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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정보/심장

'더 큰 나'를 향해 마음 열기

by FraisGout 2020. 7. 21.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어떤 존재의  일부로 느껴질 때가 있다. 종교
의 맥락에서는 이런 경험을 신과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고, 더 세속적인 의미로 쓸 때는 '
의식, 큰 나(Higher Self) 또는 에너지'를 느낀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경
험을 자신의 신념 체계, 문화적 배경 또는 종교적 선호도에  맞게 설명해줄 때 가장 편안하
고 쉽게 느낀다. 기도나 명상을  통해 더욱 큰 초자연의 힘과  만나는 것은 외로움으로부터 
초월해 가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직접 경험하게 되면 외
롭다거나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장기간 작용하는 만성적 스트레스는 여러 종류의 생리학적 기제를 거쳐  심장
병과 그 밖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는 직장이나 가정과 같
은 외부 환경에서 오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오기도 한다.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어떤 반응이 유해한지 아닌지를  결정하
는 것은 주로 지각이다. 결과적으로  외롭다고 지각하는 것이 스트레스  방식으로 반응하는 
근본 이유가 된다. 내 마음대로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으며, 직장도, 가정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내 자신의  지각 방식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이는 곧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반응 양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어떤 절망이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더라도 이 고통은 금방 멈출 것이며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으면 이  세
상 또한 지옥이 아니라 천당이라고 믿을 수 있다. 세상 그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더라도 마
음만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 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마음은 
지옥 속에서 천당을 만들 수도 있고, 또한 천당 속에서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마음이 변치 
않고 그대로 있다면 어디에 가 있거나 문제란 말인가?" 파탄잘리가 쓴 '요가경'에 바탕을 두
고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1953년에 쓴 '어떻게 신을 아는가?(How to know 
God?)'란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수백만 명을 노예로  삼은 폭군, 필요한 것보다 
수천 배나 많은 돈을 가진 수전노, 사랑하는 친구를  팔아먹은 배신자, 그밖에 살인자, 도둑
놈, 거짓말쟁이,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자 같은 사람들도 모두 궁극적으로 안전과 행복과  평
화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폭력과 사기 행각을 벌여서 혹은  가상의 적을 쳐부수어 모은 재
산으로 안전을 얻고자 한다. 또 우상이나 자기 기만, 자기 만족감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하
거나 갖가지 약물로써 평화를 찾으려 한다. 이 모든 행동을 통해 일시적으로는 약간의 활력
을 얻을 수 있지만 이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에너지의 난사에  불과하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신과 만나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무지로 인하여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1. 의사전달(Communication)에서 마음의 전달(Communion)로. 명상으로 얻는 평화와 활력
과 행복은 내가 원하던 것을 가짐으로써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
로, 하려고만 하면 언제라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내가  고립되
어 있지 않다는 내적 경험을 하면 몸과 마음이 안정된다.  이렇게 안정되고 나면 우리는 삶
의 모든 면에서 넉넉함과 다양성을 맛볼 수 있다. 더 큰 자기와의 만남, 또는 신과  내가 하
나가 되는 경험은 모든 종교나 철학의 공통 주제이다. 예컨대 유대교의 '셰마(Shemah)'는 "
하나님은 하나다.(The Lord is One.)"라는 헤브루말을 번역한 것이다. 예수가 "나와 나의 아
버지는 하나.(I am my father are One.)"라고 한 것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위대한 정신
(great spirit)'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힌두교나 불교에서 신의 본질을 자기 자신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 데서 나온, "내가 곧 신이다.(You are one with God.)"라는 말 등등은 모두 같
은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이를 가리켜 단순히 '평화(Peace)'라고 부른다. 이러한 종교들에서 
신은 어디에서나 나타나고, 무엇이든지 알고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라
고 믿는다. 이처럼 신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신을 믿으면 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
면 이러한 신을 체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종교나 철학에서  이를 
여러 형태로 설명하지만 그 본질은 자신의 마음이 자신과 남, 자신과 신을 분리시키고 격리
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나  모든 사물의 외양이 다양하므로 
모두를 하나의 신으로 보는 것을 가로막는다. 신이나 위대한 힘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철학
적 인식이나 신비주의적 체험만이 아니다. 마음을  교란시키는 것을 가라앉히거나 제거하면 
모든 것을 창조하는 내재적 통일성을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삶의 여러 측면
들에 걸쳐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종교나 문화적 전통에는 초자연
의 힘이니 신을 직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 예수, 부처, 마호메트와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신을 직접 만났다. 이들을 '신을 체험한 사람' 또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이
라고 한다. 이들은 외부로부터 평화를 얻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교란시키는 것을 멈
추게 함으로써 이미 자신이 신성을 지닌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서 초자연의 힘을 얻은 것
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초자연적  힘을 가지 존재임을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외로운 존재 
같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초자연의 힘, 곧 신성이 내재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대  물
리학이 우주를 보는 눈이 위와 비슷하다. 양자물리학은 여러 가지 이름과 형태를 지닌 다양
성의 바탕에 하나의 본질적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물리학자들과 형
이상학자(이 중에 물리학자도 포함)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보았더니  물리학자들이 쓰는 말
이나 신비주의자가 쓰는 말이 비슷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하나의 존재로서의 체험을 기술하
기 위해 사용되는 '새로 생성된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것', '영원한 순간',  '모든 것이면
서도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말들은 역설처럼 들리기도 하고, 의미 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에너지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형태는 다양하게 표상 될지라도 존재의 바탕에  있는 본질은 불변하는 동
일성이라는 것이다. 이를 공식화한 것이 E=MC2(E : 에너지, M : 질량, C : 광속)이다. 이것
은 에너지와 물질이 서로 바뀔  수 있음을 뜻한다. 이를테면 에너지와  물질은 본질이 서로 
같은 것이지만 나타나는 형상에서는 서로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에너
지  저편에는  의식할  수   없는 '초의식(superconsciousness)'   또는  '지적인  그  무엇
(intelligence)' 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려고 이 세
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고 말한 바 있다. 고전적 물리학자들은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가 언급했던 세계관에 동조하는 견해를 보였다.  데카르트는 마음은 신체나 자연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신체는 기계론적 법칙에 따라  기능하는 
단순한 기계일 뿐이다. 사실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의 의사들이  따르고 있는 견해이기도 하
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의학 연구들에서 약물이나 수술이  정신이나 영혼적 과정에 미치
는 영향은 무시한 채 신체적  과정에 미치는 영향만을 탐색하고 있다.  물론 한쪽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서로 분리되어 있다. 너는 너이고,  나
는 나이다. 우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겉보기에 남과 구분
되더라도 완벽히 분리된 별개의 존재는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를 관통하고 
우리 모두를 묶어내는 더 고차원의 힘-그 힘을 무어라 부르든  간에-이 존재한다. 비유컨대 
한 영사기에서 나온 빛이 하나의 스크린 위에 다양한 모습과 상황과 특징을 동시에 드러내
는 것과 같다. 영웅과 악당,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같은 
많은 다양한 모습의 뒤에는 모두 동일한 빛이 있는 것이다.  확장된 자아 또는 하나에 대한 
이런 체험은 세포적 수준이나 우주적 수준 모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고 한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진리의  표현이다. 모든 
종교, 모든 형태의 예배, 모든 종류의 기도나 명상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진리에 이르는 데에
는 수많은 길이 있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초자연적인 '큰 나'와 연결시키는 방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이 명상이다. 그밖에 기도나 귀의의  방법
도 있다. 헌신적인 봉사란 자기 자신을 '큰 나 또는  신의 도구로 보거나 남을 신의 부활로 
보는 것인데 이 장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명상을 이야기할 것이다.
  2. 명상(Meditation)은 무엇인가? 명상의 개념은 대단히 간단하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평화도 스트레스(고통)도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  명상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과정
이다. 마음이 진정되면 평화를 느끼고 소외감과 격리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더 큰 자아
를 만날 수 있다. 명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천은  퍽 어렵다.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명상의 전통이나 명상의 스승들은  훈련되지 않은 
마음을 마치 얼빠진 채 채찍에 얻어맞고 악마에 사로잡혀 쉴 새 없이 끌려 다니는 원숭이로 
묘사한다. 참으로 통제하기가 힘든 것이 마음이란 뜻이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는 여러  가
지 방법이 있다. 이 모든 방법에는 주의 집중과 각성을 드높이고, 마음을 통제하는 방법들이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버드 의대의 허버트 벤슨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명상이 혈압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고, 건강 유지에 드는 비용을 낮추어준다고 주장한다. 그밖에 많은 연
구자들도 명상이 건강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들을 손꼽는다. 그러나 고대의 수련자, 요기, 스
님들은 혈압을 낮추거나 업무 능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명상  수련을 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요가를 개발한 것도 아니다. 명상이 혈압을 낮추고 능률을 높이고 심지어는 심
장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것들은 명상의 본디 목표,  곧 내면의 평화나 행복감의 추구를 
통해 얻어지는 부산물이다. 명상으로 얻은  하나됨의 느낌과 내면적 평화로  만병의 근원인 
고독이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서적, 영적 수준에서 하나됨의 느낌을 체험해나
가면 심장병이 실제로 개선되기 시작하는 것을 심장 PET 관찰 등으로  측정할 수 있다. 심
장과 같은 신체적 수준의 치유는  정서적, 영적 수준에서 시작되는 더  광범위한 치유의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앞장에서 다룬 스트레칭이나 이완법은 오래  앉아서 하는 명상을 돕
기 위해 개발되었다. 마음보다는 몸을 통제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스트레칭이나 이완을 
하고 나면 명상을 시작할 때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마음을 통제하는 것
이다. 마음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어나감에 따라 점차 안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명상은 
신경안정제처럼 삶의 괴로움을 일시적으로 없애주지는 못한다. 그 대신 명상은 괴로움이 시
작되는 내면 세계로 들어가도록 해준다. 명상은 마음이 흥분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고, 그 같
은 고통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명상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
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마음을 괴롭히는 것을 멈추기만 하면  이미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이
다. 명상에 관해서는 많은 오해도 있다. 보편적인 오해의 하나가 명상 과정이 지나치게 엄격
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오해는 명상이 따분하다는 것이다. 때대로 명상은 수동적이고  현실 
도피적이며 적극성이 없는 무기력한 것이며, 생산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
다. 이와는 반대로 운동은 능동적이고 활기 차며, 무엇인가  얻고, 실제로 무엇을 행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명상은 그 무엇보다도 더 충실하게  삶에 뛰어드는 것이며 각성력을 
높이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가  행하고 경험하고 있는 것을 
잘 모르고 지나간다. 짐 빌링스 박사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동조정(automatic pilot)' 방
식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다. 음식의 맛을 음미하지 못한 채 음식을 먹은 적이 많을  것이며, 
운전을 하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차를 몰거나 지나온 길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차를 몰아본 적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동 조정 상태에 있을 
때는 삶의 질을 평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이를테면 
스스로 먹는 음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든지 음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지 못했다
면 음식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이치는 금연을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명
상의 첫 단계는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주의를 집중하거나 각성을 높이는 것이 치유의 시
작이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각성하지 아니하고 문제를 풀거나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
음이 자동 조정 상태에 있을 때 우리의 신경은 어디에 쏠려 있을까? 아마도 과거나 미래에 
가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을 미리 걱정하거나, 과거에 겪었던 일을 가지고 백일몽을  즐기
거나, 다가올 사태를 불안해하는 일들은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과거나 미래에 빠져 있었던가를  깨달을 것이다. 
명상은 현재라는 시간에 주의를 묶어두는 것이다. 현재라는 순간은 평화롭다. 불안, 공포, 걱
정, 우울감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현재 이 순간에 충분히 주의를 집중하
면 죽음조차도 심각한 스트레스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 저명한  심장 외과의사는 심장 수술
을 집도하고 있는 동안에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
에 완전히 몰입하므로 그 자체가 명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다른 의사들은 심장 수술을 몹시 
심한 스트레스로 느낀다. 같은 상황에 대한 반응은 이처럼 다르다. 동일한 상황에  스트레스
를 느끼느냐 즐거움을 느끼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마음이다. 물론 우리는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고 과거로부터 배울 것도 많다. 그러나 시간의 대부분을 미래와 과거
에 매달려 낭비해서는 안 된다. 현재라는 순간은 생산적이다. 명상이란 마음을 훈련하는  학
습의 한 과정이므로 명상을 하면 더 효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다. 마음을 통제하
지 못하면 효과적으로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명상을 하면 미래에 대한 걱
정보다 현재의 과제에 주의 집중을  하게 된다. 현재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면 미래의 일은 
저절로 잘 된다. 미래를 걱정하면 두 가지를 잃어버린다. 첫째는 현재의 즐거움을  잃어버리
며, 둘째는 미래의 성공을 준비할 기회를 놓친다. 미래의 계획을 세우되 미래에 머물지는 말
아야 한다. 현재라는 순간은 유쾌하다 황홀한 일출의 순간이나 음악 연주회, 또는  입맞춤과 
같은 가장 즐거운 순간에조차도 과거나 미래에 주의를 빼앗겨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내가 어떤 음악 연주회에 참석하여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이 음악을 들었던 가장 
최근의 시간에 누구와 함께 이 음악을 들었고, 이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한다고 하자. 이처럼 내가 과거나 미래의 사건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이 순
간 연주되고 있는 이 음악의 즐거움을 놓칠 도리밖에 없다. 현재의 순간은 감각적이다. 주의
를 집중하면 모든 감각적 경험 능력이 커진다.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면 집중력을 유지하는 
능력이 커지기 시작한다. 당신이 경험하는 것들-좋은 음식을 먹거나, 사랑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장미 향기를 맡는 것-에 주의를 집중할 때 즐거움은 배가된다. 실제로 한번 시도해
보고 확인해 보라. 당신이 좋아하는 잘 익은 과일이나 디저트를 조금씩 먹어 보라. 이런  음
식에 주의를 기울여 색과 모양을 확인하고,  눈을 감고 코앞으로 가져와 냄새를 맡아  보라. 
천천히 조금씩 씹어 보고 삼켜  보라. 혀와 목구멍으로 음식이 지나갈  때 느껴지는 야릇한 
냄새와 독특한 질감을 의미해 보라. 이렇게 해 보면 우리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최소
한의 자극이면 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초콜릿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별다른  맛도 
모르고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다. 책을 읽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이때 나는 아이스크림의 맛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다
르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 가장 맛과 향기가 진한 것을 골라 먹는다. 먹을 때에는 지
그시 눈을 감고,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에 주의를 집중하는데  이렇게 하면 이 아이스크림이 
지닌 미세한 맛을 알 수 있다. 사실 맨 처음과 마지막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이 최고다. 먼저 
한 입만 먹고 그 맛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그러면 정말 멋진 맛을 음미하게 될 것이다. 현
재의 순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편식과 같은 생활 습관은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좋지 
않은 습관의 결과이다. 명상은 우리를  현재라는 순간에 머물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과거의 
습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준다. 명상은 새로운 선택을  더 쉽게 하도록 해주어 과
거의 습관에서 벗어나게 한다.
  명상은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데서 시작한다. '의식을 집중한다' 거나 '주의를 집중한다' 
또는 '한 점에 주의를 모은다' 와 같은 말들이 모두 마음을 모으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들이
다. 에너지를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힘이 생긴다.  명상은 이러한 힘을 불러온다. 일반적으
로 요가에서는 자비심과 이타심을 높이기 이한 여러 가지 정신적 수련 방법을 실천할 때 명
상을 먼저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정신적 수련 없이 힘만 키우면 매우 위험스러울 수가 있다. 
명상이 힘을 키우므로 이 힘을 알맞게 사용할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힘은 어떻게 사
용하는가에 따라 치유되기도 하고 파괴가 되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보통 전구는 파장이 다
양한 빛을 내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의 뇌가 다양한 종류의 생각을 하는 것과 같다. 이와 반
대로 레이저 광선은 파장이 하나인 빛만 냄으로써 엄청난 힘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오직 하
나의 생각에만 집중하는 명상도 엄청난  힘을 보여줄 수 있다.(레이저  광선의 힘은 치유에 
이용되기도 하며 파괴에 이용되기도 한다.)  명상을 하면 힘을 얻는다. 명상으로  얻는 정신 
능력을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고, 생산적으로 일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혈압이 낮아지는 것
과 같은 것은 명상의 부산물일 뿐이다. 처음 명상을 배울  때 몹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
다. 마음이 쉽사리 통제되지 않아 계속 흔들리고 이를 뜻대로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상
을 시작하면 의식을 어느 한 곳에 일정한 시간 동안 모아야 하기 때문에 불안과 걱정이  생
긴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런 불안이 생길 때는 그  느낌
이 어떠한가를 살피고, 자신의 호흡이나  소리(기도)로 주의를 되돌리면 된다.  만일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면 하던 명상을 잠깐 멈추고 조금 있다가 다시 시도하도록 하라. 명상은 불쾌
한 느낌을 일으키지 않는다. 명상은  마음을 안정시켜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더 
의식하게 만든다. 이 같은 의식은 산란한 감정을 치유하는 중요한 단계가 된다. 요가와 명상
은 심리 치료의 대용품이 아니다. 그러나 심리 치료가가 명상을  배우면 퍽 쓸모가 있을 것
이다. 그럼 명상은 어떻게 할까? 명상의 방법은 대단히 많다. 다음은 그 중에서도 가장 단순
하면서도 효과적인 몇 가지 방법이다. 호흡에 초점 두기(호흡명상). 특정 낱말(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에 초점 두기(만트라 명상). 주의 집중(mindfulness : 사념처 명상).  자기 분석. 기
도 또는 귀의. 위에 든 방법들의 자세한 내용은 전문 명상 기간에 묻거나 다니엘 골멘의 '명
상의 마음'이라는 책 또는  존 카바트진(KabatZinn)의 책을  참고하라.(카바트진의 책으로는 
장현갑, 김교헌이 번역한 '명상과 자기 치유'가 있다.) 명상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처
음 하는 사람은 하루 두 번을 하는데, 한 번은 새벽에 또 한 번은 저녁에 하고, 한  번에 최
소 5분에서 최대 30분 정도 하면 좋다. 새벽과  황혼녘이 명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하는 명상가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 중에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
다. 불규칙적으로 장시간 명상하기보다는 규칙적으로  단 몇 분 동안이라도  명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가능하다면 어떤 특별한 방이나 자리를 정하여 앉아서 하라. 이렇게 하면 그 
자리에 앉기만 하여도 쉽고 평화롭게 명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을 거듭하면 비록 하
루 한두 번, 그것도 단 몇 분만 하더라도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각성이 높아지는 것
을 쉽게 알게 될 것이다.
  호흡에 주의를 모으기.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 조용히 앉아서 숨
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숨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를 살펴
보고 들숨과 날숨 사이도 살펴라. 할 수 있다면 호흡을 마음속으로 헤아려라. 숨을 토하면서
(토식) "하나" 하고 세어라. 똑같이 두 번째 숨을  토할 때는 "둘" 하고 세고, 세 번째  토할 
때 "셋" 하고 세어라. 다섯까지 세고  나서 다시 하나부터 시작하여 다섯까지  계속 세어라. 
언제나 숨을 토할 때 세어라.(다섯  이상 세면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이
다.)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토할 때마다 몸을 이완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생각을 
멈추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대상-여기서는  호흡-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 목
표여야 한다. 잠깐 동안-처음 시작할 때는  몇 초 동안-마음이 흔들린 후에는  호흡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생각이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거나 미래의 어떤 사
건을 생각하고 있기 쉽다. 그렇지 않으면 "왜 나는 지금  할 일을 놔두고 이렇게 앉아서 호
흡을 살펴보고 있단 말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
을 스스로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상을 하는 동안  코를 긁고 싶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리를 뻗거나 오므리고 싶어지기도 하며,  과거에는 생각지 못한 수 천 가지  잡념이 
생기기도 한다. 명상가들은 어린아이들이나 동물들이 좋아하는  대상을 좇아 이곳저곳 뛰어
다니지만 어느 하나에도 오랜 동안 관심을 두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런 것이 마음의 작용이
라고 말한다. 마음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이러한 방황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방황한다 
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방황은 예상된 것이며 명상을 수련하는 동안 나타나는 극
히 자연스런 것이다. 이런 마음의 동요가 생겼을 때 스스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라. 그리
고 명상이 끝날 때까지 다른  데로 가지말고 그대로 앉아 있도록  몸에게 당부하라. 그대로 
앉아 있으면 망상은 점차 사라진다. 그러나 그냥 조용히 앉아 있기 어려우면 약간 움직이고 
난 후 호흡을 다시 시작하라. 집중을 학습하는 이러한 과정-다시  말해 마음을 자꾸만 제자
리도 되돌려 놓는 과정-을 산스크리트어로 'dharana' 라고 한다. 수행을 해 가면 마음을 통
제하는 힘이 커지고 마음이 쉽게  진정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수련에  바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집중 시간이 길어진다. 만일  당신의 마음이 단 몇 초  동안이라도 방황하지 않고 
하나에 집중하여 머물 수 있게 되면 '선(dhyana)' 이라 부르는 명상 상태의 깊은 이완의 경
지를 경험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상태는 수면 상태보다 원기를 더 잘 회복시켜준다. 궁극에 
이르면 당신의 마음은 '큰 나(대아, 초자연, 신)'를 경험하기에 충분할 만큼 긴 시간 동안 한 
곳에 머물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경지를 '순수 의식(pure awareness)'이라 부르기도 하며, 
'삼매(samadhi)'이라고도 하는데 이 상태에 이르면 외로움과 격리감이 완전히 사라진다.
  소리에 주의를 모으기. 소리에는 강한 힘이 있다. 소리에 따라 우리의 마음 상태가 달라진
다. 전쟁터에서 연주하는 행진곡이나 경기장에서 연주하는  응원가는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
들고 흥분시킨다. 반면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나 자장가는 이완감을 불러온다.  이러한 
소리에는 아무런 문자 정보가 담겨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마음을 집
중하는 오래된 방법의 하나로 어떤 특정한 소리를 계속 반복하여 읊조리면서 명상하는 방법
이 있다. 이런 반복하는 소리는 세속적인 소리, 예컨대 '하나'란 말을 되풀이하여 말하는 경
우도 잇고,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소리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신념 체계와 일치하
고 읊조리기에   편안한 소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가장   기본적인 소리는   '콧소리
(humming)'이다.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 저절로 나는 
콧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의 전통에 따르면 모든  소리는 바로 이 소리로부터 나
온 것이라고 한다. 마치 어떤 조각가가 여러 형태의 조각상들을 만들지만 이 모든 조각상들
이 하나의 점토로부터 만들어지듯이. 여러 종교에서는  우주가 이러한 소리로부터 만들어졌
다고 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하
는 식으로. 삶의 모습은 다양하기  그지없지만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단일한  것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콧소리는 무척 평화롭다. 모든 문화나 종교에 등장하는 기도나  명
상의 일부에서 이런 콧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소리를 의미로 옮
기면 '평화(peace)'   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예컨대 산스크리트어의   'om', 헤브루어의 
'Shalom', 아라비아어의 'Salaam', 영어의 'amen', 무슬림어의 'ameen' 이  모두 평화를 의
미한다. 명상할 때는 이러한 콧소리가 들어가는 특정한 낱말 하나를 선택하라. 어떤  경우든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와 일치하는 특정한 하나의 단어나, 문장 또는 구를 사용하라.  유태인
이라면 옴(om) 대신에 shalom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개신교 신자라면 ameen보다는 
amen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종교적 의미가 없는 one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은
데, 평화(peace), 이완(relax), 사랑(love) 같은 말도 종교를 떠나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단어가 가장 좋을까? 어쨌든 반복하기 좋은 단어나 짧은 구를 선택하여 토
식을 할 때 읊조리도록 하라.  명상가들은 이런 소리를 반복하여 음송하면  두 가지 이익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소리의 반복이 의식을 집중시켜주고, 둘째는 이 소리가 라디오  주파수
를 맞추듯이 평화의 상태를 이루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명상이 마치 주문을 외는 것처럼 
미신적인 행위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 의하면, 전자나 그밖에 원자를 이
루는 하위 물질들을 서로 다른 에너지 수준 사이를  끊임없이 진동한다고 한다. 겉모양으로 
고체로 보이는 물질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 뿐이지 모든 물질은 진동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동은 둘레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자기 공명 
영상(MRI)은 강력한 자장이 진동하고 있는 환자의 전자를  일정한 체계로 정렬시키는 것이
다. 결국 명상이란 마음을 조화로운 체계로 응집시켜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을 할 
때는 먼저 조용한 장소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는다. 숨을 들이마신 후, 토하면서 
특정한 말이나 구를 암송한다. 이렇게 하는 데 정해진 최선의 바른 방법이란 것은 없다.  자
신이 편안해지고 진정되는 것을 느낄 정도의 속도와 음조를 발견하여 그대로 하는 것이 최
상의 방법이다. 마음이 산란할 때는 자신이 선택한 특정 단어나 구로 되돌아와 그것을 반복
하라. 마음이 산란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므로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 또 소리  외에 
다른 어떤 것에 생각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조용히 그 소리로 되돌아오도
록 하라. 이처럼 방황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언제나 처음 정했던 그 소리로 되돌아오면 
된다. 잠깐 동안 특정 단어를 소리내어 반복한 후에는 곧 소리를 내지 말고 그 단어를 마음
속으로 반복하라.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반복하는 것이 효과가 월등하다고 한다.  이 
같은 훈련이 습관이 되면 버스를 타고 있거나 전철을 타고 있거나 심지어는 줄을 서서 기다
리고 있는 동안에도 말없이 단어를 읊조리며 명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의 집중 명상. '주의 집중(mindfulness) 명상' 이란 하는 모든 일에 주의를 집중해 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번에 10-20분 정도 호흡이나 소리 같은 어떤 특정 대상에 마음을 모으
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삶 전체에 계속하여 마음을 집중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주의 집중 
명상의 요체는 어떤 판단이나 편견 없이 주의를 집중해  나가는 것이다. 판단은 유사성보다 
차별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소외감과 격리감을 부른다. 만일 자신을  다른 사름에 비해 못났
거나 잘났다고 판단하거나,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거나, 똑똑하다거나  멍청
하다고 판단하거나, 이쁘다거나 추하다고 판단하거나,  강하다거나 약하다고 판단하거나, 뚱
뚱하거나 야위었다고 판단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다고 판단하면 당신은 계속해서 격리감
을 느끼게 될 것이다. 판단은 선입관을 강화하여 충실한 경험을 제한시킨다. 우리가 계속 우
리의 경험을 판단한다면 경험 자체를 충분히 체험하지 못한다.  판단을 하면 당신은 심판자
가 되고 또한 집행자가 된다.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심판하고  당신 자신을 벌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생각하는 것, 곧 판단하는 것
을 멈추면 존재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판단하는 것을 
멈춘다고 해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판단을 멈추면  존재나 경험을 제한하던 상
태가 중단되기 때문에 더 충실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 여기에 주의 집중 명상의 한 예를 들
어보기로 하자. 잠깐 동안의 당신이 느낀 것에 대해 어떤  판단도 어떤 억압도 하지말고 또 
느낌에 동참하려고도 하지말고, 순수하게 느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단지 경험하고만 하라. 단
지 경험한 것만을 살펴 보라. 그러고 나서 '나는 이렇게 느낀다'로부터 '그는 이렇게 느낀다
'로 입장을 바꾸어 보라. 곧, 1인칭의 존재에서 3인칭의 존재로 입장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
런 다음에 잠깐 동안 관전자의 입장을 취하라. 눈을 감고 당신의 의식을 생각으로 가져가라. 
생각을 통제하거나 지시하지 말고 하나 하나의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관찰하도록 하
라. 다시 말해 내적 관찰자의 관점에서  편견이나 판단 없이 관찰하도록 하라. 만일  자신의 
생각이 '좋은 생각이야. 나쁜 생각이야. 유쾌한 생각이야. 고통스런 생각이야' 하고 판단하고 
있음을 발견하면 조용히 관찰자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자신의 판단을  살펴 보라. 그렇게 관
찰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당신 
자신이 판단하고 있는 것을 관찰만 하면 판단은 멈출 것이다. 카바트진 박사는 '명상과 자기 
치유'에서 주의 집중 명상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이 고요하지 않다면, 운동도 음식도 조절도 약도 아무 소용없다." 사뮤엘 존슨
  "넘치는 건강의 비결은 운동하고 싶은 충동이 강할 때 자리에 누워서 충동이 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J. P 매케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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