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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버릇

동반자살병

by Healing New 2020. 9. 27.

  한국인에게는 누명보다 더 큰 죄도 죽으면 동정으로 변질되어 죽음은 미화의 
대상이었으며, 굳이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었다.

  식물성 자살과 동물성 자살
  병자호란에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때 상신 장유는 판서 이식에게 사사로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성이 만약 불행하게 된다면 선비로서 자살하기는 심히 어려우니 어찌해야 잘 
죽을 수 있겠는가." 
  이에 이식이 말했다.
  "칼을 빼어 제 목을 찌르는 것은 장사의 할 일이지 선비로서 할 일은 못 된다. 
우리 중신은 군부 옆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가 만약 난병에게 죽지 않고 잡힌 몸이 
되면 굴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비록 내 목숨에 손을 대질 않더라도 적이 칼질은 할 
터이니 잘 죽는 도리는 이 길밖에 없다."
  이 난중의 두 선비들 대화는 우리 한국의 전통적 지식층의 자살관을 단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본다. 선비에게 있어 자살은 죄악이요, 배덕이었던 것이다. 물론 
뿌리는 다르지만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 있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단테의 "신곡"에도 자살자가 지옥에서 받는 끔찍한 책고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예부터 자살자의 시체는 묘지 매장이 거부되었을 뿐 아니라, 자살자의 
시체를 거리로 끌고 다니거나 짐짓 교수대에 늘어 놓기도 했다. 왜냐하면 자살은 
타살 이상의 중죄였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여왕 치세의 1860년 런던에서 자살 미수한 한 사나이가 교수형을 받고 
있으며 2차대전 후 1955년까지 10년 간 영국에서 자살 미수를 한 5천 8백 명 
가운데 3백 명이 금고형을, 5천 1백 40명이 벌금형을 받고 있다. 곧 정신 이상자 
이외에는 모두 형이 가해지고 있다.
  유럽의 자살 부정은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한국의 자살 부정은 
'신체발부는 수지부모 하니....' 하는 조상관에 뿌리박고 있다. 곧 신체나 생명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 조상의 것이기에 해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었다. 본래 
천명사상, 숙명사상, 그리고 팔자소관과 그에서 연유된 체념,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에서 연유된 인생무상의 체질화로 사람의 생사가 자의로 되지 않는다는 
사생관이 복합되어 자살은 우리 한국인에게 비범한 것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이같은 한국인의 자살관은 한국인의 자살 방식에서 완연히 드러나고 있다. 
유럽이나 이웃 일본에서는 사체 훼손인 절자 방법으로 자살을 해왔다. 고대 
로마에서는 혈관 절자로 죽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자살이었다. 폭군 네로의 
가정교사인 세네카는 그의 말을 네로가 듣지 않자, 팔, 발목, 무릎 등 혈관을 절개한 
채 열탕 속에 들어가 자살하고 있다. 일본인의 하라끼리며 중국인의 자인, 자자, 
자문, 자월이며 동남아의 분신이며, 아프리카의 비신자살이며 모두가 목축적이고 
동물적인 신체 훼손의 자살 방법이다. 헤밍웨이가 엽총 자살을 했듯이, 미국인의 
자살 수단 가운데 87퍼센트가 총기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 이 자살 수단은 개인적인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족성이나 문화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인은 육체를 손상시키지 않은 방법, 물에 몸을 던지는 투신, 
목을 매는 자의, 그리고 독약을 마시는 음독, 밥을 굶는 아사 등 너무나 정적이고 
피비리지 않는 농경적, 식물적 자살을 하고 있는데 특성을 찾아볼 수가 있다. 유명한 
프레이저의 "골든 보"에 보면 조선의 임금님 입에 종기가 나면 그에 칼을 대는 것을 
금기시, 광대로 하여금 임금님을 웃기게 하여 종기를 터뜨렸다는 견문이 적혀 
있음을 본다. 종기에마저도 철물에 의한 인체 훼손은 안 되었던 것이다. 수염 하나 
훼손해도 안 되었기로 머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내렸을 때, 나라가 망하는 것을 
저항하여 죽은 자보다 더 많이 죽어가며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한국인의 신체관 때문에 안락사 문제, 암을 환자에게 통고하지 않는 문제, 
그리고 죽은 사람의 장기나 안구 이식 문제를 두고 구미 사람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신체관의 정신적 유전질이 우리 현대 한국인의 무의식층에 
도사려 있기 때문인 것이다.

  죽음을 연출한 응석 자살
  내 자랐던 산촌에 '썩은 새끼 서발'이라는 좀 기다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썩은 새끼 서발이라는 뜻이다. 그분은 노름판에 자리 빌려주는 일, 송장 염하는 일, 
돼지 불알까는 일, 마소(마우) 암붙이는 일 등 동네의 궂은 일은 다 맡아서 하는, 밭 
한뙈기 없이 가난하지만 착한 분이었다. 가난한 주제에 흥부처럼 슬하에 아들 딸을 
죽으로 두어 굶기를 끼니 잇듯 하다가는 목구멍에 곰팡이가 낄 무렵에는 썩은 새끼 
서발 거둬다가 사람들이 많이 널려 쉬는 기회를 봐서 정자나무에 목을 곧잘 매곤 
했던 것이다. 썩은 새끼에 목이 매어질 리도 없고 또 그 새끼가 썩지 않았다 해도 
증인들이 보는 앞인지라 삶의 안보를 완벽하게 한 이상한 자살 기도인 것이다. 
이렇게 '썩은 새끼 서발'의 연출을 한 번 하면 동네 사람의 동정을 사서 한 철은 
먹고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곧 '썩은 새끼 서발'이란 자살을 연출하는 한국적 자살 
유형의 한 표현이랄 수가 있다.
  유럽처럼 개인의 억울한 처지, 마이너스 입장 등 의사표시가 활발하지는 못했던 
우리 옛 가족, 가문, 촌락공동체 사회에서는 개인의 억울하고 괴롭고 절박한 심정을 
직접 토로하는 것은 공동체 논리에 위배되고 부덕시하였기로, 이같은 썩은 새끼 
서발로 의사 표시를 곧잘 시도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 심성은 살아 있어 자살 
기도는 많이 있는데 그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낮다는 국제 비교 통계에서도 이 
'썩은 새끼 서발'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곧 진심으로 죽을 자살을 않고 자살을 
연출하는 성향이 한국인에게 강한 이유는 개인 의식이 박약하고 본심 노출을 
부덕시하는 한국인의 집단 논리에의 응석으로 따져볼 수가 있을 것 같다.

  명분에 목숨을 걸고...
  한국인의 자살 가운데 특성으로 도덕 자살을 들 수가 있다. 곧 자신이나 자신이 
처한 가문이나 계급의 도덕적 명분 때문에 명을 손쉽게 희생할 수 있었다. 역사적 
자살 케이스로 각 문화권별 자살 동기를 비교해 놓은 것을 보면 이같은 도덕 자살이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한데 우리나라의 사상 
자살케이스의 약 80퍼센트 이상이 도덕 자살의 범주 안에 든다.
  우리 옛 부녀자의 자살 케이스로 남녀 내외라는 명분이 약간 오염된 것만으로 
숱하게 죽어갔으며, 이는 세계사에서 지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지봉유설"에 
실린 한 사례를 들어 본다.
  한 양가집 처녀가 왜적을 만나 피난하다가 부모 형제를 잃은 체 숲속에 숨어 
있었다. 늙은 중이 지나가다가 그 처녀를 보니 굶은 지가 여러 날이 되어 숨이 곧 
끊어질 것만 같았다. 중은 이를 부축, 집에 데리고 가려했으나 처녀는 사나이 손이 
몸에 닿는 것을 애통해 하고 마냥 버티었다. 중은 하는 수 없이 절로 돌아와 밥을 
지어 갖고 가서 권했으나 막무가내기에 밥을 곁에 놓아두고 갔다가 며칠 뒤에 
가보니 처녀는 굶어 죽어 있었다 한다. 물론 곁에 놓아둔 밥은 한 숟가락도 
건드리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동방의 열은 종이를 태운다'고 중국까지 알려졌듯이, "조선명륜록"에 수록된 
자살로서 정표를 받은 그 수천 케이스의 열이 명분 자살이었다. 이를테면 한말 순종 
연간에 남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윤씨 집에 갑자기 불이 나 바람을 타고 재빠르게 
이웃집으로 연소를 했다. 불이 나면 인명은 소사되는 일이 있더라도 맨 먼저 꺼내야 
할 비상지출이 죽고 없는 선조의 신주였기로, 윤씨집 며느리는 신주를 꺼내지 
못했었다. 이를 안 윤씨 며느리는 신주를 안고 타고 있는 화심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있다. 이처럼 옛 우리 한국인은 자살은 자살이라기보다 명분 타살이라는 편이 
옳았다.
  이처럼 '명'을 '명'에 선행시킴으로써 빚어진 한국적인 자살은 명을 모욕당했을 때 
그 명을 구제하기 위해서도 손쉽게 자살할 수 있었다. 곧 누명을 쓴다는 것은 '명'에 
오욕을 당했다는 뜻이며, 이를 구제하기 위한 그 잦은 누명 자살이야말로 한국적 
자살의 다른 한 특성이랄 수가 있다.
  심청이의 자살은 명분 자살이겠지만, "숙영 낭자전"의 숙영의 자살은 시비 월매의 
음모에 의한 누명 자살이요, "정을선전"에서의 추년의 자살도 계모의 음모로 신랑이 
순결을 의심하자 자살로써 그 누명을 씻고 있다. 한국 고소설에 있어 자살의 동기는 
이 누명 자살이 압도적이다. 심지어 가문에서 누군가가 누명을 쓰면 그 사실 여부, 
음모 여부를 가리기 이전에 그런 소문이 났다는 사실만으로 자살을 위장한 타살 
사건이 비일비재였다.
  정조 11년에 이언이란 사람은 10대 과부인 며느리 구씨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욕심낸 한 사내의 조작적인 유언비어로 행실이 나쁘다는 풍문이 돌았다. 이에 
가문에서는 사실 여부를 가리기 이전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녀 과부의 입을 
걸레로 틀어막고 돌을 안겨 치마를 뒤집어씌운 다음 깊은 강물에 떼밀어 넣고는 
투신 자살로 소문내어 그 결백을 증명시킴으로써 가문의 명을 구제하기로 했던 
것이다.
  근간에도 가장 잦은 한국인의 자살이 무슨 혐의를 받았을 때 결백을 증명하고자 
일어나는 빈도가 잦음은 이같은 누명 자살의 심성 유전질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유럽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자살하면 그 누명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결백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으면서 증명해 내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러기에 누명 자살이란 없다.
  한국인에게는 누명보다 더 큰 죄도 죽으면 동정으로 변질되어 죽음은 미화의 
대상이었으며, 굳이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자살이야말로 모든 오염과 
오욕을 씻어 없애는 세제 같은 것이었다.

  유교권에 많은 동반자살
  다른 한 한국인의 자살의 특성으로 더불어 죽거나 따라 죽는 복수 자살 곧 동반 
자살을 들 수 있다. 전기 문화권별, 역사상 자살 비교자료에 의하면 한국, 중국, 
일본 등 유교 문화권의 복수 자살들이 전체 자살의 25__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희랍, 로마, 인도가 10퍼센트 내외, 여타 중근동,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개인 의식이 
강한 유럽은 5퍼센트 미만이다.
  그러기에 유럽 어 계통에서는 동반 자살이니 정사니 하는 복수 자살 어휘가 없다. 
2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에서는 희귀한 동반 자살 사건이 있었다. 80대 
할머니가 고독이 지겨워 80대 남편에게 죽여줄 것을 애원을 하자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사랑했기에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할머니를 총기로 
사살, 그 할머니의 시체를 끌어안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자살을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는 이 동반 자살을 double 
suicide(이중자살)라 썼고, 또 다른 신문은 killcide(살해자살)란 신어를 만들어 
쓰고도 있었다. 한국에 있어 복수자살로, 패전을 당했을 때의 치욕을 사전에 
막으려는 병사나 부녀자들의 집단 자살을 들 수 있다. 대원군 집정 시기인 신미년 
미극동 해군 부대에게 점령을 당했던 강화 광성포대의 한국 병사들은 부상당한 병사 
이외에는 한 사람 남김없이 강물에 투신, '크림슨 물빛 위에 하얀 꽃잎처럼 
떠내려갔다'고 당시 참전한 미국 장교가 글로써 남겨 놓고 있다. 부상당한 병사도 
타고 있는 불 속에 기어들어가려다 저지당하기도 하고, 또 미국 병사들에게 총검을 
가리키며 찔러 죽여줄 것을 애원했다 하니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달레의 "조선교회사서설"에 보면 다음과 같은 예비 복수 자살에 대해 적고 있다 
한다.
  "미구에 난리가 일어나리라는 막연한 유언비어가 퍼졌을 때 성당에 다니는 
부녀자들은 선교사에게 달려와 난적이 들이닥칠 때 자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였으며, 이때 어떤 경우라도 자살은 신에 대한 범죄라는 것을 납득시키기에 
매우 고생하였다."
  다른 한 복수 자살로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고, 상전이 죽으면 종이 따라 
죽는 미망자살이 있다.
  임오사화에 이사명, 이희지 부자가 몰살당하자 시어머니인 조씨와 며느리 정씨는 
다음과 같은 임사혈시를 써 남기고 동반 자살을 하고 있다.

  타향에 계신 부모형제 이제 다시 못 뵈오니
  이 몸 옥같이 귀여워하셨다고 이 마당에 누구라 말해 줄까
  젖아기 의지할 곳 없으니 눈감고 황천까지 안고 가랴
  유월 초사흘 첫 닭이 울 때 피내어 이 글을 쓰고 강을 향해 가리라.

  한국인의 동반 자살은 이같은 의리상의 유대였던 것이 근대화와 더불어 이기적인 
유대로 변질, 오늘날의 그 숱한 모자 동반, 부부 동반 자살을 빚게 해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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