들을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유방암 때문에 유방을
완전히 떼어낸 환자가 수술후  늑막강 속에 침출액이 고여  늑막염을
일으켰다고 가정해 보자. 통상적인 요법에서는 틀림없이 항암제를 사용해서 
이 침출액을 막고 이러한 치료가 최선이라고 발표할 것이다.
  그러나 동양 의학에서는 한방약을 투여함으로써 부작용이 전혀없이 오히려
전신상태를 호전시키면서 치료할수  있다. 한방약에 의한 이러한  치료도
비통상적인 요법의 범주에 들어가므로 통상적 요법인 항암제보다 안전할 때가
있다.
  또, 비통상적  요법에서는 여러가지를  서로 조합시켜서  암에 대항할수
있다. 곧,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한방약, 식사, 영양, 자연 치료 식품(저분자
다당체, 비타민제, 효소제 등등), 정신적 심리적 요법등도 섞어가면서 치료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더욱 진정한 암치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암을 비통상적  요법으로 치유시킨 많은 예들을 의사들이
입증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암환자들은 모두 서양 의학적인  치료에서
포기선언을 당한 말기 암환자들이다.
  다음에 치료법을 열거하고 그내용을 간략하게 밝혀두겠다.
  1. 겔슨 요법
  비통상적인 요법 중에서  가장많인 알려져 있는 영양요법이다.  ‘암식사
요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막스, 겔슨(Max Gerson)박사는 이 요법을  30년에
걸쳐서 완성시켰다. 원래는 결핵에 대한 식사요법이었는데 그 성공률이 99%
이상이어서 1929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 졌다. 그런데 이  요법이 암환자
치료에 성공함으로써 전문가들 사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결핵이건 암이건 결국은 완벽한 영양으로 자연치유력을 높여주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저서『어떤 암 요법, 50인의 치료예』는
지금까지도 영양요법의 바이블이 되고 있다.
  이 영양 요법은 신선한  식품속에 함유되어 있는 살아있는 물질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이용하는 방법이며 저 나트륨, 고  칼륨, 채식주의,
여러가지 약리적 물질을 섭취하는 것이다.
  곧,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섭취하고 염분이나 지방을 줄이는 것이  그
지침이 되고 있다.
  또, 커피 관장으로 체내  정화를 시도하는 방법도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동양 의학에서 복부 내장의 어혈을  제거하는 방법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 된다.
  겔슨 박사는 1959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이론은 동양의학이 미국에 점점
보급됨과 더불어 최근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겔슨이야말로 모든 
비통상적 요법의 아버지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 겨우 이해받는 시대가 오게된
것이다.
  그의 이론을 이어받은 란데스 병원의 레슈넬 박사는 겔슨 요법을 실천해서
그 효과를 발표했다. 항암제를 사용한 다음이거나 병용할  경우 그 효과는
감소되었지만 겔슨 요법만으로 치료한 환자의 효과는 특히 좋았다는 것이다.
  겔슨 요법의 효과는 많은  임상의사들에 의해 입증되었지만 미국 암학회및
미국 의사회(AMA)의 반대로 무시되고 말았다.  1946년 미국 상원 암문제 조사
위원회에서의 대립에  관해 나중에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된  폴링 박사와
1990년 OTA 고문위원인 러너 박사 두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이 겔슨 요법이  본격적인 치료 실험으로서 행해졌다면 암요법의
진보에 크게 공헌할 데이타를 제공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항암제의 연간 매상고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며
일본에서만도 수천억엔에  달한다고 한다. 학회  같은 곳에서 새로운 
항암제에 대한 소문이 흘러나오기만 해도 그 제약회사의 주가가  올라갈
정도이다. 그러니 제약 회사와 의학계, 정계와의 유착 비슷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91년 일본 암학회에서는 “암에는 특효약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동물실험 단계에서 조차 당장 임상에 사용할수  있을 만한 암
특효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학회는 결국, 암에는
예방만이 있을 뿐이며 암을 박멸시키려면 앞으로 20~40년이 걸릴 것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이야말로 비통상적 요법 연구에 진지하게 다가가야 할 때가 아닐까.
  2. 케리요법
  1960년대에 본인이 암에 걸렸었던 치과의사 케리 박사가 생각해 내고 이를
이어받은 의사들이 행하고 있는 방법으로서 체질에  맞는 식사요법, 비타민과
미네랄 효소 보급, 커피 관장 등에 의한 해독, 적극적인 정신요법 등을
말한다.
  케리 박사는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음양 허실과 똑같은 관점에서 체질을 세
가지 유형, 곧  교감 신경형, 부교감 신경형, 조화형으로 분류했다, 앞의
두가지는 자율신경의 지배를 강하게 받은  체질이며 세번째 것은 두가지
신경의 지배력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체질을 말한다.  동양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처음 두 가지는 양의 실증과 음의  허증에 해당하고 세번째 것은
중증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유형에 따라 식사  내용이나 영양의
섭취방법등이 달라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케리 요법의 다른 특징인  대량의 비타민과 미네랄 제사용은 어디까지나
미국적인 방식으로서 동양의학에서는 좀 생각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3. 레비시 요법
  생물학적인 접근방식에 근거한 영양물질 요법 레비시 이론에 의하면
“몸속의 지방산과 콜레스테롤의  조화가 무너짐으로써  암을 일으킨다”고
한다.  레비시 박사는 지방산과 콜레스테롤의  조화를 측정,
미네랄(영양물질)을 이용하여 세포 안팎의 유해물질을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말기 암환자를  다수 치유시켰다. 이 레비시 요법 역시 과학적으로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는데, 서양의학에서 완전히 방치된 폐암, 뇌종양, 유방암등을
치유시킴으로써 많은 암환자들로 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겔슨 박사도 레비시 요법을  칭찬하면서 “암은 미네랄에 의해 지배되는
몸속의 전기적인 작용과 산화효소의 작용으로 귀착된다”고 말한바 있다.
  또 겔슨 박사는 “농업에서  화학비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암이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일단  생긴 암도 고치기  어려워 졌다. 이것은  화학비료속의
과잉질소에 의해 토양속의 셀레늄이 암에  대항하는 효과가 없는 셀레늄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식  농업에서는 암이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말하고 있다.
  암치료에는 여러가지 미네랄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특히 셀레늄이 암에
대항하는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셀레늄도 지방과 
결합시켜서 사용하지 않으면 암세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지방과
결합됨으로써만 암에 효과를 발휘할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레비시 박사는
“지방산, 그리고 미네랄 중의 셀레늄이 암에 효과가 있다”고 주창했으며
겔슨 박사도 똑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4. 행동및 심리요법
  암 환자의  사고방식, 생활방법 등을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행동이라는 것은  생활리듬을 말하며 심리요법이란는 것은  정신
신경 면역학을 기초로 하는 방법이다. 이 요법에서 유명한 것을 살펴보자
  A. 사이몬트 요법
  환자의 무의식적인 마음을 치료에 활용하는 이미지 요법이다.
  암과 싸우기 위한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방법으로서 ‘기공’과 아주
비슷한데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몸안의
긴장을 명상이나 휴식속에서  조용한 호흡과 더불어 풀어나가는  한편으로는
긴장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기공과 같은  방법으로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NK세포(네츄럴 킬러셀)라든지 기타 면역세포를 증가시켜 활발화시킨다는
것이다.
  B. 레션요법
  자기의 노래를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한다.
  비통상적인 요법으로서의 심리요법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로,
의사가 1대1로 환자들을 지도하는  정신 요법이다. 레션박사는 임상  심리학
전문의였는데, 암의  원인에는 정신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쁜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암환자 자신에게 깨닫게 해
삶의 보람이나 정열을 끌어냄으로써 의식의 전환을 일으키고 암을
극복시킨다는 것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  『전환점으로서의 암』 속에는, 암 환자가 나쁜  점을
문제시하지 않고 자기에게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삶의
의의에 대한 의식과 삶의 방향 전환을 올바르게 하면 면역력 향상에 의해
치료효과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 옳은을  그는
“자기의 노래를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한다”라는 추상적인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C. 미어즈 요법
  명상 요법에 의해 면역기능을 보다 활발하게 만들고 암을 퇴치시키는
것이다.
  이상에서 예로든 세가지는 그것을 주장한 의사의  이름을 딴 유명한
요법이다. 이런 요법들에서는 항암제나 방사선 요법이 유해하다고 딱잘라
말하고 있다. 또, 항암제나 방사선  요법 경험자들은 심리요법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다음과 같은  치료 예도 있다. 왼쪽  폐암에 걸려 조직검사를 받은  65세의
모 의과대학 교수는 악성 암이기 때문에 6개월  밖에 못산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런 사실을 통고받은 그 교수는 마음을 다잡고 불교의  가르침에 푹
빠지는 한 편, 병원 일에 전력을 다해 목숨을 걸고 병자들을 위해 계속
일했다.
  그런 와중에서 폐암은 진행되지  않은채 서서히 퇴화되었고 그는 그로부터
17년을 더 살다가 82세때 갑자기  장 폐색을 일으켜 수술을 했으나 사망하고
말았다. 생전에 그가 바랐던 대로 해부를 해보니 왼쪽 폐암은 자연 치유되어
있었다.
  이러한 예는 가끔 있는 것들이다. 사람이 어떤  마음의 깨달음을 얻었을 때
뇌의 작용이 지극히 활발해지고  면역력이 왕성해져서 암을 치유시킬수 있게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예들이다.  부처님의 마음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주어진 자기의 생명에 감사하고 남은 여생을 최대한으로 활용함으로써
면역력을 항진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조화를 이뤄야
  서양의학으로부터 한방으로
  필자 역시  내장 외과의사로서 위암, 대장암등 갖가지 종류의  수술을
해왔고 종양을 제거하고서는 성공했다고 생각해 왔었다. 특히  조기 암일
경우는 성공율이 높기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로부터 감사받고 종경을  얻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또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괴상한  장소에 생긴
암이나 이미  늦어버린 암 환자에게는 항암제나 방사선 요법을 행해 왔다.
  30여년 동안이나 이런 전형적인  외과 의사였던 필자는 그러나 서양의학의
유물론적 과학에 점점 의문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의료에는 불교
철학이나 정신의학 같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나름대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1973년 결단을 내려 20여년간 경영해 왔던 병원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런 다음 73년부터 74년까지  한국 서울시에서 1년동안 한방 의학을
공부하기 위한 유학을 했다.  다행이 좋은 한방 명의로부터 전속지도를
받을수  있었고 또 한국의 한의과 대학 견학과 연수를  할수 있는 기회도
얻어 일단 한방의학에 대한 기초를 다질수 있었다.
  이 1년 동안은  필자의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시련의  시기였다.
서양의학으로 단련되어 30여년 동안이나  그 길을 계속 걸어왔던 의사가,
전혀  다른 시점에서 의학을 대하는  셈이었으므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몹시 힘이  들었다. 그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 중의 학교 교수를 비롯한
여러분들의 지도를 받아 공부를 계속해 왔다.
  한방 의학을 기초로 삼고 여기에  서향 의학 경험을 덧붙인 치료를 시도해
보자. 비로소 암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서양의학과  한방의학,
두개의 기둥위에서 보면 병의  근원이 지극히 잘 이해되고  진단이나 치료도
적절해 진다. 서양의학에서 난치병으로 여기고 있는 갖가지  질환이 한방적
치료에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치유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암이라는 병을 다시  살펴볼 경우, “암이라는  종양은
사실은 암 질환의 하나의 증상일 뿐 병 그자체는  아니다”라고 말할수 있다.
암의 정체는 그 종양과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커다란 다른
질환이 있는 것이다. 종래의  암치료 요법에서는 빙산의  일각과 마찬가지로
증상이  되는 종양을 제거하는데에 전념해 왔다.  수십년이 지나도
현대의학이 암을  박멸시키지 못하는 것은, 서양의학에서는  암 연구가
오로지 유물론적 해소에만 급급해  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왜 환자에게서 감사를 받지 못하는가
  필자는 1974년 말부터 요코하마 시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다. 동양의학을
중심으로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7년 남짓 되는 셈인데 일본 전국에서
암 환자들이 상담을 해오고 있다. 암 수술을 받은 사람, 앞으로 수술이나
항암제 치료를 해야할 것인지  망설이는 사람, 말기 암으로 수술조차 할수 
없아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논하러  오는 환자 가족, 암이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를 의논하러 오는  사람등등 암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근래 몇년 동안 급격하게 증가되었다.
  그리고 어떤  병원에서나 암에 대한 통상요법이  행해지기 때문에
부작용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 여러가지 의문을 품다가 하소연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수술, 항암제, 방사선 요법이라는 뻔한 치료방법에는 
뭔가 불안감과 불신감이 따르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의  신뢰 관계가 꼭
순조롭게 이루어 지고 있다고는 말할수 없을 것 같다. 병원의 많은 
의사들이나 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서 감사를 받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현재와  같은
의료체제 아래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통상요법에 고액의 의료비가
지불되며 이런  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병원 경영도 불가능하므로 자연히
통상적  의료에 중점이 놓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비통상적 요법에
대한 의료비는 거의 지불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의료중에서 크게 힘을 주어 실행해야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암을 치료할 때는 그 환자의 심신 종합 치료를 주로 해야 하고 국소적인
치료는 그에 부속시켜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몇 년 전부터
포괄적인 전체 치료가 자주 거론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암 덩어리를 떼어 내는데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주된 치료를 행하지 않으면
재발하게 된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동양의학의 진수
  최근 필자의 병원에서 있었던 예를 소개해 보자.
  42세때 자궁  근종(가족들에겐 자궁암으로 전달되었음)진단을 받고  자궁과
난소 전체를 떼어낸 56세의 여성환자의 예이다.
  그후 경과는 좋았지만 6년정도 지난 다음에 왼쪽 유방에 암이 생겨서 왼쪽
유방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방사선 요법과 항암제 투여도 행했다.
  그러나 그 3년후, 오른쪽 유방 역시 암으로  제거했고, 방사선및 항암제
투여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전신이 점점 약해지고 체력이 감퇴하면서 식용도 차츰 없어져
갔다. 42세때  60 킬로그램까지 줄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왼쪽팔과 오른쪽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뇌에
무엇인가가 생겼으므로 상세한 검사를  위해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그 환자는
입원을  할 경우 뇌종양이니 뭐니 하면서 또다시 제거 수술을 받으라고 할 게
뻔하다면서 필자의 병원에 의논을 하러 온것이다.
  환자는 원래 명랑한 성격이어서  병에 걸린 다음에도 그다지 끙끙거리지
않았으며 의사의 말대로 수술도 받아왔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체력도 저하되어 있었으므로 입원도 수술도 모두
거부하게 되었고 서양 의학에 대한 의문조차 품게된 것 같았다.
  필자는 우선 이 환자를  전신 쇠약및 기력 저하에서부터 회복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국소검사및  뇌중추 검사를 뒤로 돌린채 다음과 같은  검사를
행했다. 간단히 항목별로 보도록 하겠다.
  첫째, 환자에게 안심감을 주도록 충분한 지도를 한다.
  둘째,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잘 먹을 수 있도록 한다.(가족의 협력 필요)
  세째, 한방약과 건강식품을 섭취하게 하고 체력증진을 시도한다.
  네째, 운동과 심호흡  방법을 병행시킨다. 특히 운동은  펴고 굽히기,
비틀기를 점점 강도 높게 하도록 한다. 폐, 간, 위, 신장, 장을 움직이면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보급하도록 한다. 그리고 피 흐름이 좋아지도록
꾀하도록 한다.
  다섯째, 목욕으로 몸을 청결하게 함은 물론 피 흐름을 촉진시킨다.
  여섯째, 필자의 병원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 우선  한방약을 주는데 영양의
소화 흡수를  촉진시키고 체력을 항진시키는  보약을 만들어 준다.  이어서
체력에 맞는 침치료 및  마사지와 온습포 요법등을 행한다. 이 방법으로 
회복을 촉진시킬수 있다.
  이런 치료법에  의해 환자는 3개월만에 체력이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체중도 48킬로그램이 되었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가면서 병원에
다녔지만 2개월이 지날  무렵부터는 혼자서 다닐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팔다리가 저리는 증상도  없어졌고 명랑함도 되찾게 되었으며, 머리
역시 멍해지기는 커녕 더욱 맑아져서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6개월  정도
지나자 체중이 54 킬로그램이 되어 보통의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정도가
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현재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나  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암을 이길수 있고 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른지 한방
의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