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대체로 본심을 숨기는 은폐의식이 강하며, 이 적정한 은폐를 해야만이
인간관계를 모나지 않고 원활하게 유지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Yes but no
프랑스 인 부인과 같이 사는 한 교수 친구가 있다. 자주 만나는 친한 친구가
아니고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면 한 잔을 하는 정도의 그런 친구였다.
어느 날 우연히 길가에서 그 교수를 만났다. 외국인 부인과 같이 살기에 그에게
묻는 형식적인 안부로서 부인과의 사이는 원만한가 하고 묻게 마련이다. 한데 그
사이가 어긋나 부인은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현재는 별거 중이라는 것이었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자 그는 부인과 틀어지게 된 몇 가지 심층 이유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언젠가 부인과 같이 참석한 파티석상에서 학생시절의 주임교수 내외분을 만났다.
이미 정년퇴임을 하고 은거하고 있는 노교수였다. 그 노교수 부부로부터 아무 밤 몇
시에 집에 와 동부인해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초대를 받았다. 제자가 먼저 은사를
초대했어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오히려 은사의 초대를 받고 보니 이 제자는
송구스럽고 가책을 느껴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곁에 있던 프랑스 인 부인은 그
초대일시를 재확인한 끝에 불쑥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시간은 안 됩니다. 아들놈 약 먹일 시간이요, 안정시켜야 할 시간입니다."고
매섭게 그 호의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한국 사람 같으면 비록 그 시간에는 초대에 응하지 못할 보다 큰 일이 있더라도
초대를 백 번 감사하고 또 미리 초대 못한 것을 사죄했을 것이다. 본심은 '노'이지만
일단 '예스' 하는 것이 예의요, 도리며 상례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 논리 가운데 표
논리를 선행시키고 리(이) 논리를 표면화시킴으로써 한국인과의 문화갈등을 곧잘
빚는다.
이 당돌하고 무례한 대꾸에 어이없어진 노교수 부부는 슬그머니 파티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 교수 친구에게는 부인을 둔 심리적 갈등의 심지에 불이 점화될
수밖에 없었다.
또 시어머니를 두고도 이 표리부동의 의식구조 때문에 갈등이 있었다 한다.
그 프랑스 부인은 무척 한복 입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어느 해 부인의 생일날에
시어머니가 한복을 한 벌 선물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생일날 시어머니가 보자기를 들고 문 안에 들어서자 부인은 반갑게 달려나가 들고
온 보자기를 빼앗듯 받아들고 시어머니에 앞서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미리 약속한
선물인지라 동양적 예절에 둔감한 그녀로써 그런 행위쯤은 귀엽게 여기는 대범한
시어머니였다.
우리와는 달리 선물한 사람 앞에서 선물을 펴보는 것이 오히려 예의가 돼 있는
구미인인지라 이 부인은 보자기를 펴보았다. 저고리 치마를 들추어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시무룩해지더니 면전에 앉아 계신 시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빛깔로만 골라서 지어 왔다."
아무리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일지라도 이 대꾸에는 크게 맘을 상하고 그 길로
돌아가 일체 발길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어머니 뿐만 아니라
시집 식구 모두와의 사이에 장벽이 쌓이게 되었고 이 교수 친구도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소외감 속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일련의 이와 같은 갈등이 축적되고 거듭되자 사이가 벌어지고 끝내는 별거하기로
합의 본국에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이 별거는 그 프랑스 인 부인의 인간적 결함이나 잘못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본심을 은폐하지 않는 의식구조와 본심을 은폐하는 의식구조와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다.
이처럼 우리 한국인은 대체로 본심을 숨기는 은폐의식이 강하며, 이 적정한
은폐를 해야만이 인간관계를 모나지 않고 원활하게 유지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람에게 예스 노가 애매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며, 예스 노가
애매한 것은 예스 노의 판단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은폐의식이 그 분명한 한계를
저해하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한 중역이 말단 사원인 내가 맡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자. 그 의견을 듣고 보니 실무자가 볼 때 당치도 않은 의견이었다고 하자. 곧
본심은 '노'라고 판단됐지만 겉으로는 맞대놓고 '노'라 할 수는 없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고 일단 긍정을 해놓고 본다. 한데 그로써 말이 다
끝나지가 않았음을 본인이나 중역이 은연중으로 다 알고 있다.
'...만은....' 하고 접속사로 다리를 건 다음 이번에는 지당한 말씀과는 정반대의
말이 나온다. 곧 'yes but no'라는 지극히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등식이 우리
한국인에게는 조금도 이상하질 않고 또 비합리적이지 않게 수용이 된다.
우리 한국인은 은폐돼 있어야 할 자신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는 것은
인간관계 효율상 마이너스이기에 부정을 하더라도 긍정을 선행시킴으로써 본심을
애매하게 흐리는 표현방식이 크게 발달했다.
곧 부정을 위한 긍정 전치사구가 우리나라처럼 발달한 나라가 없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렇긴 합니다만...
,
그렇고말고요..., 그러해야겠지요, 일리가 있습니다만, 이치가 맞는 말입니다만...,
옳은 말씀입니다만.... 끝없이 있다.
서독 뮌헨의 국제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고 있는데 나의 여권을 받아든 법무성
관리는 한국 사람임을 확인하고 '독토르 피라이흐트' 하고 조크를 하는 것이었다
피라이흐트란 영어로 퍼헵스, 우리말로 '아마...'라는 부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아
마
박사'는 서독에서 한국인의 별칭으로 통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한국 사람이
피라이흐트란 말을 자주 썼기에 별명까지 됐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란 말은 우리 한국인의 은폐의식에 꼭 들어맞는 부사이기에 무의식중에
가장 자주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돼 있는 것이다.
속맘으로는 '노'라고 확신을 하고 있더라도 그 속맘을 겉으로 노출시킬 때는
본심은폐의 심리 메커니즘이 작동, '아마...그렇지 않을 걸'로 변질이 된다. 아마...
는
긍정과 부정이 적정히 배합되어 본심을 적나라하게 노출되지 않게 하는 표현이기에
선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에게 강한 은폐의식은 예스와 노를 애매하게 하는 것에 그치질 않고 예스를
노로 변절시켜 버리기까지 한다. 특히 싶으냐고 본능적인 욕구를 물었을 때에는
싶어 죽겠다는 것을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
미국 아가씨 메리는 한국 총각 갑돌이의 프로포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가정을 하자. 한데 어느 달 밝은 날 밤 메리는 그토록 기다렸던 갑돌이의
프로포즈를 받았다. 이때 메리의 태도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토록 기다렸고 싶었던 일인지라 프로포즈가 끝나기가 바쁘게 갑돌이 목에
매달려 이리 키스 저리 키스 적극적인 예스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사람을 달리하여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 미국 총각인 존이요, 프로포즈를 받는 것이 한국 아가씨인
갑순이었다 하자. 상황은 똑같다. 갑순이는 존의 프로포즈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몸져 누울 정도였다 하자. 한데 어느 달 밝은 낭만적인 가을밤에 존이 프로포즈를
해왔다. 이에 갑순이는 어떻게 태도를 취했을까. 하기야 요즈음에는 메리처럼
양성적인 갑순이가 많다고 들었지만 여기에서는 까벌려진 그런 갑순이가 아니라
전통적인 순박한 갑순이를 연상해야만 되겠다.
프로포즈가 떨어지기가 바쁘게 갑순이는 몸을 휙 틀어 존에게 등을 대고 애꿎은
손톱만 뜯고 있을 것이다. 등을 댄다는 것은 분명히 '노!'다. 이렇게 한국인은
강력한 예스를 강력한 노로 나타낸다. 이에 존은 실연했구나 하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가랑잎 차며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미8군에 교체해 오는 미군 장병의 현지 적응교육 가운데 '한국 아가씨의 노는
예스'라고 가르친다던데 일리가 있는 관찰이 아닐 수가 없다.
미국 오스틴에 머물러 있을 때 그 근교에서 크게 농장을 하는 한 독신
노인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한국 전쟁 때 장교로 참전했다는 연고로 농장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농장을 찾아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 오후 1 시에 도착하겠다는 약속을 못 지키고
오후 3시에야 도착을 했다. 반 사막의 텍사스인지라 도중에서 끼니를 때우기 마땅한
곳이 없어 점심을 거른 바람에 무척 배가 고파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반갑게 손을 잡고 집 안에 안내하더니 커다란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식품들을 낱낱이 외어대더니 나를 보고 배고프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물음에 배고프지 않다고 조건반사적인 대답을 했다. 왜 배고프면서 배고프지
않다는 거짓 대답을 했느냐는 한국인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할아버지였다면 나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면 굳이 배고프냐, 고프지 않느냐 물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먹고 싶어도 먹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해서 배고프냐고 물었던 그 물음에 배고프지
않다고 대꾸했다 하더라도 속을 꿰뚫어보고는 '배 안 고프긴....'하며 냉장고 앞에
끌어다 세울 것이다.
한데 이 미국의 할아버지는 배고프지 않다고 하자 무자비하게도 냉장고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냉장고 닫힐 때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별나게 요란스러웠던 그
냉장고 닫히는 소리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낳는 것은 그때 상황에 나에게는 너무나
모질게 인상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냉장고가 닫힌 다음에야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구나 하는 정신이 들어 나의
잘못 대답을 정정하려 했으나 이 정정만은 내 나이답지가 않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정을 한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배고프지 않다고 말한 것을 정정한다. 지금은 다시 배고프다."
그 길로 그 넓은 농장을 지프차와 헬리콥터에 태워 휘돌려대는 바람에 하늘이
노오라서 구경하나마나 했던 기억이 있다.
은폐의식과 예의
이같은 한국인의 은폐의식과 한국인의 예의 감각의 발달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동방예의지국이니 군자지국이니 하는 호칭을 받았으리만큼 한국인의 예절은
소문나 있었으나 그렇게 되게 한 복합이유 가운데 하나로서 이 은폐의식이 큰 몫을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의란, 본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효율적이고
문화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예의를 열심히 지키면 본심은 결코 노출된다는 법이 없다. 따라서 예의를 지키면
은폐의식이 충족되고 또 남에게 좋은 인상도 주고 도덕적으로 평가받는
일석이조이기에 한국인은 열심히 예의를 지키게 되고 그래서 동방예의지국이
됐음직도 하다.
중학생 때부터 객지에 나와 공부했던 나는 편지를 했다면 아버지에게 돈을 부쳐
달라는 편지밖에 써본 기억이 별반 없다. 누구나가 아버지에게 편지할 때 그
글쓰기가 어렵다고 체험을 했겠지만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의바른 그
형식적인 문구를 매번 이어대기가 손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꾀가 나서 이책 저책 뒤져 도덕적이고 예의바른 문구 30여 가지를 골라 수첩에
적고 일련번호를 매겼다. 그리고 이번에 편지 쓸 때는 1, 3, 5, 7, 9 홀수로 뽑아
접속사로만 이어 쓰고, 다음 번에는 2 ,4, 6, 8, 10 짝수로 뽑아 접속사로 이어 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좋은 말들로만 이어 써놓은 이 편지야말로 어느 도덕군자도 따를 수 없는
명문장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편지의 첫머리에서부터 끝까지 인사와 안부와
자식의 도리와 효성일변도일 뿐 돈 부쳐 달라는 편지의 내용은 일언반구도 본문
속에 쓰질 않았던 것이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몇 월 며칠 돈아 아무개... 하고 편지를 마무리 해놓고 편지 말미에 본문에 썼던
글씨 크기의 약 절반도 안 되는 작은 글씨로 '추신'이라 쓰고 거기에 돈이
떨어졌다는 사연을 짤막하게 써 부치곤 했던 것이다.
지금 편지 쓰는 의도는 예의와 도리로 쓰는 것이지 돈을 부쳐 달라는 본심을
전달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편지투요, 때마침 돈이 떨어졌다는 것을
부수적으로 알린다는 주객이 전도된 그런 편지투가 한국에 있어 편지의 정도였던
것이다. 본심은폐의 의식구조가 이렇게 편지에까지도 침투돼 있었던 것이다.
한말 서울에 와 프랑스 대리공사까지 지낸 프랑시라는 외교관이 쓴 그의 짤막한
회고록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
"한국인의 편지는 끝에서부터 읽어야 효과적이다."
이 말은 진리이며 오늘날의 편지에도 개인 편지인 경우엔 적용되는 프랑시의
법칙이랄 수가 있다.
공적자기층과 사적자기층
반랜드라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는 공개하고 있는 마음의 층을 공적자기층(public
self)라 하고 남으로부터 은폐하고 있는 마음의 층을 사적자기층(private self)이라
대분하여 미국 사람과 동양 사람의 그 심층 두께를 비교해 보고 있다. 미국 사람은
공적자기층이 91퍼센트, 사적자기층이 9퍼센트로 9대 1의 비율을 보이는데 비해
미국에 사는 동양 사람 곧 중국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을 상대로 똑같은
방법으로 조사해본 결과 공적자기층이 15퍼센트, 사적자기층이 85퍼센트로 나왔다
한다. 9대1이 1.5대 8.5호 역전하고 있다.
조사 방법에 따라 이 비율에는 기폭이 있는 것이나 사적자기층이 공적자기층보다
두텁다고 한국인의 개연성만은 뒤집을 수 없을 만큼 현격한 차이를 인지할 수가
있겠다.
이 두터운 사적자기층이 바로 한국인에게 강한 본심을 숨기려는 억센
은폐의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은폐의식의 개연성을 인간관계 개선이나
인간관리에 발전적으로 응용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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