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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헤비타트

세상의 양심이 되어

by FraisGout 2020. 9. 20.

  1985년 1월, 나는 캘리포니아  주를 가로지르는 빡빡한 일정의 강연회로 한창 바
쁘던 중이었다. 이미 8개 도시에서  연설을 끝낸 나는 은퇴한 장로교 목사인 번 로
버트슨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스탁턴에서 산타 로사로 달리고 있었다. 번은 건
강이 나빠 일찍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지금은 상당히 회복해서 헤비타트에서 자원
봉사를 할 수 있을지  의논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풍성한 포도원이 띄엄띄엄 수
놓인 아름다운 시골길을 달려 북쪽으로 향하며, 번은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 가운데 그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밀라드, 몇 년 뒤에 헤비타트가 어떻게 되기를 바랍니까?"
4년 전에도 나는 이와  비슷한 중대한 질문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역시 캘리포니아 
사람으로부터였다. 그러나 그  질문은 헤비타트의 '목표'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
는 좀 달랐다. 번은 헤비타트가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를 물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그의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답이 떠올랐다. 
"헤비타트가 보금자리 문제에 관한 한 인류의 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헤비타트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불어넣어 행동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양심을 일
깨워야 했다. 우리는 이 문제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목표를 촉구하고, 수많은 방면
에서 변화의  기회를 주어 극빈주택을 용납하지  않게 만들며, 주택 보급의  문제를 
양심의 문제로 만들어야 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나는 앨러배머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하지만 아
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우리는  기독교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교회에 
갔다. 일요일 아침, 일요일 밤, 수요일 밤 기도회까지. 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
들이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셨다.  그러나 나는 빈민 문제에 대한 양심을 교육
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성장기에  배운 바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신앙인의  조건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목사가 교회 앞에서 일어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오"라고 말
하면 결심을  하고 교회복도를 걸어나가 죄를  지어서 유감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었
다. 그러고 나면, 감리교냐 침례교냐에 따라 물을 조금, 또는 와창 뒤집어쓴 다음, 
일요일 낚시와 이별을 고하면  된다. 만약 결혼을 했다면, 다른 여자들과 공개적으
로 바람을 피워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술주정을 해서도 안 되며, 일
요일에 야구를 하거나 야구경기  구경을 가도 안 된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자동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모두 포기해야 하며 최소한 일주일에 세 번 교회에 
나가야 했다. 또 이것 저것 사소한 문제가 끼어들지만, 결국 진정 경건한 그리스도
인이 되기 위해서는 목사님 같은  말투로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것들만 잘 되
면, 참된 신앙인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과 털끝만큼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자라면서  빈민 문제와 결부시켜 양심의  일깨움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나라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해 양심의 깨우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품고 계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시 저편에는 머리를  가려줄 튼튼한 지붕 하나 없이,  발 밑에 견고한 마루 하나 
없이, 단열재 하나 없이  사는 이웃들이 있는데, 이편에서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면
서 살고 있다면, 그런데도  나아가 헐벗은 이웃들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양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헤비타트 노동수련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캠프를 마치
고 돌아갈 때쯤엔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양심을 교육하는 우리의 동역관계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우리는 기도와 실천의 날을 위한 탄원서와 전단, 자동차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 안
내 소책자, 슬라이드 등을  제공하며, 헤비타트 관련서적을 배포한다. 우리는 기금
을 조성하고 양심을 일깨우기 위한 걷기운동을 개최한다. 1983년에는 인디애너폴리
스, 1986년에는 캔사스 시티,  그리소 1988년에는 애틀랜타가 목적지다. 당신은 우
리와 합류할 수도 있고, 독자적인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나는 일년에 수십  편의 항공기를 탄다. 내  옆자리에 누가 앉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 만은 확신할 수 있다.  비행기 바퀴가 다음 공항에 닿을 때쯤, 내 옆 자리의 승
객은 헤비타트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전세계의 주택보급 
문제가 주요화제로 떠오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집으로 가는 길에 예전에 눈여겨 
보지 않던 것들이 자꾸만 눈에 뜨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  나는 미시시피 주 투펠로로 강연을  떠났다. 아직 그 곳에는 헤비타트가 
없었다. 당시 나를 초청한 사람은 연합 감리교 목사 커티스 페트리였다. 투펠로 근
처에는 알고마, 폰토톡,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작은 마을들이 있
었다.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 마을들을 두루  돌며 강연을 했다. 월요일  아침 
내가 커티스 부부와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커티스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돌아오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밀라드, 무슨 전화인지 말씀드릴까요?  어제 교회에서 당신 강연을 들었다는 어떤 
남자분의 전화예요.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데 맞은 편에 있는 집이 딱한 몰골을 하
고 있더래요. 그런데 전에는 한번도 눈여겨 보지 못했다는 군요. 그는 너무나 기분
이 상해서 옆집의 이웃을 찾아가서는-그 사람도 어제 교회에 같이 갔었답니다-길거
리 맞은 편의  집이 저런 몰골인 줄 전부터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답니다. 그 이웃 
사람은 흘낏 그 집을 보더니 자기도 지금껏 몰랐다고 하더래요. 두 사람은 당장 그 
집을 찾아갔답니다. 그 집에는  허꼬리만한 돈으로 살아가는 미망인이 살고 있었대
요. 집은  물이 새고, 벽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고, 마루는 다 떨어져 ?린Т囑遮?
군요. 그래서 오늘 하루는  일을 쉬고 그 부인의 집을 고치겠다고 전화했다고 하네
요!"
양심을 깨우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헤비타트는 무엇보다 보금자리를 제
공하는 일에  전념한다. 그러나 헤비타트 사람들은  항상 사람 자체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관련사업들이 아울러  발전해왔다. 그 각가의  사례는 
과연 우리의 일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생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어준다.
조지아 주 밀리지빌에서, 조와  스테파니 토마스 부부는 장애인을 위한 헤비타트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가맹사업장들이 장애인을 위한 집을 지을 때마다 기금을 제공
하고 특별자문을 도맡는다.
뉴욕 시에서는 사업장 책임자 롭 드로커가 지역방송국에서 지나치는 말처럼 언급한 
것이 '침낭 작전'이라는 전면적  운동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집이 
없거나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사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헤비타트에서 예수 경제학
에 따라  '판매'하는 따뜻한 침낭을 구입했다.  침낭은 결코 집다운 집의  대용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겨울밤에는 삶과 죽음(혹은 동상)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의  결과로, 집 없는 이들 중 몇 사람은 감화를 받아 뉴
욕 사업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다.
아메리쿠스에서는 중고안경들이 하루에도 몇 상자씩 사무실도 배달된다. 이 안경들
은 분류와 포장을 거쳐 55갤런들이 드럼통에 담겨 안경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아프
리카, 남아메리카, 파푸아뉴기니 등의 헤비타트 현장으로 운반된다. 기껏해야 쓰레
기통에 버려질 운명의 이 안경들은 이렇게 최저가격으로 판매됨으로써 안경이 절실
히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를 채워준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그 수익금은 또 한 채의 
집을 짓는 데 보탬이 된다!
주택문제에 관해 양심을 일깨우는  작업을 하는 조직들은 헤비타트 외에도 많이 있
다. 1987년부터,  유엔은 '무주택자를 위한 국제  보금자리 마련의 해'를  후원하고 
있다. 이 부문에 대한  강조는 금세기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 문제를 국제적인 
규모에서 조명하고 퇴치하기 위해서, 전세게에 걸친 사업게획과 프로그램들이 진행
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노력들을 전적으
로 지지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일깨워서 그들의 행동을 촉구해야 한다. 
전세계인의 양심을  교육하려는 캠페인은 끝없이  확장되는 동지애를 필요로  한다. 
헤비타트는 다른 단체들과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언제나 기꺼이 그렇게 한다 선명
회는 헤비타트 해외현장에 꼭  필요한 이동식 제재소를 몇 대 제공해 주었다. 선명
회는 미국에서도 미시시피  델타 지역개발에 공동참여했을 뿐 아니라, '교도소선교
회'와 힘을 합쳐 전국에 걸친 헤비타트 사업장에 연방 감옥죄수들로 이루어진 노동
수련캠프를 조직해 보내주었다. 찰스  콜슨이 설립한 세계적 명성을 가진 교도소선
교회의 관장 하에서, 예수를 믿는 수인들은 그룹을 형성해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 
가석방 되어 헤비타트 사업장에서 건설 일을 돕고 지역주민들의 가정에 머물렀다.
1985년 '미국 유대인 봉사회'의  자원봉사자들은 텍사스 주 아마릴로의 현장에서 7
주동안 일했다. 부페르탈에 본부를  둔 서독 교회기구인 '통일 복음주의 선교회'는 
자이레 헤비타트 사업장에 기금과 자원봉사자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게속해서, 함께 일해줄 기구와 단체들을 찾고 있다.
우리는 헤비타트와  동역하는 단체들이 이토록  늘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어떤 
때는 지회가 너무 늘어나다  보니 새로운 후원자들이 헤비타트의 본모습을 잘 알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한 번은 아메리쿠스  헤비타트의 동지인 존과 해리엇  베이츠 
부부가 밀워키로 휴가여행을 갔다가 내미있는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어느날 저녁, 
위스콘신에서 초대를 받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헤비타트가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밀워키에 새로 생긴  지회의 일을 얼마 전부터 돕기 시작한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아메리쿠스에도 헤비타트가 있단 말인가요?"
베이츠의 친구가  헤비타트의 원조를 알건 모르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양심이  깨어났고, 그 결과 극빈주택 문제를 돕기 위해 일하
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이 전세계 각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짓는 집 한채 한
채, 우리가 개축하는 낡은 건물  하나 하나, 우리가 개보수하는 주택 한 채 한채가 
모두 한 편의 설교이다. 이것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또 그 곳을 지나치
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징표가 된다. 이 집들 한 채 한 채
는 각각 하나의 양심이 되어,  그 집을 짓는 사람과 그 집에서 사는 사람 모두에게 
비인간적인 주거지가 지상에서 사라질 날이 오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헤비타트 운동은 놀랍도록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어서, 이 곳 아메리쿠스의 국제
사무국에서조차 전체적인 발전상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1980년 <모르타르에 깃
든 사랑>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미합중국 전역에 있던 사업장의수(11개 곳)보다 5년 
뒤 1개 주에 생겨난 사업장의  수가 더 많을 정도이다. 1995년까지 우리는 미국 전
역에 걸쳐 1,000여 군데에 헤비타트 사업을 시작하고 최소한 해외 50개국에 헤비타
트 사업장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이든 해외든 그 어디서나 새로운 입주자가 그 지역에 있는 인류를 위한 기금에 
상환금을 납입하면,  그 돈은 순환된다. 각각의  가족은 상환금을 미리  납부하거나 
시간과 노동을 무료로 제공합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도록 권유받는다. 헤비타트의 
프로그램은 '적선'이 아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새 힘
을 주고자 하며, 절대 의존심리를 부추겨 인간의 품위를 짓밟지 않는다.
헤비타트의 개념은 어느 곳에서나  통한다. 다만 세 가지 핵심적인 기준을 꼭 준수
해야 한다.
첫째, 각각의 사업현장에는 헌신적인 기독교 지도자들로 이루어진 핵심집단, 즉 마
음을 합쳐 어려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는 일에 예수 경제학을 충실히 적용할 동역
자들이 꼭 있어야 한다. 둘째로, 선정도니 가족들은 자기 집을 짓고 다른 사람들의 
집을 짓는 과정에 동참해야만  한다. 셋째로,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모르타르에는 
집을 받을 가족들을 향한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담겨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축하할 일이  많다.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헤비타트 운동
으로 일구어낸 기적도 감사하지만, 린다와 내가 함께 누린 보람찬 삶도 감사하기만 
하다. 오랜 옛날 뉴욕 시에서 화해한 뒤 우리는 줄곧 주님의 축복과 인도를 느껴왔
다. 그리고 1985년 8월의 어느 날 뉴욕에서 카터 대통령과 두 번째 노동수련캠프를 
끝마칠 무렵, 린다와 나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그것은 그가 보여주신 길로 계속 나아가라는 계시가 분명했다.
우리는 메트로 교회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영화를 보러 타임즈 스퀘어까지 걸어가
기로 했다. <백 투 더 퓨처> 가 브로드웨이의 한극장에서 상영중이었다. 이 SF코미
디에서는 한 10대 소년이 갑자기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미래의 부모를 만나게 된다. 우리  두 사람은 이 영화를 아주 감명깊게 보았다. 내
용도 재미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차원에서 상징하는 바가 컸다. 극장문을 나서
면서 우리들은 '과거로 돌아가' 20년 전 뉴욕 시에서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1965년의 그 날 밤은  11월이었고 추웠다. 우리 두사람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린다
는 그 ㅂ  주 전 나를 떠나 별거를  시작했다. 이혼할 생각도 했다. 린다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마치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듯 대규모 정전이 있었다. 나는 마
침내 앨러배머 주 몽고메리의 우리 집을 떠나 뉴욕으로 린다를 찾아갔다. 
어느 날 저녁, 린다와 나는  영화<결코 늦지 않으리>를 보러 갔다. 그 제목은 예언
적이었다. 몇 시간 후 어떻게 서로를 배신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렸는지 고백하는 
가운데 눈물이  홍수처럼 흘러내렸고, 화해가 싹텄다.  그렇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 날 밤 우리는 사업을 정리하고, 재산을 헌납하고, 우리의 살에 예비해두신 하나
님의 길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20년이 흐른 뒤 우리는 잃게 뜻 깊은 장소로 되돌아온 것이다. 영화가 끝나
고 나서, 우리는 5번가로 걸어가 성 패트릭 성당에 들렀다. 우리는 1965년의 그 날 
밤에 이 차가운 계단에 앉아 우리의 삶을 온통 봐꿔놓는 결심을 했다. 20년의 간격
을 두고 다시금 55번가에서 5번가를 건너가는데, 린다가 갑자기 외쳤다.
"그때랑 똑같은 달이 떴어요!"
나는 경외심에 가득차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보름달이 정확히 55번가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길모퉁이에 서서 물
끄러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참 후에야 우리는 천천히 성당의 계단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우리는 거기에 앉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 함께 
앉았던 때와 그  후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가마히  돌이켜 보았다. 그 곳을 떠나며 
우리는 20년 뒤 이 계단으로 다시 돌아와 또한번 이야기를 나누자고 약속했다.
코이노니아 농장에 몇 사람이 모여 어려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집을 짓자는 야
기를 나누기 시작한 지 20년이 약간 못 되었다. 1968년 조지아 주 섬터 카운티에서
는 극빈주택을 추방하려는 우리의 꿈이 그저 엄청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1986년 이 책이  조판에 들어갈 때쯤이면, 헤비타트와 코이노니아 동지회의 
일꾼들은 섬터 카운티에만도 200채의 새 집을 완공하고 수많은 집들의 개보수를 완
료할 것이다. 우리의 꿈은 더 이상 엉터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훨씬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극빈주택의 자취를 없앨 것이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만일  선의를 가진 전세계 사람들이 이 엄청난 일을 극복하
는 데 힘을 모은다면 말이다. 양심이 일깨워진 사람들이 또 다른 이의 양심을 일깨
운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작지만 살 만한 집을 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
을 해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기를.
헤비타트 운동의 깃발 아래, 아니 어느 깃발 아래에서든 우리와 함께 힘을 합치자. 
주님께서 어느  길로 인도하시든, 그 길로  따라 가자. 무너져 내리는  혐흙집에서, 
썩어가는 도시 빈민가에서, 혹은 마분지로 만든 집에서, 심지어 맨땅바닥이나 시멘
트 보도 위에서 자는 사람들을 구출해내자. 우리는 이제 서로 서로, 그리고 하나님
과 더불어 위대한 동역관계를 맺었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자이레 응톤도의 정력적인 헤비타트  사업장 이사 샘 몸퐁고는 언젠가 우리의 현상
황을 한마디로 완벽하게 요약했다. 
"전세계 주택문제는  물질이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판잣집은 이제 그만! 이제 전세계의 극빈주택은 사라질 때가 되었다! 우스꽝스럽다
고? 황당무게하다고? 불가능하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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