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못보고 또 말초적인 이같은 한국인의 성향에는 여러가지 복합 이유가
있겠지만 맨 먼저 만성결과주의의 병인으로서 한국의 풍토에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한치 눈앞을 못 본다는 말도 있듯이 한국인의 결점으로 바로 눈앞의 일만 보고
행동한다든지 무슨 일을 할 때 먼 앞을 보지 않고 우선 편리한 대로 오솔길을 찾는
버릇이 곧잘 지적되고 있다.
런던에서 양말 하나 사고 싶어 조그마한 가게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진열장 속에
쌓여 있는 양말 가운데 맘에 드는 회색 양말 하나를 손가락질 했다. 나는
한국에서처럼 그 점원 아가씨가 그 지적한 양말을 꺼내 줄 것으로만 알았다. 한데
내 기내와는 달리 이 아가씨 꺼내 줄 생각은 않고, "발 사이즈가 얼마입니까."고
묻는 것이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면 어느 한 사람 예외없이 양말을
위한 자기의 발 사이즈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양말을 위한 발 사이즈
단위 자체도 없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느낀 것이 있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아무리 빛깔이 좋다 해도 발에 맞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양말을
고를 때는 회색이든 갈색이든 그 빛깔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발크기를 말해야 옳다.
아마 이 아가씨는 물건 사는 순서도 모르고 물건 사려는 사람 처음 보겠다고 속으로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은 대체로 무슨 물건을 선택할
때 실용성이나 실용가치보다 색상이나 모양 같은 감각 적인 것이 선택 순서에서
앞서지 않나 싶다. 바꿔 말하면 빛깔이나 모양이나 디자인을 먼저 보고 그것에
합당하면 사이즈라든지 또는 실용가치를 다음에 따진다. 이성보다 감각이 앞서고
실용보다 형식이 앞서며 훗날 생각보다 눈앞의 생각을 앞세운다.
도시계획이나 신흥주택지를 개발하는 데도 바로 눈앞만 보고 몇 년 후를 못 본 것
같다. 서울 간선도로를 넓히는 데 10여 층짜리 고층 건물들을 헐어내는 것을
보았지만 그 건물들이 겨우 4__5년전에 허가를 받고 지어진 건물이 많다. 뿐만
아니라 포장해 놓은 도로 밑을 1년에 몇 번씩 파헤치는 것도 다반사가 돼있다. 좀
앞을 내어다 본다면 한 번 파헤쳤을 때 하수도며, 상수도며, 전선이며, 가스관이며
하는 지하공사를 한꺼번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알프스의 마터호른이 우러러보이는 스위스의 관광지 체르마트란 곳이 있다. 그
도시에서는 어느 한 빈터가 생겼다 해서 그 땅주인이 함부로 남에게 팔지 못할
뿐더러 또 그곳에 땅주인 마음대로 건물을 지을 수도 없다. 시청에서 규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 스스로가 합당하다고 여기고 합의를 본 건물만을 지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 관광지에는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기계소리를 거부할
만큼 그 도시를 위한 원대한 계획 아래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은 주인 한사람 한사람이 제터라 해서 제각기 제마음대로 집을 짓는다. 길이
어떻게 나든 또 남의 집을 가리든 말든 아랑곳없으며 하물며 그 전체의 미관 따위를
생각한다는 법이 없다. 먼 훗날이라는 시간적인 앞을 못 볼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눈앞만 볼 뿐 먼 곳을 볼 줄 모른다.
6.25사변 후 황폐화된 서울이 부흥된 것은 마치 장마비 끝에 잡초 자라듯 제각기
눈앞만 보고 집을 짓는 그런 복합 형식으로 부흥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 단계에
이르면 이전에 부흥했던 것을 부수고 또 그 자리에 새로 짓고 새로 지은 것을 다시
부수고 짓곤 하는 파괴의 연속 위에서 오늘의 서울이 이룩된 것이다.
미래의 서울을 예상하고 파괴없이 단계적으로 부흥된 것이 아니다.
독일의 함부르크도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됐던 도시다. 옛날 한자동맹(Hansa)의
맹주로서 풍요했던 함부르크는 그 부흥의 제1단계를 항만, 제2단계를 공장,
제3단계를 주택하는 식으로 분명한 계획과 순서 아래 부흥, 오늘의 함부르크를
이룩했던 것이다. 그런 단계 부흥이 무슨 법률이나 시당국의 계획에 의한 견제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진행되었던 것이다. 항만이
건설되고 공장이 재건될 때까지 함부르크 시민들은 폐허에 바람을 가리거나 가옥을
짓고 참아냈던 것이다. 금비를 쓰면 땅이 산성화하여 그 정도가 심하면 수확량이
줄뿐만 아니라 폐토화한다는 사실은 어느 농민 예외없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퇴비를 쓰도록 장려하고 퇴비 생산을 의무화하도록 계몽도 하고 장려하기도
했지만 퇴비를 쓰는 농민은 무시할 정도다. 앞을 보는 농민이라면 계몽이나
의무화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퇴비를 생산하고 썼을 것이다. 구득하기 쉽고 또
시비하기 쉽고, 또 당장에는 퇴비보다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우선 금비를 쓰고 본다.
독일의 위치는 만주 북부와 같은 위도로 그 농토가 풍요하질 못하다.
그러기에 독일 사람들은 삼포식이라 하여 일정 면적의 땅을 삼분해서 이포를
경작하는 동안 나머지 일포를 유휴시킴으로써 지력 소모를 막는다. 이렇게 일포씩
번갈아가며 쉬게 하는 농사를 삼포식이라 한다.
물론 독일 사람도 금비의 효력을 잘 안다. 또한 양식의 증산을 위해 일포를 쉬지
않게 경작할 수도 있다. 우리 한국 사람 같으면 금비를 써서 노는 땅을 없앴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농촌에 가면 여전히 삼포식 농사를 지속함으로써 앞날을 위해
지력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해방 전에는 겨울 생선으로 보편적이었던 어종이 동태와 대구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는 희귀한 어종이 되고 말았다. 대구는 회유하는 성질이 있어
주로 진해만에 와서 알을 까고 다시 동해안의 한류를 따라 북상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해방전에는 산란지인 진해만 인근에서는 이 대구잡이를 엄하게
제한함으로써 한국 연안에 대구를 번식시켰던 것이다. 한데 해방 후 이 제한이
해이되면서부터 진해만의 대구가 남획되어 해가 갈수록 대구는 잡히지 않게 될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대구를 잡을 줄만 알지 그것이 앞날의 멸종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을 못한다.
따지고 보면 욕심나는 물건이 앞에 있으면 바로 달려가 입수한다는 것이 소박한
인정이요, 인지상정이랄 수도 있다.
먼날을 위해 단계를 밟아가며 괴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을 한국인은 참아내질
못한다. 기분이 앞서 사리나 도리를 무시한다. 목적이 눈앞에 이르면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을 뛰어넘어 그저 결과부터 입수하려든다.
농사나 어업뿐 아니라 공업, 상업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에서 어떤 발달된 기계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상품이 나오면 나오기가 바쁘게
도입해서 그대로 만들어 쓰고 만들어 판다. 그것이 되기까지의 발명이나 발견이라는
어려운 노고나 시행착오는 빙산의 저변 같은 것인데, 그것은 묵살하고 빙산의
일각만 취해 버린다. 백척간두는 백척이라는 받침이 있기 때문에 간두가 형성된
것이다. 그 백척은 잘라 없애고 간두만 갖고 들어온다.
간두만 잘라 들여오니까 간두가 쓸모없어지면 그것으로 끝나 버린다. 백척이
있으면 간두가 쓸모없어지더라도 또 그 밑천에서 다른 간두를 만들 수가 있겠지만
토양이 없이 결실만 거둬오며, 그 결실은 토양이 없기에 그것으로 끝나는 그런
결실이다.
그런 뜻에서 한국문화는 말초문화랄 수가 있다. 우리 한국인의 신경은 근본적인
것보다는 말초적인 것에 섬세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되겠다. 그러기에 한국의 학술은
사정을 토대로 체계화하려는 성향이 빈약하다. 외래의 학문을 도입해서 그것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하고 있지만....이를테면 한국의 사정을 토대로 한 사회학 같은 것이
체계화돼 있질 않다.
결과주의의 형성요인
앞을 못 보고 또 말초적인 이같은 한국인의 성향에는 여러 가지 복합 이유가
있겠지만 맨 먼저 만성결과주의의 병인으로서 한국의 풍토에 지속성(constancy)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기후 풍토가 유순한 유럽 대륙에서는 변화가 극히 미미하고 지속적이며
규칙적으로 움직이기에 이 자연을 움직이는 법칙을 사람이 터득하면 사람의 맘대로
지배할 수가 있다는 것이 유럽 사람의 자연을 둔 태도다.
이에 비해 한국의 풍토는 유럽의 그것에 비해 풍요하긴 하지만 혹한, 혹서가
교차되고 집중 폭우에 한재가 교차되며 홍수가 논밭을 쓸어가고 사태가 논밭을
덮으며 태풍이 1년 농사를 망쳐 버린다.
한국은 사시사철이 시시각각이 변하고 몬순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풍우뿐 아니라
박테리아도 활발하여 물체가 자주 변질한다. 성했던 것도 한나절만 지나면
썩어버리고 썩어서는 사라져 간다. 어젯밤에 없던 잡초가 솟아나오고 버섯이
돋아나오는가 하면 어느 세월이 지나면 쇠도 녹슬어 사라지고 바위도 비바람에 씻겨
바스러진다. 변한다는 것은 영구성이 없다는 것이 되며 미래를 단절시켜 버린다.
썩어 없어질 것을...하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고 속에 미래, 곧 앞을 멀리보는 안식이
싹틀 수 없다. 우선 변하기 전에 뭣인가 어떻게 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내일이면
늦으리...다.
그러기에 한국인은 바쁘다. 항상 변화 이전에...변질 이전에...하는 강박에
쫓기기에 바쁘다. 항상 나만이 막차에 못 탈 것 같은 그런 조급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다. 내일 어떻게 되든 오늘 해놓고 본다. 따라서 유럽에서처럼 과정주의나
합리주의가 발달할 수 없고 촌단된 그 지속 시간에서 빨리 결과를 취하려는
결과주의와 그저 횡포를 부리는 수많은 신령들 앞에 무릎꿇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비합리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지속성 없는 풍토에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정치나 문화마저도 지속성 없이 무상하여 이 결과주의가 보다 중병화돼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로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지 유사시대 이래 자생문화가 열매를 맺기 이전에
주변의 외래문화가 와서 결실을 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문화는 물 같은
것이어서 우성문화권에서 열성문화권으로 흘러들게 마련이다. 주변에 중국이라는
강대문화권이 자리잡고 있는 데다 정치적인 지배까지도 받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
겹쳐 자생문화가 자랄 터를 닦지 못했던 것이다.
항상 외래문화의 꽃이나 열매만 잘라오는 습성은 바로 자생문화의 빈곤에서
어찌할 수 없는 필연이었다. 중국문화권에서 이탈하자 이제 우성 구미문화의
물줄기가 노도처럼 밀려들어왔으며 우리 한국인은 선조들이 중국문화를 두고 눈앞의
결실만 따왔듯이 이제 서양문화의 결실만 따왔던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주변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어떤 역사 시간이 좀
길었더라면 사정은 좀 달라졌으리라고 본다.
오솔길보다 좀 늦더라도 온건한 우리의 길을 더듬는 지혜를 정립할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다.
결과의식을 재촉하고 가속시킨 다른 한 요인으로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비단 유형의 것뿐만 아니라 무형의 것들도 파괴해 버린다.
파괴되고 없는 잿더미 위에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과주의로밖에 살 수가 없다.
과정을 겪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을 뿐더러 과정을 겪다 보면 낙오되고
소외되고 처져 버린다.
지금 전쟁으로 집이 불타 없어지고 처자식이 거리를 헤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자. 가장인 나는 당장 집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졸지의 판국에
백년대계를 세우고 과정을 빈틈없이 하는 과정주의로 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자.
이산 저산 헤매면서 좌청룡이 어떻고 우백호가 어떻다 하며 풍수부터 보고 다니고
또 기초를 탄탄히 한다 하며 서너 달 동안 터를 닦는 등 과정을 착실히 할 겨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그 과정 동안에 한데서 얼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에 거적이라도 주워다가 비바람을 막는 것이 상책이다. 그 거적집이 바로
결과주의인 것이다.
또 양식이 없어 처자식이 사나흘이나 굶어 울고 있다 하자.
양식을 구하러 나간 내가 그 식품의 칼로리를 따지고 지방분을 따지며 취사
선택할 그런 과정주의적인 여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당장에 쓰레기통을 뒤져 썩은 감자라도 주워다 먹어야 한다.
그 썩은 감자가 결과주의인 것이다.
이처럼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나려면 결과주의자 아니고는 살아날 수가 없다.
우리는 역사적으로도 엄청난 큰 전쟁을 10년 사이에 두 번이나 겪었다.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이 그것이다. 이 잇따른 전쟁의 폐허에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과주의로 살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주의로 살아오다 보니 결과의식이 체질화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정적 요인들은 하나 예외없이 이 결과주의에서
탄생되었다 해도 대과가 없다.
정당한 절차...곧 과장을 밟지 않고 지위나 이권이나 학위를 얻기 위해 돈과 빽과
부정이 난무하고 급행료가 상식화된 것도 결과주의의 소치요,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급행료가 상식화된 것도 결과주의의 소치요,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새치기를
함으로써 모든 사회질서가 분란해진 것은 결과주의의 소치며 모든 공사나 제조업이
겉만 반지르르하게 하고 심속은 날림으로 내구성이나 신용을 극도로 타락시킨 것도
결과주의의 소치인 것이다.
눈앞에 있는 돈벌이에만 급급하여 먼 훗날을 염두에 두질 않았던 경영원칙이며
경제정책들에 있어서도 결과주의의 소치며 모든 공사나 제조업이 겉만 반지르르하게
하고 심속은 날림으로 내구성이나 신용을 극도로 타락시킨 것도 결과주의의 소치인
것이다.
눈앞에 있는 돈벌이에만 급급하여 먼 훗날을 염두에 두질 않았던 경영원칙이며
경제정책들에 있어서도 결과주의의 결과는 빨리 얻어진다는 장점은 있으나
일회성으로 끝나는 결과요, 과정주의의 결과는 더디게 얻어진다는 단점은 있으나
일단 얻어 놓으면 영속되는 결과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처해 있는 흥망의 갈림길이 있다면 경영 철학을
결과주의로부터 과정주의로 전환시키느냐 결과주의로 일관해 나가느냐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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