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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정보/마음

여섯째 마당- 의학의 여러 가지 모습

by FraisGout 2020. 6. 28.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는 의학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마음도 편하고 몸도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한번도 
안 아프고 마음이 항상 편하게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늘 몸과 마음이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낫기  어려운 병에라도 걸리게 되면 
환자와 가족들은 깊은 절망과 고통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쉽게 낫지 않는 만성적인 질병  때문에 장기간 불편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습니
다. 
  의학이 이만큼 발전했으니 건강과 질병을 일관하는 확실한 법칙이 발견되어 모든 병이 병
원에서 척척 치료되었으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질병이 의학을 앞질러  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딱한 노릇입니다. 
  누구든지 일단 병에 걸리게 된다면 가장 좋은 치료법을 찾게 됩니다. 어떤 치료법이 최선
의 선택일 것인가? 그러나 병은 하나인데  치료법은 백 가지라는 말이 있듯이 병에  좋다는 
치료법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틀림없이 치료되는 방법이 
하나만 있으면 참 편할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치료법, 더 많은 건강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수천 년의 의학의 역사는 보건과 의료를 설명할  수 있는 단일 이론이 영원히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정된 능력으로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완벽하게 이해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질병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일이론,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 같은 원리가 
개발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항상 논쟁하는 것이 의학의 역사입니다. 물론 이런 
논쟁을 통해서 의학은 발전해 왔습니다만. 
  사람의 생명이란 다차원적이고 중층적이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
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서 몇 개의 차원이나 관점만으로는  전체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차원이나 관점에서 보게 되면 같은 사람의 생명인데도 매우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진실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관점에서는 진실이 아니게 보일 수 
있고, 어떤 차원에서 실제처럼 여겨지는 것이 다른 차원에서는 거짓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진실도 모두 상대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하기 
전에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만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말해져야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건강과 질병을 바라볼 때 그 관점에서 옳게  보이는 현상을 규명, 그에 합
당한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도 꼭 찾아낼 수 있습니
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도, 또 또 다른 관점에
서도 가능합니다. 마치 하나의 주먹을 돌려가면서 여러 개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주먹
의 모양을 서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듯이. 
  이처럼 사람의 생명이란 어떤 관점에서 보고 어떤 이론들을 창작해내든지 그 이론에 합당
할 만한 증거들을 되비쳐 줄 수 있을 만큼 무한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전공한 서양의학 내에서만 보더라도 같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경
우가 흔히 있습니다. 훌륭한 의학자들이 오랫동안 객관적인 검증과정을 거쳐서 다듬어온 과
학적인 의학이므로 의사들이 모두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동의할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실상인즉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지금 인류의 대부분이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신념  중에 '특정병인설'이라는 것이 있
습니다. 특정병인설이란 모든 질병에는 특정한  원인이 있으니 그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해
야 병이 낫는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세균감염병의 경우,  그 병을 일으키는  원인균을  
찾아내서 그 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와 같은 화학약품을 써야 병이 낫는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이론은 일면 너무나 당연한 듯이 보이지만 근래에 와서 여기에 반대하는 의
학자들의 움직임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세기 초 코호라는 의학자가  콜레라균을 발견하고, 콜레라는  콜레라균에 감염됨으로써 
발병한다는 세균 병인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때  코호 못지 않게 위대한  학자로서 인정받고 
있던 페텐코우퍼나 메치니코프 같은 의사들은 이 이론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콜레라로 사망한 환자의 배설물에서 추출한 콜레라균 수백만 개를 컵에  담아가지
고 자기 동료들과 함께 대중  앞에서 직접 먹어 보이는 실험을  했습니다. 콜레라균이 몸에 
들어온다고 해서 꼭 발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신들의 몸
으로 생체실험을 했던 것이지요.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들 실험자 전원의 대변에서 콜레라균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만 가벼운 설사
를 일으켰을 뿐 단 한사람도 콜레라 환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실험실 내의 연구와 현실세
계는 명백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파스퇴르나 코호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결과가  자연계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이 된 셈이지요. 병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세균이 
하나의 부분적인 원인이 될 수는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심리상태, 영양상태,  노동조
건, 전신의 면역력, 체질적 요인, 나이 등 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의 감수
성을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콜레라균을 직접 먹어 보인 의학자들의  생체실험으로 코호나 파스퇴르의 세균  병인설은 
오류임이 증명된 셈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세균 병인설은  백년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서양의학의 중심사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오류를 증명한 학
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반면 코호나 파스퇴르 같은 세균학자들은 위대한  의학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당시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정치 경제적 상황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
다. 당시 유럽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한 터라 계층간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따라서 소외받던 절대  다수 대중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과로에, 영양실조
에, 생활환경조차 너무 열악하여 영아사망율도 높았고 평균 수명은 40세가 채 못되었습니다. 
당연히 폭동 같은 대중 저항이 그칠 새 없이 일어났습니다.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세균 병인설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지
배계층의 통치논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즉 정치나 경제가  잘못되어 질병이 생기는 것
이 아니라 세균이 병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병에 걸리는 것은 세균 탓이거나, 혹은 세균에 
노출된 개인에게로 그 책임을 떠넘기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의학이라는 것이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생물학적인 진실들만 축적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
로 발전해 왔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의학 
역시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생활양식과 같은 사회적 요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한 시대의 의학을 잘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모든 조건과 상황
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같은  관상동맥협착증 환자에 대한 치료로
서 바이패스 수술을 미국의사들이 영국의사들에 비해 여섯 배나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
궁질환에 대한 자궁절제술이 프랑스에서는 아주 드물게 하는 수술인 반면에 미국에서는  전
체 수술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하는 수술에 속합니다. 
  같은 시대의 같은 서양의학인데도 이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의 의식, 문화적 특
징, 사회 경제적 조건 등에 차이가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 문명, 사
회 경제적 조건들이 바뀌어감에 따라 의학의 모양도 그  조건대로 틀림없이 바뀌게 됩니다. 
오늘날 첨단 의료장비와 선진적인 의약품들이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새롭게 개발되어  나오
는 것은 의학자들의 순수한 의학탐구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제약회사나 의료장비 회사들의 자본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첨단 의료장비나 선진적 의약품의 등장이 꼭 참된 의학 발전의 지표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아무튼 근래에 와서 앞서 말한 특정 병인설에 반대하고 나서는 의학자들의 움직임이 갈수
록 커지고 있습니다. 예방접종에 대한 일부  의사들의 반대 운동이 그 하나의 예가  됩니다. 
특정한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므로 세균을 찾아내서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되었고, 따라서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한  예방접종은 불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들 특정병인설 반대론자들은 세균 질환이 아닌 암,  고혈압, 심장병 같은 만성 퇴
행성 질환에까지 특정병인설을 적용하여 특정한  한두 개의 원인을 찾아내서  치료하겠다는 
태도에 대하여 크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체를 여러  개의 부속품들로 조립된 기계
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세포가 모여서  생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체 그대로가 하나의 단위이므로 이를 분해하고 분석하자마자 생체로서의 특질을 잃어버리
기 때문에 항상 생체 전체로서 관찰할 수밖에 없고,  설령 생체를 분해하고 분석해서 어떤 
뛰어난 생물학적 자료를 얻어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전체로서의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
는 것입니다. 
  간염환자의 간에서 감염 바이러스를 확인했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그 환자를  이해했다
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감염 바이러스의 검출이 부분적인 참고 자료는 될 수 있겠지만,  정
말 필요한 것은 그 환자의 심리와 생리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입니다. 
  요즘 가장 문제시되는 암 치료법에 대해서도 의사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견해가 맞서 있
습니다. 수술이나 항암제, 방사선 치료, 면역요법 같은  정통적인 치료방법에 동의하는 의사
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 서있는 의사들도 상당합니다. 몇 해 전 일본의 암 치료 전문
의사인 곤도 교수가 발표한 <암을 건드리지 말라>는 책은 그래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
습니다. 곤도 교수의 입장에서는 기계 부속품 수리하듯이 암을  잘라내는 일은 생체를 전체
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들이 바로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대체의료의 사상적  배경입니다. 정통의학을 
대신 한다는 뜻의 대체의학이라는 표현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준다는 뜻의 보완의학이
라는 표현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전인요법 또는 전일요법이라고 부르는  사람
들도 많습니다. 
  대체의료가 나오게 되고 이것이 대중들의 선호를 받게 되는 이유는 기계론이나  특정병인
설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들은 수술이나 
화학약품 같은 공격적인 방법을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런 방법을 써서  자연치유
능력을 발현시킴으로써 전체적 조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질병만 치료한다기보다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치료한다는 개념이지요. 
  수술로 암을 치료하기 좋아하는 의사들은  수술과 항암제가 최선의 치료법이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고, 대체의료를 추구하는 의사들은 대체의료의  방법이 보다 우월하다는 증거와 
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암 환자는 과연 어떤 치료법을 따르는 게 좋을까요?
  뿐만이 아닙니다. 심장의 기능에 대한 이해에서도 이들은 확실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습니
다. 많은 의사들은 심장이 압력펌프 역할을 함으로써 피를 전신에 보내고 있다고 믿는 반면, 
어떤 의사들은 결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 주먹 크기의  심장의 힘만으로 수 백 킬
로미터 길이의 전신의 혈관에 피를 보낸다는 것은 유체역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증거를  제
시하면서 말초혈관의 음압이 혈액순환의 기본 동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심장의 기능
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히 심장병에 대한 치료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양의사들은 몸에 열이 나면 해열제를, 통증에는 진통제를 써서 증세를 억압하거
나 제거하는 것이 환자를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어떤  의사들은 이와 같은 증세 억
압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증세의 나타남이 곧 병이 아니고 이는 병이 스스로 치유되
고 있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오히려 증세가  더 잘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치료법을  쓰기도 
합니다. 
     
    의학은 신념체계다
  서양의학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여러 가지 의학 체계나 치료방법들을 두루 살펴보면 그야
말로 천차만별입니다. 물론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는 아주  다른 차원에서 출발하고 있으므
로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도 당연히 다르리라는 것을 우리는 대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동양의학인데도 중국의 전통의학과  인도의 전통의학은 그 내용이 상당히 다
릅니다. 이런 점들을 보면 결국 어느  문화권이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전통의학을 가지고 있
고 이런 전통의학들은 현대에도 그 문화권의 틀 안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공식의료권 밖으로 한  번 나가 볼까요? 공식적인 정통의료  바깥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체의료 또는 민간의료 방법들이 있습니다. 
  홍채학이라는 일종의 대체의학이 있는데, 이것은 눈의 홍채를 통해서 간, 신장, 심장 같은 
전신의 각 장기의 상태를 읽을 수 있다는 신념체계입니다.  이 홍채학의 방법은 대체의학을 
탐구하는 서양의사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민간요법의 하나로 널리 유행되고 있는 수
지침은 전신의 건강상태가 그 사람의 손에 모두 반영되어 있으므로 각 장기에 상응하는 손
의 지점을 침구로 치료하면 건강이 회복된다는 건강법입니다. 아  수지침이 외국의 어떤 의
과 대학에서까지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나름대로 독특한 장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
겠지요. 손에다 침을 놓는 것뿐이 아닙니다. 귀나 발을 통해 전신의 건강상태를 이해하고 질
환을 치료한다는 이침이나 족침도 개발되어 있습니다. 
  눈, 손, 귀, 발과 같은 몸의 국소 부위를 통해서 온몸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 어
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을 이해하려면 몸의 국소 부위마다 일일이 조사하는 방식보다는 의식
과 신념의 탐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보다 빠르고 쉬울  것입니다. 이것들은 신념의 나타냄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손이나 발, 눈이나 귀를 통해서 온몸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
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치료가가 코를 통해서건 입을 통해서건, 아니면 배꼽을 통해서건 
어떤 국소 부위를 통해서 전신을 이해하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탐구해
가면 그는 결국 그럴듯한 신념체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합당할 만한 의학이론을 
개발해 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몸은 어떠한 신념의 내용도 되비쳐 줄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한 정보와 모습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 몸의 세포 한 개를 통해서 
그 사람 전신의 정보를 다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러한 관점에서 탐구하게 되면 
그 신념을 뒷받침할 만한 신념체계가 나타날  것입니다. 즉 사람 몸의 수 십  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그 사람 전체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다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질 것이라는 말입
니다. 사실 현대의학은 이런 것을 증명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 모든 티끌마다 우주가 가득하네"
  의상조사의 법성게는 생명에 대한 깊고도 오묘한 이치를 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체질을 사상, 팔상 같은 음양론으로 구분하여 그  체질에 맞는 섭생법이나 생활법
을 따라야 건강해진다는 이론이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체질 구분
의 건강법들이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효과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체질론은 오랫동안 인
류에게, 특히 동양권에서 집단신념으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체질 감별 치료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가운데 재미있는 사실을 하
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음양 체질론에서는 양성 체질은 음성 섭생을, 음성  체질은 양성 섭생을 취해야만 
음양조화가 이루어져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성 체질이 양성 섭생을,  음
성 체질이 음성 섭생을 취하게  되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지요.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이 
방법을 믿고 실천해서 건강이 좋아졌다는 사례와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치료가들은 그 반대의 처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양성 체질은 같은 양성 
섭생을, 음성 체질은 같은 음성 섭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어찌된 일인지 이 방법을 믿고 실천한 사람 가운데서도 병이 낫고 건강이 증진되었다는 사
례와 증거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요즘 생수를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해서 생수 음용이 널리 유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건강법
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생수를 하루 2리터 가량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자주  마
시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이 방법을 실천한 후 변비도 좋아지고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태양이 떠오르는  오전에 생수를 마시는 것
은 생명의 불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으므로 생수 음용을  피해야 하고, 식사 도중이나 식
사 전후 두 시간 동안은 일체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건강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믿
고 실천하여 병이 낫고 건강이 좋아졌다는 사례도 물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건강법이나 치료법들 가운데는 그 이론이나 실천 방법이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
는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옳다면 다른  것은 마땅히 틀려야 할텐데 상
반되는 이 두 가지가 나름대로 효능을 발휘하고 있으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
까요?
  이것은 한 마디로 신념의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지요. 심신에 병을 만들어 내는 것도, 또는 병을 낫게 치료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신념이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서  발견된 어떤 의학적 원리를  사람들이 
옳다고 믿게되어 많은 사람들의 신념이 여기에 보태어지게 되면 그 원리는 더욱 강력한 치
유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집단신념이 그 집단의 개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국 사람들이 특별히 그 효능을 믿고 있는 산삼, 녹용, 웅담 같은 것도 이런 것을  별로 믿지 
않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한국인들에게서처럼 큰 효험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동양인
과 서양인이라는 체질상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작용을 하리라는 것도 사실이겠습니다만.
  유럽에서는 옛부터 사혈요법과 거머리 요법이 대중들 사이에 널리  쓰여 왔고, 지금도 지
역에 따라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혈요법이라는 것은 정기적으로 일정  양의 피를 뽑아 버
림으로써 세포의 재생력을 높여주고 노화를 방지해주며 만성질환을 치료하게 해준다는 것이
고, 거머리 요법이란 몸의 어떤 부위를 거머리에 물리게 하면 거머리 독이 병을 치료,  또는 
예방시킨다는 것입니다. 동양권에서 쓰는 부항사혈이나 벌침과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이것은 
바로 지역에 따라서 문화권마다 다양한 요법들이 대중들의 믿음 속에서 형성되어 그 영향력
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례가 되겠지요.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든지, 또는 민간요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자기가 좋아서 일단 선택했
을 때에는 그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마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좋은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치료법을 쓰든지 환자와 가족 그리고 치료자 모드가 한결 같은 믿
음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지니는  간절함의 정도가 치료의 승패
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공 치료 가운데는 염력을 활용하는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염력이란 신념의 힘,  상념
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암 환자가 단지 맹물 한 잔을 컵에 담아 놓고 바라보면서 우주 가운데 충만한  자연
치유력이 이 컵 속으로 모두 모인다고 믿으며, 또한 모이고 있는 느낌을 가집니다. 그가  물 
한 잔을 먹을 때 이것을 온전히 믿고 염력을 사용할 경우 다른 치료법 없이 이것  하나만으
로 암이 치료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런 사례
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염력침을 이용하여 환자 몸에 어떤 침해나  불편함을 주지 않은 치료하는 방법도  있는데 
치료자의 손가락 끝에서 기가 나간다고 믿고  훈련을 쌓으면 금속침을 쓰지 않고도  금속침 
이상의 치료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믿음의 힘만으로 말입니다. 
  어떠한 요법을 수단으로 하든지 간에 그것을  믿고 따르는 신념의 정도가 치유의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일본 도쿄 대학의 내과교수 출신으로서 명의로  소문난 오타라는 분에게 한 번은  시골의 
노파가 어렵사리 특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노파는 오랫동안 난치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
데 이 의사 선생을 만나면 틀림없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먹으면 꼭 좋아질 것입니다."라고 격려하며 처방전 종이 하나를 노파에게 건네주
었습니다. 정말로 이 노파는 몇 달 뒤에 병이 말끔히 나아서 감사를 표하기 위해 다시 찾아
왔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종이를 불에 태워서 몇 차례 나누어 먹은 후 곧 좋아졌습니다."
  이것은 우스운 옛날 이야기입니다만 실제로 있었던 일로 그 교수의 회고록에 쓰여 있습니
다. 
  이처럼 믿음은 커다란 치유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치료자와 환자간의 신뢰관계가 중
요하다는 것입니다. 치료자가 환자에 대한 인간관계를  서투르게 하여 신뢰를 떨어뜨린다면 
그만큼 치유력도 떨어질 것입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좋아집니다"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어떠한 치료약보다도 더 큰 치유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의학도 만능이 아니다
  명상, 최면, 전생퇴행, 영성치료와 같은 정신적, 심리적 치료, 요가, 호흡법, 기공처럼 심신
의 조화를 꾀하는 수련법, 카이로푸락틱, 척추역학요법,  정골요법, 맛사지, 지압, 침구, 부항
요법 등과 같이 자연치유력을 증진시키는 방법, 단식, 생식과 같이 노폐물을 제거하고  세포
활성화를 도모하는 방법, 약용식물, 건강식품 등과 같은 영양조절요법, 그  외에도 물리치료, 
운동치료, 아로마 치료, 열치료, 물치료, 음악치료, 생활습관 조절요법....
  위에 나열한 것들은 지금 각종  치료에서 활용되고 있는 대체요법, 혹은  건강법들입니다. 
이외에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치료법과 건강법들이 있으며 지금도 계속 새로운 
것들이 개발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어떤 
하나의 의학체계나 건강법만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질병과 불건강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
다. 
  앞에 열거한 것과 같은 다양한 치료법들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들 나
름대로 독특한 효능과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식의료건 민간의료건 어떤 
의학 체계도 그 장점이 있는 만큼 효능에 있어서도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의 주먹을 바라보는 데에는 수많은 서로 다른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앞에서 상기시켜드
린 바 있습니다. 어떤 관점이나 시각도 정면에서 가장 잘  보이는 단면이 이 방향에서는 잘 
보입니다. 여러 가지 치료법들은 사람의 건강과 질병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가장 
잘 드러난 어떤 단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먹을 바라볼 수 잇는 관점이 이렇게 많듯이 사람의 건강과 질병을 비추어볼 수 있는 관
점 또한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합니다. 사람의 생명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차원과 단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관점과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 관점에 걸
맞는 정보를 되비쳐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볼 수  있는 관점의 수만큼이나 많은 의학
이론이나 치료법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있을 수 있는 모든 차원, 모든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들을  하나의 체계로 종합할 수 있
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것도 없겠지요. 모든  차원, 관점을 떠난 차원 없음과 관점  없음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관점이겠으나 한정된 차원의 세계에서는 이런 관점을 가지기
가 어렵습니다.   
  모든 의학, 모든 건강법은 다  한계를 지닌 창조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도 의사들 가운데는 자기가 전공한  의학만을 최선의 의학이라고 여
기고 여타의 다른 의학체계, 즉 대체의학 또는 민간의료들이  보여주고 있는 장점이나 효능
을 애써 과소평가 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탐구해 보지도 안고,  그것
들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공식의료권의 의사들 중에는 이런 편견을 가진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들 중의 일부는 은
근히 민간요법에 대해 무시하려는 듯한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이런 태도를 가
지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 민간요법가들이 민간요법을 
오용 내지는 남용함으로써 환자들의 건강이 훼손되는 경우를 의사들이 자주 보고 있기 때문
입니다. 
  사실 환자에 대한 책임감만을 놓고 본다면 민간요법가들이 의사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그 
정도가 뒤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거나 사망할 경우, 왜  이렇
게 되었는가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며 자신들에게  어떤 부족한 점은 없었는가를  습관적으로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간의료 연구가들에게는 이런  태도가 조금은 부족한 편입
니다. 심지어 지극히 무책임하고 그릇된 태도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일
부 의사들은 민간요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흔들게 됩니다.  
  말이 빗나갔는데, 어쨌든 현실적으로 민간의료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
을 의사들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 같은  현대의학의 선진국에서도 주민의 약 
80% 가량이 대체의료나 민간의료를 이용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지난 몇 
년 동안 공식의료권에 지불되고 있는 의료비의 총액은 년간 약 20조원 정도라고 하는데, 공
식의료권 밖에서 쓰여지는 간접의료비 역시 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
다. 비용만 가지고 본다면 영향력은 서로 비슷한 셈입니다. 
  민간의료 연구가들이 탐구해낸 의학사상과 치료법들 속에는 의사들이 보고 배울 만한  귀
중한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식의료의 많은 내용들이 민
간요법의 창고에서 꺼내져 의학의 옷으로 갈아 입혀진 것입니다.
  의료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공식의료건 대체의료건 그런 구분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들로 보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잘 발전되기를 
바랄 것이지만, 제도권 내에서는 관점의 차이, 이해 관계의  대립, 법률적 제약 같은 현실적 
사정 때문에 이것들은 상호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늘 대립적이고 서로를 
비판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서로 내 관점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의 관점을 통해서 
보게 된다면 상대의 방법에서도 내가 배울 수  있는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질병의 증상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을 비교해 볼 때, 관점마다  독특
한 장점이 있는가 하면 한계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학에서는 환자에게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면 그곳을 일종의 병증으로 여
기고 대증요법으로 증상을 제거하거나 억압하려고 시도합니다.  열이 나면 해열제나 냉습포
를, 통증에는 진통제를, 설사에는 지사제를,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반면에 대체의학이나 민간요법에서는 증상의 발현이라는 것을 독물, 세균, 물리적  침해와 
같은 인체를 위해하는 조건이 주어질 때 심신이 취하는 대응 수단이어서 생체를 정상화시키
는 치료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증상을 억압하는 것은 자기 치유 메커니즘을 방해하는 것이나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체에는 수많은 평형관계가 있는데 어떤  원인으로 한두 개의 평형
관계가 손상을 받을 때 그 장해를 보상하기 위해서 다른 2차적인 평형관계를 희생시키는 기
전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증상이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서양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증세를 제거함이 옳다고 보고 증세를 없애는  치
료를 하는 반면, 반대쪽에서는 증세야말로 자기치유  과정이므로 억압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증세가 더 잘 발현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의학의  증상 제거 위주의 치료
법은 반성해 볼 여지가 많다고 나는 늘 느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감기에 걸린다든지 해서 열이 나는 경우 나는 해열을 시키지 않고 
일단 하루나 이틀 정도 단식을 권합니다. 생수나 더운 차를  먹게 하고 하제나 관장을 이용
하여 장내의 대변을 모두 배설시켜 위장관을 비우게 합니다. 그리고 약 20분 가량 더운물에 
두 발을 담그고 담요로 온몸을 감싸 땀을 충분히 흐르게 한 후 몸을 닦습니다. 이것은 전통 
민간요법의 족탕법인데 동종요법에서 쓰는, 열이 나면 열이 더 생기는 물질을, 통증에는  통
증을 더 유발시키는 물질을 적은 양  씀으로써 질병의 근원을 해결한다는 원리와도  같습니
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하룻밤 사이에 대부분의 증세가 사라지고 바로 활기가 생깁니다. 증세 
억압 방법은 근본적인 치료를 더디게 하고 약물의 과용으로 몸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많습
니다. 그러니 모든 증세를 무조건적으로 억압하는 식은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서양의학은 
증세에 대한 대응 방법에 있어서 대체의료나 민간요법들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증상을 무조건 더 잘 발현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
니다. 가령 몸에 열이 가벼울 때는 이열치열의 방법이 훨씬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심한 고
열이 계속될 때는 해열이 되지 않으면 심각한 뇌손상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통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프면 낫는다", "통증  자체가 자기 치유과정이다" 이 
말도 맞지만, 이것은 통증의 정도가 그나마  참고 견딜 만할 때의 얘기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도의 심각한 통증을 방치한다면 통증만으로 쇼크에 빠져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
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약을 써서 통증을 완화하는 것이 환자를 참으로 돕는 길입니다. 심한 
출혈이나 탈수, 호흡곤란 같은 증세를 완화시키지 않으면 환자를 곧장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증세를 무조건 제거하는  방법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고, 모든  증세를 제거하지 않는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은 것만도 아닙니다. 
이 두 가지 다른 방식은 각기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어떤 상황
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모든 의사들이나 치료가들이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할 점은 지금 자신들이 
가장 옳다고 믿고 있는 의학지식이 훗날 우스꽝스러운 골동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의학 지식은 한 시대의 한계 내에서 힘을 행사합니다. 모든 것은 변화해 갑니다.  그
러니 자신이 지금 붙들고 있는 지식이 결코 영원한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
고 있는 것이나 남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나 똑같이 한 발짝 물러나서 유연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암 환자 수술해서 얼마나 고쳤소?
  내가 여러 가지 의학체계와 치료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건강과 질병을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게 된  데는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습니
다. 나는 한 때 개인 클리닉을 열기도 했고 그 후 대학병원에서도 일한 적이 있지만 환자를 
보면서 수련의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치곤 하였습니다. 그동안 배운 지식
과 실제의 간극을 절감하며 서양의학의 한계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 전까지는 내가 
받은 교육이 서양의학이고 다른 의학은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서양의학만이 최고라고  생각
했지요. 수술 받은 암 환자가 재발되어 다시 병원을 찾는다든지, 우리 나라에 매우 흔한  골 
관절통 환자들에게 진통 소염제와 물리적 치료가 별 도움이 안된다든지, 만성 간,신장 질환, 
알레르기,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 만성 퇴행성 질환에 서양의학의 치료가 근본적으로 해결
책이 되지 못함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던 중 84년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서
양의학으로는 별 도움이 안되는 만성 난치성 질환자들을 위해 자연 환경이 좋은 곳에 작은 
규모의 요양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단식, 물치료,  부항, 맛사지, 식이요법 등 다양
한 대체의료를 활용하고 있었는데,  공식적인 의료에는 의료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당시의 
내게는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서양의학의 치료법이 약과 수술 중심이라면 그 곳의 
치료법은 그러한 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체의료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
자 그 곳 관계자는 일본의 대체의학 전문가인 마나까 요시오 선생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당
시 이 분은 기따사또 대학 동양의학 종합연구소 주임 교수였는데 침술을 크게 발전시킨 공
로로 일본의 최고의학상을 세 번이나  받은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 분  역시 50대 초까지는 
외과의사로 일하다가 서양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대체의료와 동양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
면서 특히 침구분야에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습니다. 
  나를 향한 마나까 교수의 첫 질문은 "외과 의사라는데,  그래 암 환자를 수술해서 얼마나 
많이 고쳤습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내가 크게 회의하고  있던 질문인데 그 역시 같
은 문제로 고민했다면서 나를 위해 특별히 대체의학과 동양의학의 개요에 대해서 강의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주 흥미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용 슬라이드와  비디
오를 통해서 보여준 것 가운데는 귀에 침을 놓기 전과 후의 변화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 침
을 놓은 한 시간 후에 그 이전에 없었던 미세혈관들과 특별한 화학물질이 새로 형성되었으
며 혈구수에도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서양의학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가느다란 침을 하나 꽂은 것만으로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
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하수 환자에게  침, 생약, 식이요법 등을 써서 
방광 부위까지 죽 늘어졌던 위를 약 4주만에 배꼽 위에까지 끌어올려 놓은 것을 비교한  엑
스레이 필름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하수는 서양의학적 방법으로는 특별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완전 탈모나  난치성 안과 질환들이 대체의
학적 방법으로 치유된 데이터를 볼 수 있습니다. 
  마나까 선생은 자신이 원래 서양의학 전공자임에도 다소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  서양의학
의 맹점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질병을 전깃불이라고  비유할 때 그 전깃불을 
끄기 위한 방법에 있어서 서양의학은 보자기로 전깃불을 싸서  가리거나, 아예 몽둥이로 전
구를 깨버리는 것과 같다면 대체의학이나 동양의학은 시간이 더디더라도 스위치를 찾아내어 
살짝 누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증세 그  자체만을 억압하고 제거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전일적 통찰을 통해 증세의 근본원인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입
니다. 
  나는 당시 마나까 선생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이 분을 만나면서 의
학을 바라보는 데는 여러 가지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체의
료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자 선생은 먼저 한국의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동양의학을 꼭  이
해할 것을 당부했고, 일본의 임상의사들 중에 대체의료를 활용하고  있는 여러 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87년 봄부터 나는 모든 일을 미루고 몇 달 동안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주로 대체의학을 연
구하는 의사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자연요법 연구소를 운영하는 도쿄의 와타나베 쇼우 선생과 나고야의 가씨오 선생의  병원
에서 환자처럼 입원하여 단식을 직접 체험하면서 여러 가지 자연 요법의 원리와 실기를 배
웠습니다. 단식과 생식의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인 개척자로 공인받고  있는 오사카 
대학의 고오다 교수의 연구소에 있는 동안 많은 환자들을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단
식과 생식을 비롯한 자연요법의 탁월한  생명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오사카 대학의 예방의학 교수를 역임한 마루야마 히로시 선생은 당시 일본의 대체의학 연
구가들의 대부격이었는데, 이 분은 동양의 전통의학들 특히 인도의  아유르 베다를 꼭 공부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대체의학에 관한 이 분의 연구 가운데서도 특히 식
용 소금에 대한 연구는 아주 유명합니다. 마루야마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식용으로 널리 쓰
이고 있는 뽀송뽀송한 정제염은 화학약품과 같은 것이므로 사람이 결코 먹어서는 안되며 자
연 그대로의 천일염은 불에 구워 볶음 소금으로 먹을 경우는 입맛에 맞는 만큼 짜게 먹어도 
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 서양의학에서는 짜게 먹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나 이는 하얀 정
제염에 한해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소화기 내가 의사로서 부항과 식양요법을 주로 해서 특히 간장질환의 치료에 명성을 얻고 
있는 후쿠오까의 안도오 선생, <생명의 의학, 생명의 농업>이라는 유명한  저서의 내용처럼 
인간의 생명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자연과의 전체성 속에서 관찰해야 한다는 나라의 생태주
의 의사 야나세 선생, 구마모토 대학 내과 교수로 재직 중에 본인의 만성간염을 대체요법으
로 극복한 뒤 교수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꾸찌 양생요양원을  운영하는 
다께구마 선생, 도쿄 대학 생리학 교수로 재직 중에 서양의학의 약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
안의학을 제시한 모리시타 선생 등을 만났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내가 활용해 온 대체의학
의 방법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주로 이 분들에게서 배우고 익힌 것들입니다. 
  87년 가을 IPPNW(핵전쟁 방지 국제 의사회)와 관련된  일 때문에 미국의 하버드 보건대
학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단체의 공동의장으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로운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분은 심장병 전문의였는데도 대체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 나는 이 분을 통해 서양에서도 다양한 대체의학이 독창적인 의료분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서양의학과 병행하여 단식과 다양한 식양요법, 명상, 최면, 카이로푸락틱, 동종요
법 등과 같은 대체의료를, 면허를 가진 의사들이 환자치료에 실제로 활용하고 있었고, 미 연
방정부와 의료보험 회사들이 대체의학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느꼈습
니다. 
  나는 이때 <자연 치료의 백과 사전>, <자연요법의  실제> 등을 비롯하여 과학적 검증을 
통해 연구된 다양한 대체의학의 문헌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양의학
만을 신봉했던 나는 의학 자체를 보는 고정된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학에는 서양의학 말고도 여러 가지 대체 의학이 있을 수 있으며 같은 질환에 대한 치료
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87년 한해 동안 일본, 미국의 방문, 그리고 국내의 대체의료 연구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 후 다시 환자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나는 화학약품
이나 수술만을 치료방법으로 여기는 데서 상당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양의학
을 도외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환자를 위해서 어떤 것이 최선의 치료법인가를 검토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나는 자연요법과 같은 대체의학의 방법을 통
해서 새로운 차원의 치료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의학에는 독특한 장점이 있다
  내가 대체의학의 장점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활용하기 시작할  무렵인 87년, 50대 후반의 
간암 환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암 덩어리가 두 주먹 크기로  만져졌는데 한 대학 병원 암 
센터에서 한 두 달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이 환
자는 내가 근무하던 병원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통증이 심해지자 단지 진통을 목적으로 나
를 찾아 왔습니다. "꼭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으나 이 방법이 통증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
다"고 설명하자 환자와 가족은 내  방법대로 따르고 싶어했습니다. 생식을  위주로 몇 가지 
식이요법, 명상, 자기암시, 기타 자연요법의 방법들을 병행했는데  환자분이 이 방법을 믿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입원 일주일만에  통증이 거의 사라지고 식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약 40일 가량 입원했는데 이 사이에 많은 호전이 있었습니다.  퇴원 후 자가 치료를 꾸준히 
계속하다가 약 3개월 후 처음 진찰 받았던 암센터에서 재진을 받았는데 너무 호전되어 있어
서 의사들이 이상하게 여기더라는 것입니다. 약 6개월 후 이 환자의 암은 흔적도 없이 사라
져 버렸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심부전증을 앓고 있던 40대 초반의 부인에게서도 특별한 일이 일어났
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 장기간 입원했다가 곧 사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귀가하
여 가족들이 장례를 논의하고 있던 상태에서 나를 만났습니다.  극도로 탈진되어 있어서 숨
만 쉬지 않고 있다면 그대로 시체라고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환자는 내게 오기 전까지 한 
달 가량 대변을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하제와 관장을 통해서 장내를 비우게 한 다음 야채즙
과 생수, 유동식 등을 조금씩 들게 하고, 많은 시간을 사지의 모세 혈관을 미세진동  시키는 
물리적 방법과 족탕법을 시행하였습니다. 명상과 상상법, 그리고 여러 자연요법을 병행한 결
과 약 3개월 후 이 부인은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줄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나 자신에게도 놀라웠습니다.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그대로 시도해 본 것
뿐인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서양의학 교과서에는 말기 암과 같은 난치병 환자 천명 중에 한 두 명이 이유는 알 수 없
지만 저절로 낫는 경우가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체의학을 통해서 좋아지는 경우가  모두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의학에는 서양의학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뛰어
난 장점과 치유력이 있습니다. 마치 서양의학 가운데는 다른 어떤 의학적 방법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치료의 힘이 있듯이 말입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특별한 경험들이 계기가 되어 나는 자연요법 같은 대체의학의 방법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장점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의 근본은 의식의 탐구     
  91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까지 나는 미국의 위스컨신 대학 의과학 센타의 의사학과에 연구
교수로 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연구교수일 뿐 의학사와 의학철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으므로 학생과 같은 입장에서 공부했습니다. 
  내가 의학사와 의학사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그동안 수박  겉햝기식이기는 
했지만 동양의학이다, 대체의학이다, 민간요법이다 하여 이것저것 주워 얻은 정보들을  하나
의 실용적인 체계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하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겠다고 느
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본다고 할 때  오늘의 의학의 참모습을 바로 이해하고  미래의 
의학을 전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기간에 내가 얻은 소득 중의 하나는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 베다(Ajur Veda)를 배
울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국제 아유르 베다 의학회 회장인 Dr. Chopra가 주관하는 이 교육
은 환자를 임상에서 직접 관찰하며 아유르 베다의 이론과 실기를 익히는 코스였는데 이 과
정을 이수한 의사들에게는 아유르 베다 치료법을 환자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라이선스가  주
어집니다. 내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유르 베다 메디컬 닥터라는 라이선스를 얻은 셈이
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 동안 그 실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유
르 베다를 통해서 가장 크게 배운 바는 순수의식의 힘이며,  의학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한없이 광대하다는 점입니다. 
  아유르 베다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서 생명이라는  뜻의 아유르와 지식 또는  과학이라는 
뜻의 베다의 합성어입니다. 아유르 베다라는  말의 의미가 표현하고 있듯이  이것은 한계도 
없는 무한한 생명의 탐구를 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유르  베다는 생명과 자연 
치유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병을 치유시키
는 근본 에너지를 자연치유력이니, 생명력이니 하고 말들은 하지만 대부분의 의학체계는 이 
자연치유력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아예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
니다. 서양의학의 경우 병이 치유되는 현상적인 메커니즘만 설명하고  있을 뿐 현상 너머의 
치유력의 근원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치유력, 생명력의 실체는 
실증과학으로 탐구될 수 잇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유르 베다에서는 건강과 질병을 결정짓는 최초의 원인을  의식과 신념으로 보고 이
것을 다루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내가 생명의 본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생명관과 의료관을 가지
도록 큰 도움을 주시 분은 청화대화상과 해리 팔머입니다. 
  이 분들은 생명과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바는 없지만 내가 만난 가정 위대한 생명과학자이
자 의학자입니다. 이 두 분과의 조우를 통해서 나는 생명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전체적이고 
다차원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새로운 통찰과 메시지를 얻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의 금강선원에 주석하고 계시는 청화대화상께서는 모든  정통적
인 종교와 동서고금의 위대한 철학, 과학사상 가운데에 일관하는 생명관과 우주관을 하나의 
원리로 회통시켜 내보임으로써 생명의 실상, 생명의 본질이란 무엇이며 생명의 본질을 체험
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명징하게 비추어주고 계십니다.  이 분은 
모든 종교와 사상의 갈래를 초월하여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성자 가운데 한 분이
며 온 인류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신성의 빛  그대로입니다. 한 인간이 
마음을 닦고 인격을 완성해 갈 때는 이렇게까지도 아름답고 자비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는 것을 영성을 통해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미국의 플로리다 올랜도의 해리 팔머는 원래 교육심리학자였는데 깊은 순수의식을 체험한 
후, 과거 성인들이 한결같이 증명하였던 우주와 생명의 근본원리를 현대인들의 의식 수준에 
맞도록 쉽게 풀어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바타 코스'라는 영적 
진화 및 의식탐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자기 생명의 본성
과 물질 우주의 창조의 배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 분은 모든 존재가 
한결같이 무한한 생명의 근원임을 자가하게 함으로써 한정된 의식과 주입된 신념의 틀을 넘
어서 삶을 창조적으로 살 수 있게 하고 나아가서 인류가 밝은 문명을 함께 창조할 수  있도
록 그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직접 경험을 통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근원은 한정지을  수 
없는 순수의식이며, 질병이나 고통 또는 건강이나 행복을 지어내는 최초의 원인이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
에서 나는 환자가 자신의 신념체계를 바꾸는 것만으로 질병에서 풀려나는 것을 여러 번 경
험했습니다. 
  여기에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책의 여기저기에서 나는 이 두 분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인용하고 있음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나는 이제 환자의 몸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지 않으며 질병의 최초의 원인이 되는 의식
과 신념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질병을 바라볼 때 종점에는 물
질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관점과 더불어 의식적이고  총체
적인 시각을 함께 갖게 되었다고 표현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한 개인이 질병이나 불건강 가운데 있게 되는 데나 또는 질병이 치유되어 건강을 회복하
게 되는데 있어서 그의 신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치료자나 환자나 신념의 위대한 힘
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치료자와  환자를 도와주는 가장 
큰 힘은 믿음의 힘입니다.
  환자와 그 가족이 지금 만나고 있는 의사와 치료가를 신뢰하고 선택한 치료법을 믿고 있
다면, 또한 동시에 그 의사나 치료가가 자기 환자를 참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치료방법을 믿
고 있다면 반드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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