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취미생활을 여가란 말로 번역했는지 자못 한국적이랄 수가 있다. 곧 할 일
없는 여기에나 할 일이지 서양 사람들처럼 권리로서 누리려 한다는 법은 없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들렀을 때 나는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 대학보다 그곳에 소문난
달리아 공원을 먼저 들렀었다. 공원 이름이 달리아가 아니라 그 공원의 한쪽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달리아 화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기로 그같은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었다. 나는 이 달리아보다 이 달리아를 가꾼 피콕크라는 노인에게 보다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이 노인은 주급 17파운드의 난방공사 인부였다. 집세로 매주 천 파운드씩
지불하고, 13파운드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기에 고달픈 인생이라 할 수 있다. 한데
그에게는 달리아 기르는 취미가 있어 시청이 관리하는 공원의 한쪽 모퉁이를 빌어
그곳에다 달리아를 재배, 취미를 흡족시켜왔던 것이다. 일만 끝나면 이곳에 와
손질을 하길 10여 년 해서 영국 최고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달리아 화원으로 가꿔
놓고만 것이다. 화원하면 한국에서처럼 꽃을 가꾸어 파는 영업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나, 이 피콕크 노인의 하원은 영업화원이 아니라 철두철미 순수한 취미화원인
것이다. 그리하여 8월 하순 달리아꽃이 만개하면 이를 일반에게 공개한다. 유럽
각지에서 달리아 애호가들이 1천여 명 몰려들 이때쯤 푼푼이 모아둔 돈으로 손수
차를 끓여 이 애호가들을 대접하는 것이 이 노인이 삶의 보람을 느끼는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 피콕크 노인의 '취미가 나의 제 1인생이요, 직업은 나의 제2인생이다.'고 한
말이 나의 뇌리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다.
사실 서양 사람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인격과 취미인으로서의 인격을 같은 비중으로
병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과 크게 차이가 난다. 취미인으로서 인격을 갖지
못한 사람은 인간으로서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양 사람의 상식이라 해도
대과가 없다. 오히려 이 가난한 인부 피콕크 노인처럼 직업은 취미생활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경향마저도 없지 않다.
서양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반드시 당신의 취미가 뭐냐고 묻게 마련이다.
취미인으로서의 인격을 안다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편이기도
하려니와 상대방과 친밀해지는 가장 편리한 접착제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경우 취미는 없어도 되는 여분의 것이다. 살아가다가 여분이 있으면
뭣인가에 취미가 붙게 되겠지 하는 정도의 것에 불과하다. 아니 그 정도라기보다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인생을 성실하게 살지 않는 증거로서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지니게 한다. 누가 취미생활을 여가란 말로 번역했는지 자못 한국적이랄 수가 있다.
곧 할 일 없는 여가에나 할 일이지 서양 사람들처럼 권리로서 누리려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기에 어떤 한국인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도 주저하거나 당황하게 마련이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사실 아무것도 없기에 생각해 내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약
80퍼센트 이상은 독서, 산보라고 한다. 물론 독서나 산보를 하지 않는 한국 사람이
많기에 굳이 취미랄 수 있겠으나 서양 사람들에게 있어 독서나 산보는 일상생활이지
취미는 아닌 것이다.
그 밖의 나머지 소수가 등산, 골프, 테니스, 우표수집, 서예, 선, 꽃꽂이 등 취미를
갖고 있긴 하지만 서양 사람들의 취미처럼 본격성을 지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서양 사람들의 그것은 일생을 지속하는데 비해 한국인의 그것은 수년 수개월로
단속적이고 가변적이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보급율이 유럽의 보급율을 웃돌고, 또 텔레비전 앞에 붙어
사는 시간이 유별나게 많은 것도 이 전통적 무취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텔레비전 채널도 세계적으로 많은 편에 속한다. 일본이 17개, 워싱턴이 6개, 런던이
3개, 파리가 2개인데 비해 한국에는 AFKN까지 합쳐서 4개나 된다. 이처럼
텔레비전 문화가 기승을 부린 것은 무취미한 인간의 여가 메우기는 텔레비전이란
이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유럽에 텔레비전 문화 침투가 더딘 이유를 유럽
보수주의 탓인 줄로만 알았으나 현지에 가서 살펴보면 그들의 취미에 열중하다 보니
텔레비전 볼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앞서 달리아 화원의 피콕크 노인에게, '텔레비전은 하루에 얼마 동안 봅니까.'
물었더니, '텔레비전이요, 한 달 두 번 있는 빅게임 때만 봅니다.'고 대꾸한
것이었다.
한국인의 어떤 전통이 한국을 취미 불모지로 만들었을까. 여러 가지 복합 이유가
있겠으나 한국의 풍토와 생업조건, 그리고 유문문화에서 형성된 가치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 한반도는 남방계생업인 미작이 가능한 가장 북한계에 속한다.
미작의 본고장인 남방에서는 볍씨만 뿌려 놓고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북한계의 미작은 볍씨를 뿌려서 그것을 거둘 때까지 속칭 88차례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시한 속에 어느 일을 해내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는 그런 긴박한
시한의 연속 속에서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가 있다. 사실 한반도의
주생업인 미작은 사람에게 여가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은 생존경쟁에서 도태당하고 말며, 따라서 여가를 누린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악일 수밖에 없다. 근면만이 선이요, 여가는 가치를 형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같은 취미 불모의 풍토이기에 유교문화가 영합됐다는 도리론도 성립된다.
공맹사상을 체계화한 주자학은 완물상지라 하여 취미로 흐르는 인간의 마음을
정도가 아닌 사도로 가르쳤던 것이다. 경제를 모르고, 예도 모르며, 취미가 없는
그런 사람이 규범에 맞는 사람이다. 오로지 주어진 일에만 근면하는 것으로서
인생의 가치가 부여됐던 것이다.
요즈음 학생들에게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하는 기풍도 바로 이같은 전통적
가치관의 소생인 것이다. 영국에서처럼 소학교 때부터 취미교육을 시키고 취미
성적을 매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경제학자가 유화전람회를 가지면 그 사람 별난 사람이라 하고 치과
의사들이 보컬 그룹을 만들면 별난 사람이라고 말들 한다. 곧 정상이 아닌 이상으로
본다는데 예외가 없다. 정상적인 본무 이외의 일은 하면 변신한다고 해서 이를
엄하게 금지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이 전통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취미인으로서의
인격 형성을 저해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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