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는 그들의 걸음새가 안단테의 황새 걸음이라면 한국인의 걸음걸이는
비바체의 뱁새걸음이다.
우리 한국인이 열을 서서 기다리지 못하고 열 서는 것을 포기하거나
새치기하거나, 질서를 문란케 하는 통성은 바로 결과주의가 그 심리적 원흉 가운데
하나랄 수 있다. 줄서서 기다려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과정이요, 표를 사거나 차를
잡아 탄다는 것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빨리 얻고자 '선'을 못 기다리기에
공중질서가 엉망이 되곤 한다.
시애틀 국제공항에서 미국 국내항공인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잡아타고 그날 밤까지
워싱턴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었다.
시애틀 공항은 구내가 복잡하기로 소문나 있으며 특히 구내 전동차의
안내표지판이 없어 초행자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시행착오의 실험이라도 당하는
쥐처럼 왔다갔다 하다가 갈아탈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데스크를 찾아간 것은
출발시간 5분 전이었다. 한데 30여 명의 손님들이 탑승 수속을 밟고자 줄지어 서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잡아먹는 시간이 빨라야 1분 남짓인데, 이러다가는 비행기를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냥 초조해졌다.
줄을 벗어나 데스크 앞에 가서 항공사 여직원에게 시계를 가리키며 초조해진
사연을 말하자 안경너머로 바라보며 태연스레 기다리면 된다고 말할 뿐이었다.
되돌아가 줄을 서 있는데 한결 앞줄에 서 있던, 아무도 일본 사람만 같은 동양
사람이 데스크 앞에 다가가 뭐라고 물었다. 이 여직원, 안경 너머로 나에게 하듯 한
동작을 짓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 그 사람도 나만큼 초조하여 나오 똑같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초조해 하는 것은 동양 사람뿐인 것 같았다.
같은 항공기 편으로 워싱턴에 가게 돼 있는 바로 앞에 서있는 미국 사람은 발로
장단을 맞추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일부러 '출발 시간이 넘었는데도 불안하지 않는가.'고 물어 봤다. 이 친구는 두
손바닥을 펴보이면서 그것은 우리의 사정이 아니라 저들(항공사)의 사정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중부 오클라호머에서도 일요일 아침 식사를 파는 집이 한 집밖에 없어서 셀프
서비스의 밥상을 들고 30분 기다리다가 어쩐지 거지만 같은 궁상맞은 생각이 들어
이를 포기, 아침을 굶은 적도 있다.
디즈니랜드에 근간에 새로 생긴 서부 시대의 철도여행 코스가 인기를 독점하고
있었다. 30분 기다렸는데도 앞으로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아 포기하기도
했다.
휴일의 디즈니랜드 인기 코스는 대체로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이 상식처럼 돼
있다. 그러기에 입구마다 기자를 너댓개 붙여 놓은 것 같은 지루한 철책 길이
마련돼 있다. 디즈니랜드는 미국 생활에 길들지 않은 아이들로 하여금 기다리는
훈련을 시키는데, 훌륭한 교육장이란 한국 친지의 귀띔이 실감이 났다.
오일 쇼크 때, 미국의 서부에서는 평균 10__15시간 열지어 서 있어야만 휘발유 한
초롱 살 수 있는 그런 며칠 동안이 있었다 한다.
이 대열에 한국 사람이 끼어 서 있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들었다.
한국인 경영의 주유소에서 뒷구멍으로 얻기도 했지만, 차라리 며칠 차를 못
굴리고 말지 하루의 전부를 기다리는 데 쓸 만큼 정신적으로 느긋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파리의 지하철도는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구경하려면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한 것이다. 70명쯤 타는 배로
안내해 주는데, 희망자가 너무 많아 세 시간은 열지어 서서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사실 기다리는데 체질화되지 않고는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 생활은 불가능하다.
스타인 벡의 "미국인론" 가운데 미국의 도시인들은 그들의 일생에 있어 잠자지
않는 시간의 3분의 1을 기다리는데 낭비한다고 지적하고 미국 인생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헤쳐 놓기도 했다.
반드시 기다린다는 것과는 달리 구미인들은 대체로 아무일 하지 않고 가만히 안자
있는데도 도사가 다 돼 있다. 뉴욕 5번가의 소공원을 오전 10시쯤 지나갈 일이
있었다. 그 공원의 한 벤치에 코트 빛깔이 원색으로 요란스런 한 중년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가만히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내력에 질려 버렸다. 그러기에
구미의 공원들은 대체로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면 아마 발광을 하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의 공원은 온통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분자들의 브라운 운동으로
법석대기 마련이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 보면 중국의 공원에서도 하루종일 또는 며칠 동안을
어항 속의 고기 노는 것, 조롱 속의 새 노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기도 하다.
한국의 술집하면 시끄럽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미국의 바에 가면 조용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제각기 혼자 와서 술잔 하나 들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기
때문이다.
비단 아무 일 하지 않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속성과 연관된 속성으로
구미인들의 걸음걸이가 대체로 느리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거리를 걷는 그들의
걸음새는 안단테의 황새 걸음이라면 한국인의 걸음걸이는 비바체의 뱁새 걸음이다.
구미에서 한국 사람을 식별하는 방법으로 피부색과 키가 작다는 것을 드는데 사실
키가 작다는 것은 중, 북유럽에서나 해당되는 기준일 뿐 그 밖의 나라들에서는 판단
기준이 못 된다. 오히려 키보다는 걸음새의 속도로 식별할 수가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궁인 윈저 성을 들렀을 때, 들어가서는 안 되게끔 된 정원에
히피 스타일의 미국 청년이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를 멀리서 본 경비 순경이 이 범법자에게 접근하는데 마치 산보라도 즐기듯한
태평스런 걸음새로 다가가는 모습은 적이 목가적이었다. 저렇게 걷다가 히피가
도망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오히려 그것을 보는 한국인이 초조해지는 그런
걸음새였다.
인도 캘커타에서 네팔 접경까지 수일 동안의 기차 여행을 한 일이 있다. 기차가
정거장에 멈추면 승객들이 쏟아져 나와 그 인근에 흩어져 차를 끓여 마신다.
더러는 깡통을 들고 증기 기관차 옆에 장사진을 치곤 한다.
그럼 기관사는 증기기관 속에서 덥혀진 물을 호스로 뽑아 이들에게 배급을 한다. 그
물로 느긋하게 차를 타 마신 연후에 기차는 떠난다. 그리하여 목적지에 닿았을 때는
보통 하루나 이틀씩 연착하는 것이 상식이 돼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세상의 눈의 초점이 돼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정부 관리가 소련의 원조로
지었다는 발전소를 구경시켜 준 일이 있다.
규모는 컸으나 먼지가 자옥하고 거미줄이 쳐 있곤 하여 왜 가동하지 않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발전 터빈의 부속품 하나를 소련이 끼워주질 않아 3년째 그냥
두고 있다 했다. 그까짓 3년쯤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랍 지방에서는 겨우 교각 서너 개의 짧은 다리 하나 놓는 데도 5개년 계획으로
놓고 그나마도 2차 계획으로 넘어가서 완성시키는 경우가 많다 한다.
중동에 한국건설용역이 대거 진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이 만만디의 시간
감각에서 볼 때 한국인의 동작이나 작업이 제트식 초스피드로 인식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멘에 이주한 유태인은 2천년 가까이 외부의 문명 세계와 격리된 체 살아 왔다.
그런데 어느 날 풍문에 팔레스티나의 땅에 자기네의 조국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2천년 동안 기다렸던 그 약속이 실현됐음을 안 그 순간에 4만 3천
명의 유태인들은 손에 들 수 있는 생활 도구만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부동산이나 집이 되는 가산은 그 자리에 버려 둔 채.... 약속된 땅, 그들의 조국을
향해 남부여대하고 암벽을 넘고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당황하여 군용 수송기를 전세내어 이들을 조국까지
운반, 사상 최초의 공수에 의한 민족대이동이 이뤄진 것이었다. 그들은 이 하늘의
민족대이동을 두고 '성서에 쓰여 있는 것처럼 바람의 날개를 타고 약속의 땅에
돌아온 것이다.'고 합리화했다 한다.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가
당도하니까 타고 가는 식으로 2천 년을 그런 자세로 기다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한이 날 정도로 오싹한 기다림의 체질이다.
왜 이 세상의 대부분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잘도 기다리고 또 느긋하고
만만디인데 우리 한국 사람만은 못 기다리고 초조하고 각박한 것일까. 결과주의가
이렇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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