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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정보/암

제2장 고통이 심한 서양의학적 치료

by FraisGout 2020. 6. 16.

    수술은 어디까지나 신중하게
  주치의가 “수술하자”고 할 경우 당신이 환자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싫은데요”라고 즉석에서 대답할수 있을까.
  일본에는 특히 의사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풍습이 있다. 하물며  수술이
필요하다고 할 경우, 웬만해서는  “싫다”고 하지 못한다. 더우기 그 의사가
유명한, 권위  있는 의사라거나 대학교수하라도  된다면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결국 승락을 하게 되고 만다.
  그렇지 않을 경우라 하더라도 환자  자신이 병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데다 열성적인 의사로부터 에스레이  사진이니 갖가지 데이터를 기초로
한 설명을 듣게되면 “그러겠다”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일단 제거해 버릴  경우
인간의 장기는 결코 원상복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생이 단 한번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몸 역시 하나요, 장기도 하나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공자가 제자인 증자에게 “효는 덕의 근본이다”라고 가르쳤다는 효경을
보면 "신체발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다. 이를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라는 글귀가 있다. 이것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수술을 하기전에 이것만은
  의사가 “수술하자”고 할 경우 다른 전문의를 찾아 다시한번 검사를 받고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 의사도 똑같은 의견을 밝혔다면 이번에는 다른 분야의 전문의를 찾아가
의견을 들어본다.  그 의사 역시 마찬가지라면  그 때 비로소 가족들과 
의견을 해 보되 마지막 결정은  자기 자신이 내려야 한다. 무턱대고 제거하면 
결국 후회만 남기게 된다.
  안이하게 수술을 받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식도 암 적출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예, 정형 외과의
인공 금속 삽입 수술에 의한  후유증 문제, 치과의 턱뼈내 인공 금속  치근
형성 실패 예 등등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필자의 전공인  내장 외과 분야에서도 위를  절제해서 위궤양의
고통으로부터 환자를 구해낸 일은  있다. 하지만 수술을 받은 환자는  나머지
1/3의 위를 갖고 살아가야만 한다. 다른 장기와의 균형이 이루어져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을 만한 상태가 되려면 50대 연령에서 평균 6년이 걸린다.
  그런 세월 동안에  그 사람의 체격이나 체질, 때로는 성격조차  ‘허증’
형태로 바뀌게 된다. 약한  체형으로 바뀌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위를
끊어냄으로서 간장이나 장 등 전신의  기능이 이에 익숙해질 때까지 생체에는
대단한 고통이 따른다.
  바꾸어 말하자면, 외형으로나마 내면적으로나  튼튼하고 강하게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수술결과  때문에 갖가지 수반 증상(설사, 변비, 빈혈,
음식 섭취량 감소 등등)을 일으켜 전신이  허약한 상태가 되어 힘든 일은
하지 못한 채  연약한 인생을 보내지 않을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5년이나 10년후 원래의 자기모습을 되찾는 수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한번은 이러한 터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한 쪽에는 병마를  제거해서 명의가 된 기분으로  으스대는 의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허증’이 되어 인생도  몸도 허약해진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외과 의사는 늘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리라.

    방광암이라는 오진을 받은 환자(최근의 예에서)
  1991년 7월, 64세의 남자가 부인의 부축을  받으면서 손에 인공 방광
주머니를 들고 우리 병원에 나타났다. 환자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작년부터 소변이 잘 안나오더니 올해 2월 부터는 피오줌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차츰  몸이 나른해졌다. 시간이 감에  따라 혈뇨는 점점 심해졌고 
몸이 붇기 시작했다. 5월에, 다니던 병원에 입원해서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그 동안에도 증상은 점점 심해지기만  해서 복수가 차고 배가 부풀어
올랐다.  병원에서는 신장 기능 저하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왼쪽 신장에
카테텔을 삽입하기도 하고 요도관을 집어넣어 방광으로부터의 소변배출을
시도했다. (손에들고 있는 주머니는 요도 카테텔에서 배출되는 소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엑스레이 사지을 찍고 방광경  검사를 했는데 방광암일 것이라면서 방광
적출 수술을 권했대. 수술 후에 인공 방광을 부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완강하게 수술을 것부했더니 병원으로서는 더이상 방법이 없다면서
퇴원하라는 것이었다. 어쩔수 없이 퇴원하고 나서, 처음 검진을 받았던 동네
병원에서 이 병원을 소개하기에 찾아오게 되었다.”
  환자가 갖고 온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방광 부분에 사과 크기의 두배 정도
되는 그림자가  있어서 골반 속으로 쏙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암인가 걱정하면서 하복부에서부터 골반부를  손가락으로 세심히 촉진해
보았더니 단단한 종양이 아니라  오히려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왔다.
환자가 평소 고기, 우유, 계란을 좋아하고 장에 가스가 많이 차며 붉은
얼굴의 비만체라는 정황에, 이런 촉진결과를 종합해본 필자는 고지혈증
체질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암이 아니라  평소의 식생활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났으니 안심하고 필자의 지도를 따르면 건강을 회복할수 있다고 설명해
주자 환자와 가족들은 모두 몹시  기뻐했다. 이루 필자는 고기, 우유, 계란을 
일절 금하고 식물성 식품으로 바꾸는 한편 동양 의학적 치료법으로서 필자가
연구해온 침 치료를 행하면서 한방약과 건강 식품을 먹게 했다.
  며칠 후 환자가 전화를  걸어와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복수도 사라졌다.
출혈도 줄어들어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등등의 보고를 했다. 그러면서 
소변에 솜 같은 하얀 침전물이 많이 섞여  있어서 카테텔을 씻지 않으면 막혀
버린다는 말도 했다.
  2주일 만에 다시 왔을 때 환자는  완전히 건강해져서 끊임없이 웃음을
지었다. 카테텔도 3개월 후에는 제거했다.
  필자의 병원에서 행한 혈액 검사에서는 신장 기능 저하와 가벼운 당뇨병이
있었을 뿐 암 반응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환자는, 고기, 우유, 계란이라는 3대 발암  식품을 과식함으로써
신장 기능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것이다. 요산  과다가 되어 그것이 
신장출구나 방광 안쪽에 달라붙어서 두꺼운 벽을  만들게 됨으로써 엑스레이
촬영에서 마치 종양과도 같은 음영을  나타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방광을 떼어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어  등즐기가 오싹해지기조차 했다. 
이 환자는 필자의  병원에 다닌 지 6개월만에 신장 기능도 회복되고 방광도
완전히 정상화되어 건강해졌다.

    적출 수술로 인한 집단소송
  부정 수소라는  증상은 여성들이  갱년기(주로 40세~50세쯤에 온다)에 
월경이 폐쇄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나타난다.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 증상은 머리가 아프다, 어깨가
결린다, 무엇인가를 머리에  뒤집어 쓴 것같은 느낌이 든다, 쉬  피로를
탄다, 때때로 일시적으로 땀이 확  나면서 안절부절 못한다 등등이다. 이런
증상을  통털어 부정소수라고 하는데 심하면  정신 상태조차 불안정해 진다.
하지만 그  고통을 숫자화시켜 나타내 보일 수도 없으니 그저  막연할
뿐이다. 따라서 현대의학에서는 진단을 붙이기도 어렵고 적절한 치료법도
없다.
  몇 년 전 오사카의 어떤 의사가 삼십 여명의 여성들에게 자궁 근종 적출
수술을 했다가 집단 소송이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보통은 초음파 진단기나
CT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진단하는데 이 병원에서는 브라운 관에 비치는 자궁
영상이 조금이라도 크다거나 변형되었거나 하면 자궁 근종이니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여러가지 병이 발생하게 되며 암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고
절반은 위협해서 수술을 해 자궁을 떼어내 버렸다.
  수술은 물론 의사가 했지만, 원해 의사가  해야할 초음파나 CT의 진단및
설명을 의사가 아닌 병원의 여자  이사장이 했다는 점에서 의사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결국  병원측은 의사법 위한  환정으로 유죄선고를 받았지만 
무리하게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여성들에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부정
수소 후유증이 남게 되었다.
  삼십 여명의 여성들은  집단 소송을 내서 후유증  치료비와 위자료 청구를
했다. 재판 과정에서, 적출된  자궁이 법정에 제시되었는데 그 중에는 근종이
아니므로 적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도 있었다고 한다.
  자궁 근종으로 인해 적출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을 경우이다.
  첫째, 암이거나, 암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
  둘째, 근종이 몹시 커져서 하복부나 허리  부분을 압박함으로써 하복통이나
요통이 심해졌을 경우, 근종이 장과 유착되어 합병증을 발생시킬 염려가 
있을 경우
  세째, 월경 때 출혈이 심해 빈혈을 일으키며 위험한 상태가 계속될 경우
  이상과 같은 세가지가 일반적으로  자궁 적출술을 시행하는 경우이며 그
이외의 경우에는 가능한 한 하지 않아야 한다.
  폐경이 되면 자궁도 점점 위축되어 작아지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두세가지
증상이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 자궁이 활동하고 있는 동안은 자궁  홀몬을
내보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궁은 여성에겐 문자 그대로 아주 중요한 기관이므로 평생 그대로
지니는 것이 이상적이다. 아직 젊은 30대, 40대 나이에 자궁을 떼어낼 경우
부부 사이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자궁을 떼어낸 다음에 일어난 일
  필자가 병원을 경영하고 있던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다. 산부인과 과장이,
어떤 환자의 자궁 근종수술  허가를 요청해 왔다. 증상으로 보아 떼어내야 
한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46세 된 그 환자는 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1년후, 환자의 남편이 수술이후 부부 관계가  전혀 없어져서
신생이 어떤 면에서 무미건조해지고 말았다는 말을  했다. 이 부부는 심리
요법을 통해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러한 예는 상당수 있다. 의사에게 의논을 
해 오는 경우는 드물며 다른 사람에게 내 놓고 할 만한 이야기도 되지
못하므로 가정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쓴 경험이 있다.
  55세된 여성이 커다란 자궁  근종으로 인한 요통에 시달리다가 병원을
찾아왔다. 산부인과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고 원장인 필자도 이에
동의, 산부인과 과장 집도하에  수술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수술을 돕고
있었는데  자궁 근종을 제거한 후 직장의 골반쪽에서  조개처럼 편평한
모양을 한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직장암임을  직감했다. 급히 필자가 집도 의사가 되어 외과 수술로  전환,
수술에 참여한 다른 네 명의  의사들의  협력을 얻어 직장암도 무사히
떼어냈다.
  1965년 무렵의 일이니까 지금처럼  초음파 진단이나 CT 진단법 같은 것도
없었고 혈액검사를  비롯한 수술전 검사도 불충분한  상태에서 산부인과적인
일반 검사로 자궁  근종 진단을 내리던  시절이었다. 산부인과와 외과 
사이에 횡적인 연결관계가 적고 수술전 각 과와의  검토도 드물었던 것이
이런 결과을 빚은 샘이었다.
  이 환자는 경과가 좋아서  곧 퇴원했디만 암이 온몸으로 퍼져서 수술
1년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현대와 같이 의학이  발전되어 있었다면 사전에 
자궁 근종과 직장암이 모두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노종양인가 노출혈인가?
  필자의 병원에 얼핏  건강해 보이는 38세의 회사 중역이 찾아왔다.  밝고
적극적이고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스트레스가 많은  두뇌 노동을 한다고
했다. 담배 하루에 2갑, 커피 5잔, 밤에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위스키 열 잔 쯤을 마시게  되고 식사는 불규칙한 생활을  십 여년
계속해 왔다.  그 때문인지 얼굴색은 검붉고 피부에는 윤기가 없었다.
  단, 혈압도 정상이고 식욕  역시 보통은 되며 변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보고 수면시간도 8시간은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큰 키에 보통 정도의
근육, 겉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약 5년 전부터 
목과 어깨가 자주 결리더니 최근에는 심할 때면 왼쪽에서 아픔까지  느낀다고
했다. 어느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구급차로 병원에  옮겨져 그대로 입원을 하게  되엇다. 1시간 정도 지나
의식은 회복되었으나  양 손가락 끝이 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런 증상도 곧 없어졌다.
  병원에서는 머리 부분 엑스레이를 찍기도 하고 CT로 단층촬영을 하기도
하고 척수액을 뽑아 검사를 하기도  하면서 쓰러지게 된 원인을 찾아보았으나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5일 후 다시 MRI로 뇌 단층 촬영을 했더니 소뇌 왼쪽에서 큰 매실 크기의
종양 비슷한 음영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어쩌면  노암일지도 모른다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MRI 사진을 들고 필자를 찾아온 것은 쓰러진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진찰 결과 종양이 아니라 소뇌 부분의  모세 혈관 일부가
파열되어 나타난 일과성 출혈 같았다.  그 근거는 말초신경의 운동마비가
사라졌다는 점, 보행장애가 없다는 점, 증상이 그때에만 나타났을 뿐 그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만성적이 아니라 급성적인 증상이라는 점
등이었다.
  필자는 수술할 필요는 없고 자연 치유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리고
환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오히려 일상  생활의 개선이 중요함으로
담배, 알콜, 커피를 중지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애쓰며 밤에  술자리를
줄이면 완치될수 있다고 충고했다.
  마음을 푹  놓은 그는 기운을 되찾아  일상 생활의 개선에 애쓰고  있다.
그후 몇달이 지났지만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대로
완치될 것이다.
  병원에서 암을 의심하고 수술을 했다거나 항암제를 투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으니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것 같다.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재발한다
  제2, 제3의 암도 일어날수 있다
  대장암 수술을 한후 전이되지 않고 무사히  나았다. 위암으로 위를
제거했으므로 완치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괜찮다’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수술후 5년이  경과하지 않을 경우 치유되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 또, 5년이 지난 다음 똑같은 암이 생길경우 이것은 지난번 암과는
달리 새로 생긴 것이라고 해석한다.
  암의 국소만을 제거해도 그 근본은 낫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암의 근본은
항상 몸에 붙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대장암이나 위에 생겼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2, 제3의  암이 다시 생길 것임을 각오하고 믿을만한 
의사의 지도를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암 인자로  여겨지는 것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는 한 제 2의 암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잘라내 버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필자의 병원에  오던 환자중에 45세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39세때
암으로 왼쪽 유방을 완전  적출했고 코발트 치료를 24회  받아 일단
좋아졌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다시 3년후 이번에는 난소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항암제와 홀몬 요법을 병행해서 머리카락이 완전히 빠져 나가고  구토,
오심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이번에는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면서 의사의 수술
권유를 받았으나 이제 더이상  수술을 받는게 지긋지긋해 필자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폐암 부위는  너무 넓어서 이미 손을  쓸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지금 수술을 해봐야 후유증 때문에 고통만 더할 뿐이기에 가족들과 상의해서
수술은 물론 항암제나 방사선을 일절 중지하고 한방치료를 중심으로  치료해
나갔다. 환자는 비교적 건강상태가 좋아졌고 고통을  호소하지 않은 채 3년후
폐암으로 편안히 사망했다.
  이 경우에도  볼수 있는 바와 같이, 그저 병이 생긴 부위만  잘라내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가 퇴원한다고
해보자. 그 때 의사는  두번다시 암에 걸리지 않도록  지도를 해야 한다.
환자는  그 지도에 충실히 따름으로써만 암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여자 환자는 선천적으로 단  것을 좋아했고 담배도
피웠다. 수독성(몸에 수분이 많은 체질) 비만형에 쉬 피로를 타는 체질인데도
운동은 전혀 하지 않는 생활을 40년동안 계속해 왔다.
  암 수술을 했으니  이제는 두번 다시 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암 예비군에 편입되었다. 정도의 자각을 할 필요가
있다.

    수술후 입퇴원을 반복한 사람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환자의 사장(67세 남성)이 병원에서 처음에
위장 폴립이라는 진단을 받고(아마 위암이었을 것이다)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몇년후 식도에 다시 폴립이 생겼는데 암으로 변하면 안된다는 말을
듣고 지난번 수술에서 떼지  않고 남겨 두었던 위장 전부와 식도  전부를
제거, 후 두부에 직접 소장을  문합시켜 식도를 대신하게 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담당한 교수는 일본에서 식도  수술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수술은 잘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후 인공 식도 부분에서  장의 역류 연동이 자주 일어나 장액을
토해 내기도 하고 기관  내부로 흡입되기도 하는 등 좀처럼 낫지  않았다.
수술 후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흡입성 기관지 폐염이  일어나고 발열이
계속되며 식도 부분의 역류 연동에 따른 구토때문에 불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는데 한때는 죽음 직전까지 간적도
있었다.
  회사일에 바빴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열성적이기도 했던 그는 출장중일
때라도 출장지에서 전화를  걸어 회사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식사도  짧은
시간에 서둘러 먹을 수  있는 빵을 많이 먹었고  우유를 마셔가면서
정열적으로 움직였다. 대 회사의 사장이었으니 그렇게까지 악착을 떨지
않아도 될 터였다.
  이 환자의 경우 위 수술을 했을 때부터 의사가 충분히 환자에게 암의 재발
가능성을 알려주고 했어야 옳았다. 또 환자 역시 의사의 지시를 잘 따라야
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위한 일이니까.
  필자와 친한  사이였던 이 사장은 한방요법으로  고쳐지는 방법은
없겠느냐고 의논을 해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수술을  한 다음이었다. 그저, 지금 당하는 고통을
어떻게 해서든 덜어주고 싶어서 여러가지 궁리를 하다가 기공치료를 도입한
정신요법을 쓰는 병원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병원 원장의 열정적인 지도로 
정신적인 안정을 얻은 다음부터  역류 연동은 멎었고 급속도로 회복되어
나가게  되엇다. 수술 후 3년간에  걸친, 참으로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었던 
것이다. 이예에서 보듯이 앞으로는 동양적인 의료중 하나인 기공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생활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1990년초, 필자의 병원을 찾아온 63세의 남성이 있다. 회사의 사장이면서
많은 단체의 책임을 맡고 있는 지방 유력 인사였다.  그는 대단히 발이 넓은
사람이어서 업계는 물론이고 각계에 아는  사람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술자리가 이어지곤 했다.
  89년 가을에 여러가지 검사를  해보고 폐암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은 알고
있었지만 주치의가 만류하는 바람에 본인에게는 알리지  못했다. 해가
바뀌면서 요통이 심해져서 그 치료를 위해  필자를 찾아온 것이었는데 그는
자기가 간이 나빠서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필자는 침 치료를  하면서, 한방약으로 항암성 생약을 가한 것을  주로
사용하고 건강 치료성 식품인 베타  카로틴 (당근등 녹황채소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 저분자 다당체 제품등을  투여했다. 그러자 요통증상은 2개월
정도  후에 개선되었고 몸의 컨디션도 좋아져 환자는 통원치료를 중단했다.
  그가 폐암임을 알고  있었던 필자는 첨음 찾아왔을때  부터 담배와 술을
금할 것을 충고했는데 혈액검사 결과 간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안심했는지
그는 술 담배를 계속했던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몇달후 암이 뇌로 전이되어 왼쪽 몸 마비증상이 나타나 최근에는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으며 또다시 요통이 재발되어 진통제도
쓰게 되었다.
  이 환자처럼, 끊어야  할 술과 담배를 그대로 계속하면서 똑같은  생활을
한다면 절대로 암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 부인으로 부터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을 때는 뭐라고 위로해야 좋을지 알수 없었다.

    방사선 치료의 위험성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
  미국에서도 10년도 더  전부터 진단에 방사선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폐
엑스레이 사진  한번 하루 반만큼씩  수명을 단축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그동안 정기 검진 및 암 조기발견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드높았고 실제로 실시율도 높아졌다. 하지만 정기검진의 보급과 더불어서,
근해 25년동안 질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4.8배로 늘어난 것 역시
사실이다. 질병 검사 기술에 있어서만은 일본이 아마도 세계 제1일는지도
모르지만 질병이 늘어나고 있으며 암 치유가 여전히 불가능한 것 또한
사실이다.
  수술 후의 재발 예방을 위해, 수술이 불가능한 부위의 암치료를 위해, 또
체력이 모자라 수술을 할 경우  오히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에 대해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는 상식이 되어있다. 그러나 방사선을 쬔 
사람의 마음과 몸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의사들은 환자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사세보 해군 병원의 군의관이었던
필자는 피폭자 구조 명령을 받고 원폭투하  48시간만에 시내에 들어갔다.
산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니 나가사키 중심부는  검게탄 거대한 주발 같았고
바로 서있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검은 잿더미 속에 해골처럼 변한  빌딩이 있는 것을 목표로 삼아 산을
내려갔다. 발  밑은 검게 탄 시체투성이  였지만 피부가 벗겨진 채  살아있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피폭자들은  왠지 모두 발가벗은데다 남녀 구별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런 와중에 군의관 완장을 달고 시내로 들어간 사람은 아마 필자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육군 관계 장병들은 전원 원폭을  맞았는지 한 사람도
만날수 없었지만 피폭자 치료를 위해 부하들을 지휘해서 구호소를 설치했다.
  필자의 구호소를 찾은 이들 중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노력봉사로 동원된
처녀들이었다. 건물안에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화상도  적었고 옷도 입고
있었으므로 얼핏 보기에는 병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들은 강렬한
방사능을 쬔데다가 폭풍으로 인해 산산 조각이  난 유리창의 파편들이 
몸안에 박혀있는 상태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사태로 인해 넋을 잃은
처녀들은 아픔도  호소하지 않은 채 줄을서서 기다렸다.
  필자는 유리 파편들을 빼낼수 있는데까지  다 빼 주고 차나 건빵을 주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는데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면서  도무지 안정을 취하지
못했다. ‘왠지 몸이 축  처진다’는 것이었다. 의약품도 충분하지 않고 치료 
방법도 확립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군의관님, 살려주세요”하는 말만 
하면서 수백명이나 되는 처녀들이 죽어갔다.
  이 ‘몸이  축 처지는 상태’야  말로 방사능이 인체를  파괴하는
첫단계이다. 피폭 직후으 나가사키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치료를 계속했던
필자에게도 방사능 후유증이 남았다. 나가사키에서 돌아와 대학으로 복귀한
다음에도 5, 6년동안 몸이 축 처지는 상태는 계속되었다. 그 기간이  지나자
일단 진정되었는지 그런 증상이 없어졌다.
  그러나 필자가 1945년에 병원을  개업해서 직접 엑스레이를 통해 환자의
위장 촬영을 하노라니 다시 원폭 당시의 후유증  비슷한 기분나쁜 나른함,
권태감이라고나 할 증상이 엄습해 왔다.
  그 당시의 엑스레이 촬영  장치는 지금처럼 방사선을 완벽하게 방지할수
있도록 되어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개인 의원에서는  외과 의사 본인이
엑스레이 투시 와중에 손수  환부를 손가락(방사선 방지용 장갑 사용)으로 
압박하면서 검사를 해야했다.
  1965년 무렵부터 엑스레이 촬영장치가 점점 개량되어 방사선이 방어되게
되자 필자의 몸도 점점  건강해져 갔다. 병원 개업후 10년 동안  필자의
백혈구는 4천 전후인 상태가  이어졌고 결국 이로인해  만성 간염이 되었다. 
무리하게 수술을 계속해서 몸의 상태가 나쁠 때는 GOT, GPT 수치가 2백 50을
넘기도 했다.
  지금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부터 40년 이상이 지나 백혈구도 6천~7천으로
회복되었지만 간검사는 별로 달라진게 없어서 GOT, GPT수치가 여전히
60~70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정상치는 GOT 38이하, GPT 35이하이다). 그
원인이 원폭에 있는지 엑스레이 치료 후유증인지는  모르지만 현재도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원자 폭탄의 방사능이나  방사선 치료나 원리는 마찬가지.  단숨에
습격하느냐 야금야금 갉아먹어 가느냐 하는 차이밖에 없는  셈이다. 치료하는
쪽에서는 환자를 습격하는 권태감, 무력감, 한없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것
같은 나른함 등등의 고통을 알아 두어야 한다.

    미국에서 생긴 방사선 치료에 대한 의문
  암을 치료하는  수단으로서의 방사선 요법은 암뿐만  아니라 온몸까지
좀먹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의사가 옳다고 생각해서  행하고 있는 방사선이, 거꾸로 그 사람의  목숨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한다.
  방사선 치료 전문의이며 뉴욕주  블루클린의 방사선 치료 연구소 소장인
브레너 박사는 미국 의회 암문제  조사 위원회의 공청회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고 있다.(1990년 3월)
  “나는 39년 동안 방사선 치료 전문의로서  암환자 치료를 맡아왔다.
의사라는 직업에서는 성공한 편이어서 하루에 1백명~1백  50명의 환자를
보아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심각한 욕구불만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다.
  개업이래 39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암치료는 근본적으로 하나도 진보되지
못했다. 환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암으로부터 생명을  구해주기를 바라면서
나를 찾아왔지만 나는 그들에게  효과적인 어떤 일도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부작용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도 고통스러웠고 이런
사태가 지긋지긋 해졌다.”
  그는 이  증언 다음에 “현대의학에서의 암치료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비통상적
요법이라고 불리는, 인체의 자연 치유력이라든가 면역력 증진을  촉진시키는
방향의 의료로 전향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점을  역설하면서 갖가지 실제
예를 추가 발표하고 있다. 일본의 의사들 역시 심사숙고해야 할 중요한
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방의 혈과 방사선
  한방 의학에서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방사선을  쬘 경우 그 부분의
피부에 있는  혈 기능이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 예를들어 자궁암일 경우 
자궁 적출 수술을 한후  전이를 막기위해 허리부분에  방사선을 쬐게 된다. 
이때 방사선을 받은 피부에서는 한방에서 말하는 혈의 반응이 완전히
없어진다.
  혈에 닿으면 바늘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혈 탐지기를 사용해도 바늘은
꼼작도 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에는 3백 65군데의 혈이 있다. 지구는  3백 65일에 걸쳐서 태양을
한 바퀴 돌므로, 똑같은  수치를 가진 인간의 몸은 하나의 지구이며  인간과
태양계의 지구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한방의학이
대자연 속에서 생겨나게 된 인과관계를 보여주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혈이란 인체의 모든 장기의  반응을 피부에 드러내 주는 점(약
0.5밀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간장이면  간장의 혈, 폐면 폐의 혈이
틀림없이  피부에 있다. 지구상의 전파안테나  비슷하다 할까. 이 혈을 
장기질환 치료에 응용하는 것이다. 방사선을 쬐인 피부에는  더이상 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가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든다.
  자궁암 수술을 한 후 재발 방지 목적으로 허리부분에 방사선을 쬘 경우 그
부분의 혈이 모두 죽어버린다는 설명은 앞에서 했었다. 허리 부분에는 신혈,
즉 정력의 혈이 모여 있으므로 이것들이 파괴되면 인체의 정력및 기력이
저하되고 만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몇년, 혹은 평생동안 계속될는지도
모른다.

    항암제의 무서운 부작용
  머리카락이 빠지는 고통
  일반적으로 항암제라고 불리는  화학물질을 사용하면 몇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 백혈구 감소, 식욕부진, 탈모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비극적인 부장용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리라. 백혈구 감소,
빈혈, 식욕부진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자기만 아는 것이므로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약을 사용한지 1주일 정도  지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당황하게 된다. 암에 대한  공포에 덧붙여, 경솔하게 항암제를
사용하고 말았다는 후회,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겹쳐진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여성들의 경우 특히  그렇지만 대부분 가발을
사용한다. 그러면 보다 나쁜 결과를 빚게 된다. 미혼인 경우 용모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1985년 미국에서는 많은  대학들의 협력 아래, 말기 암환자  7백43명을
대상으로한 항암제 임상실험이 행해졌다. 마이트마이신, 시스프라틴,
비프라스틴 이 세 가지 종류의 항암제를 여러가지로 조합시켜서 사용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 세종류의  전부를 투여했을 경우 암을 소멸시킬 수는  있었지만
백혈구 감소증, 세균 감염증, 면역력 저하, 재생불량성 빈혈등 부작용이 몹시
심해서 투약 몇주일 안에 사망하는 환자도 생겼다.
  그러나 두 종류를 조합시키거나  한 종류만을 투여했을 경우에는 효과가
감소되기는 하지만 정상세포까지도 죽일수 있다는 점을 알아 두어야 한다.
  발육이 왕성한 세포, 분열이 빠른 세포일수록  항암제 효과가 높아지지만
거꾸로 부작용도 빨리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골수일 경우 빈혈이, 위장일 경우 식욕 부진 및 구토증이
나타나는 것도 그때문이다. 발바닥 같이 신진 대사가  적은 곳에서는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하루에 몇밀리 자란다고 잴 수 있을 
정도로 세포분열이 빠르므로 항암제의 영향을 받기 쉬워서 탈모가 일어나는
것이다.
  항암제는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  사용해야 하며 의사 역시 환자와
가족들에게 이런 점들을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얻어야 한다.
  필자는 항암제를 거부함으로써 지금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70세
환자를 알고 있다.
  5년전에 대퇴부에 사과 크기만한  혹이 생겨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육종 (암과 비슷한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을 해서 육종을 제거했다. 수술자체는 잘 되었지만 수술후  항암제를
한번 사용하고 나니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완전히 다 빠지고
말았다. 놀란  그는 두번다시 항암제 사용을 하지 않겠다면서 퇴원해 버렸다.
  필자는 그에게 자택에서  자유롭게 요양하도록 권했는데 1년정도 지나자
완전히 기운을 차렸고 머리카락도 다시 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벌써 5년이
지났지만 대퇴부 수술 후유증은 없고 지금은 골프를 즐기며 지낸다.

    미리 항암제를 피한 지혜
  결혼 3년 반 된 29세의 여성이 부모님과 함께 필자의 병원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약 4년 전  하복부에 사과 크기만한 혹이  생긴 것을 깨달았지만 몸에
별다른 이상도 없고  월경도 순조로왔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 그랬더니
1년  반 정도 지난 다음 어린아이 머리크기 만해졌다. 하복부의  자궁
근처였는데 본인 스스로도 확실하게 만질수 있을 저도였다. 별로 아프지도 
않았지만 모 유명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받앗더니 난소 종양이라고 했다.
  88년 5월에 개복수술을 했는데 난소에도 자궁에도 직장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그대로 봉합하고 말았다.
  병원에서는 혹의 원인를 알기 위해서 수술후 CT및 초음파 진단, 직장
내시경, 혈액검사등을 했지만 별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한달 후에  두번째 수술을 했는데, 자궁및 대장의 뒷벽에  해당하는
골반속에 생긴 횡문근 육종이라는 것이었다(육종이라는 것은 암 또는 암보다 
악성인 종양이다). 그러나 이 육중을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함으로 방사선으로
지지든지 항암제로 공격하든지 둘중 하나를 응용할 수 밖에 없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부모님(아버지가 의사)이나  본인이나 이런 치료법이 얼마나  부작용이
심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생각한 끝에 이 병원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항암제나 방사선 이외의  방법으로 치료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환자는 솔직한  성격에 키 1백 58센티미터, 몸무게 43킬로그램인
미인이었다. 체질은 저혈압성, 쉬 피로를 타고 몸이 찬  편으로 빈혈이 자주
일어났고 때로는 두통도 있었다고 했다. 식사는 양식을 즐기고 많이 먹는
편이며, 변은 하루에 한 번 보았다. 위장 질환을 앓는 적은 없고  현재의
증상은 체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해 피로감이  심하고 체중도 2~3킬로그램
줄었으며  식사후 땀이 많이 난다는 것이었다.
  이상과 같은 환자를  한방에서는 ‘소양허증’이라고 한다. 필자는  그
체질에 필요한 보중익기탕가여이인, 형개연교탕, 때로는 진무탕등 한방약을
중심으로 다당체 배합제인 에바영 및 베타카로틴(드나리에라) 같은 건강식품,
체력증진을 위한 크로스타닌 골드를  복용하도록 했다(이들 건강식품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도록 하자). 이 환자의 경우 침 치료는 필요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경과는 지극히 순조로와서, 88년 6월 부터  90년 1월까지의 1?繡?동안에
건강한 몸으로 돌아갔으며  육종 역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스포츠 
센타에 다니면서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정도이다.
  필자는 이런  증례를 자주 경험하곤  한다. 항암제로 육종이나  암을
치료하려 했다가 결과적으로 암을  증식시키고 마는 예도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암 치료법으로서 한번 생각해 볼 가치가 없다고는 할수 없으리라.

    면역학에서 본 항암제
  극히 최근, 모  대학 의학부 면역학 교수로부터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그 교수는  연구실에서는 면역학적 견지에서 “항암제가  암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만들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인체의 혈액에  있는 전체 임파구의  1%는 NK세포(네츄럴 킬러셀)라 
불리는 임파구이다(혈액 성분은  세포 성분이 45%, 혈장성분이 55%이다. 
세포 성분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이루어지며 백혈구 속에 약 30%의 
임파구가 있다) 암세포를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NK 세포는 실제로
꺼내서 증명이 가능하다.
  인체안에서는 정상적인  경우에도 몰핀 물질(엔케파린 및  엔돌핀)이
뇌중추의 반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물질은 NK세포를  활성화시켜서
암세포를 파괴시키도록 그 활동을 촉진시킨다.
  보통은 우리들의 몸안에서 어떤 이유에선가 세포가 약간 암세포화된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닌 NK세포의 작용으로 암세포가 파괴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항암제를  인체에 투입하면 몸안에서 만들어  지려던 몰핀물질
생산이 중단되고 말아 NK세포의  활동이 정지된다. 이 때문에 암을 
박멸시키기 위해서 투여한 항암제가 암세포의 발육을 저지시키기는 커녕
거꾸로 증강시키는 결과를 빚게된다. 항암데에 의해 일시적으로 암이
줄어드는  것은 정상세포와 더불어 온 몸세포의 활력을 저하시키고  만
결과일 뿐, 암  그 자체를 퇴치한 것은 아니다. 결국 몸 전체가 당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몸은 이에 반발해서  갖가지 부작용(온몸의 나른함, 탈모, 구토증,
식욕부진등)을 나타내면서 이 약을 중지했으면 좋겠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몰핀 물질 자체에도 암의 통증을 억제하는  힘이 있지만 그런
힘도 발휘할 수 없으므로 암의 통증은 오히려 심해지게 된다.
  이 NK세포의 활성화가 몰핀및 코카인에 의해 왕성해  진다는 사실은, 나쁜
예이긴 하지만 몰핀 중독자나 코카인 중독자에게 암이 잘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로 증명되며 이들  중독자들의 혈중 NK세포 활성도은  정상인의 2~3배에
이른다고 그 교수는 말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항암제는 이미  암 치료 방법으로서 도움을 주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방사선 또한 생체에
쬐여지면 NK세포 활동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항암제와 마찬가지 결과를
빚는다.
  한방 치료중에서 침 치료가 암에 응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침을 몸에 꽃아 조직세포에 상처를  주어
아픔을 느끼게 되면 이  자극이 뇌 중추로 전달되고 그  통증을 없애기 위해
몰핀 물질이 몸 속에서 분비된다.  이것이 NK세포를 정상보다 몇배 더 
활성화시킴으로서 암 세포를 파괴시키게 된다.
  필자는 1954년부터 20년 동안 요코하마에서 외과의원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암 환자들을 수술해 왔다. 그 무렵에는 항암제 같은  것은 없었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주된 방법이었다. 항암제를 사용하지 않았던  그 환자들
중에서 통증때문에 고통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적었고 사망시에도 편안해
했으며 대부분 전신 쇠약으로 인해 사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항암제를 
사용하면서부터 암 말기에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이  급증한 것
같다. 필자와 똑같은 경험을  가진 고령의 의사(특히 외과의사)들은 많을
것이다.

    치료가 늦어지기 쉬운 전립선 암
  전립선암의 발병원인은 여러가지
  전립선은 방광의 요도 출구에 있는 분비선으로서 분비물을 만들어서
저장하는 장소이다. 보통은 조그마하지만  분비물이 고이면 차츰 커진다.
고환으로부어 나온 정액은 전립선에 고였다가 분비물에 의해 희석되어 요도를
통해 사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성  교섭이 감소되면 분비물은 저축되고 혈액이
울혈되거나 부종을 일으키거나  함으로써 전립선이 차츰 비대해져 간다.
그러면  요도 출구가 좁아져 소변보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잔뇨감이 생긴다.
이것이  전립선 비대증상이다.
  전립선에는 내선과 외선이  있는데 비대증은 내선 부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전립선 암은 외선 부분에 생긴다. 내선 비대와  더불어 외선도
비대해지는 것이다. 전립선 비대가 어느 정도 있다해도 배뇨장해는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과로, 음주, 의약품, 염증 등의
원인이 있으면 전립선 비대증이 되어 갑자기 소변이 잘 안나오게 되기도
한다.
  배뇨장애가 나타날 경우  전립선 비대증이라는 병명이 붙는다.  비대증상이
있어도 배뇨 장애가 없을 경우에는 비대증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배뇨장애가 없더라도 전립선 암은 존재한다. 곧, 전립선 비대증이
아니라 하더라도 50대부터 외선 부분에 암이 발생하는  수가 있다. 전립선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장기간 계속될 경우 암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 외선부 암이 커지면  내선부에까지 퍼져서 전립선  전체가
암으로 변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물론 배뇨장애및  혈뇨가 나타나고
잔뇨감도 생긴다. 전립선 외선  암은 조기 발견이 간단하므로 50대부터는
정기적인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다른 내장도 그렇지만 전립선 역시  그 사람의 생활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수가 많다. 각각의  연령에 맞는 적당한 정도의 성적 교섭이  바람직하지만
몇살에 월 몇 회의 성교가 적당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도의 자이폴이라는 상업 관광도시는  전립선 암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아주 더워 잠못이루는 밤이 계속될때면 여자를 찾게되고,
환경적으로 부자연스러울 만큼  성적인 교섭이 많은 곳이라는  점이 전립선
암이 많은 이유가 되지않나 추측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전립선 암이 많은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에서 발생하는 암
중에서 두번째로 많다고 한다.
  성 교섭이 지나치게 적으면  전립선이 팽창되어 부담을 받게되고 지나치게
많으면 과로로 인한 만성 염증이 일어나므로 적당하게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립선 암의  발생 원인이 성 교섭의 많고  적음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이상과  같은 암 발생 요인이 있는데 거기에 
외부로부터 기계적인 자극이 주어져 염증을 일으켜서 암으로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학자나 문인들처럼 앉은 채로 일할때가 많아 직업상 하복부의
내장 조직 울혈  상태가 일어나기 쉬운 사람들이라든지, 그 반대로  항상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는 일을 함으로서 골반안이나 음부에 기계적인 자극이
주어져 울혈이나 염증이 쉽게 일어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어떤 전립선 암의 케이스
  필자의 친지중에 건강 그자체라 할만한 72세의  노의학자가 있었다. 그는
자택 서재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두뇌노동을 오래동안 계속해
왔다. 이른바 정적인 생활만을 계속해온 것이다. 스포츠는  물론이고 간단한
체조조차 60 세 이후에는 전혀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때때로 배뇨  곤란이 있어서 전립선 비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너무나  증상이 악화된 것 같아  비뇨기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요도로 방광경을  넣어 진찰해 보고 난 의사는 조직검사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직의 일부를 떼어 내자마자 갑자기  대출혈이 시작되어 급히
입원, 2천CC나 수혈을 받았지만 요도에서  출혈이 멎지 않아 긴급 개복수술
끝에  겨우 출혈을 멎게  했다. 그리고 전립선  암으로 생각되는 부분을 
제거했지만 그때는 이미 암이 온몸으로  퍼져 있었다. 큰 병원의 중요한
직책을  맡은 의사였으므로 온 병원의 의사, 간호사들이 나서서 전력을  다해
치료했다. 물론, 서양의학의 항암제 및 진통제도  사용해서 만전을 기했다.
하지만 암은 계속  전이되었고 격렬한 통증을 호소하던  환자는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의식이 흐린 가운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긴급 조치를 취하고 난 지 불과  6개월만의 일이었다. 필자가 병원으로
문병을 갔을때는 아직 의식이  뚜렸했다. 의학계 선배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필자가 존경하던 분 중의 하나였다.
  병실에 들어가니 후덥지근한 열기가  실내에 가득해서 마치 사우나탕에
들어가 있는 것같은 상태였다. 왜 그렇게 실내  온도를 높여 놓았느냐고
물었더니 보통 온도에서는 몸의 통증이 격심해  참을 수가 없어서 되도록이면
덥게 해 땀을 흘림으로서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토록 심한 통증 속에서도 그는 의사로서의 의무를 잊지 않고 있었다.
  “여보게, 암에 대한 현대  의료적 방법은 어딘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닐까.”
  통증을 참으면서  그 선배가 한 이  말이 필자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의학 발전을 위해 좀더  일할수 있는 그분에 대한 애석함과 동시에,
말기암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필자 자신의 무력함이 가슴속에서 착찹하게 오갔다.
  지금도 그 분의 말과, 필자 자신의 내면적 충격은 잊혀지지 않고 있다.
  말기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세가지 유형으로 나눌수 있다. 하나는  이
선배처럼 격렬한 통증속에서 합병증으로 갑자기 죽음을 맞는 형. 마지막으로,
통증은 없지만 전신이 쇠약해져서 죽음에 이르는 형.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각각의 유형이  대개 1/3씩 존재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첫번째 유형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마취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는 좋은 진통제가 많이 나와있기 때문에 통증으로부터는 상당히 예방되게
되었다.

    활동적인 생활에서 생기는 전립선암
  필자의 부친 역시 전립선 암르로 57세에 서거했다.
  1947년, 제1회 지방선거에  읍장 후보로 출마했던 부친은 선거  관계상
술자리에 갈 기회가 많았다. 또 당시의  교통수단이라고는 자전거와 소형
오토바이뿐이었고 도로 포장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대부분이었다. 선거 운동을 하느라 날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사방을
돌아다녔던 부친은 덕분에 읍장에 당선되었고 당선된  이후에는 공무에 바빠
동분서주했다.  격렬하게 활동적인 생활이 4년 가까이 이어졌던 것이다.
무리가  겹치고 게다가 늘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음부에 만성적인 자극이 
가해져 뇨 출혈이 시작되었지만 단순한 전립선 비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무렵 필자는 대학 병원  외과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 부친을
비뇨기과 교수에게 진찰받게 했다. 전립선 암인 것 같다는 진단에 부친은
어쩔수 입원,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늦어져, 암은 신장과 간에까지
전이되어 있었고 결국 4개월 후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다행히,
사망때까지 한번도 통증은 없었다.
  오토바이에 의한 장기간의  자극, 많은 술자리 등이 원인이 되어  전립선
암을 일으켰던 것으로 추측된다.

    적의 정체를 똑바로 알자
  일본인의 사망뮬중 제1위는 암(약 30%)이다.
  암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여러가지 설이 있었지만  확실하게 단정할수 있는 증거는 없으며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1991년 일본 암 학회에서는 암의 본체인 유전자 및 대체적인 발암구조를
밝혔는데, 인간을 만들고  있는 세포속의 유전자(DNA)가 발암성  유발물질과
만남으로써 세포의 암화가 시작된다는 설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인간의 몸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사람의  세포수를 전부 합하면
평균 60조 개가 된다고 한다.
  이 세포들은  쉴새없이 신진대사를 계속하고 있어서  1초동안에 약 50만
개의 세포가 새로 만들어지고 또 사멸되어 간다. 50만  개씩 교체되어 가면
60조 개가 완전히 다 교체되는 데에는 약 반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3개월에서  반년전의 몸의 부분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으로
바뀐다.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처럼 1년  정도 걸리는 것도 있지만 보통의
장기는 계속 변해가는 것이다.
  세포가 변하면 예를 들어 지난번  얼굴과는 다른 모습의 얼굴이 되는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얼굴세포는 얼굴의 
DNA를 갖고 있어서 똑같은 얼굴로 복원된다. 머리카락에는  머리카락의
DNA가, 발바닥의 단단한 피부에는 그 나름의 DNA가 전달되어 간다.
  이런 세포들의 구조를 보면  세포막에 둘러싸인 원형질과 핵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핵 속에 DNA가 존재하면서 세포의 신진 대사를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포의 구조 변화, 신진대사 이상에서 암이 발생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서  정상적인 세포가 5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자극을 받았을 때 DNA에 이변이 일어나 암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변을 일으키는 발암 유발인자로는 뭐니뭐니해도 담배를 첫번째로
들수 있고 이어서 스트레스, 심한 음주, 상한식품(곰팡이 핀  음식등), 편식,
과식등을 들 수 있다. 또 방사선이나  강렬한 자외선도 발암 유발인자가
된다. 현대에 와서는 이른 바 발암물질로 약 2천 종류의 화학물질로 알려져
있다.
  일본 암 학회에서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바이러스도 발암의 원인이  된다.
간 암의 대부분은  바이러스와 관계가 있어서 음주에 의한 것은 불과 8%밖에 
되지 않고 C형 간염이 그  주범이라는 것이다. 또 자궁 경부암의 원인 중에도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존재한다는 연구도 발표된 바 있으므로 앞으로는
바이러스와 암 발생과의 관계가 더욱 연구되어 갈것으로 보인다.

    세포의 구조를 들여다 보면 ...
  세포의 구조로 돌아가  보자. 표면을 세포막이 감싸고 있다고 했는데  그
막은 지방질로서 2겹으로 되어  있다. 2중 막 사이에는 효소 형태로 
단백질이 점재하면서 세포속에 필요한  산소 및 영양을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세포속에 생긴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역할도 한다.
  세포막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지만 어떤 원인에서인가
세포막의 기능이 저하되면 세포의 DNA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DNA에는 암을 발생시키는 인자와 암을 억제하는 인자가  있어서 세포가
정상적일 때는 암을  억제하는 인자가 활동을 한다. 그러나 발암물질  및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발암인자가 나타나 암조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예를들어 영양이나 산소가  부족하면 세포속의 핵(핵속에 DNA가
존재한다)이 정상 상태를 유지하지 못해 발암인자가 활동함으로써 세포 그
자체를 암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일반적으로 세포분열이 왕성한  부위일수록 암이 생기기 쉬우며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은 세포분열이 없기 때문에 암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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