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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버릇

기로병

by Healing New 2020. 9. 27.

  이것은 내가 한 짓이다. 명망과 노숙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재주와 덕이 
노숙하기를 조금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이 좋다. 이에 이덕형 혼연히 심복하고 있다.

  미국에 있어 1960년대는 인종 차별을 없애는 연대였고, 1970년대는 남녀 차별을 
없애는 연대였으며, 1980년대는 연령 차별을 없애는 연대가 될 것이라고 미국의 
사회운동가 잭 오소프스키는 말하고 있다.
  곧 미국에 있어 차별 철폐의 역사는 레이시즘(racism, 인종 차별)에서 
섹시즘(sexism, 남녀 차별)으로 발전하였고, 지금부터는 에이지즘(agism, 연령 
차별)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이미 미국의 남 캘리포니아 대학을 비롯, 구미의 대학에서는 
제론트로지(연령학)라는 새 학문을 체계화, 연령학과를 신설하고 있어 섹시즘 연대인 
1970년대에 여성학과가 생긴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곧 직종이 
수십 만 종으로 늘어가는 현대사회의 능력 요구와 날로 팽배해 가는 중, 고 
연령층의 팽배라는 사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젊어서 나오는 능력, 중년에 
나오는 능력, 그리고 노년에 나오는 능력을 다각도로 자상하게 가려 그 능력을 
이용하려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서 태어난 학문이 연령학인 것이다. 
  노인 인구의 팽배는 우리 한국을 포함한 모든 세계의 공통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원전 2천 년 고대 희랍의 평균 수명은 18세요, 기원 전 5백 년의 로마 평균 
수명은 22세였다. 1840년 유럽의 평균 수명은 54세였고,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에는 62세로 늘었고, 1955년에는 70고개를 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속된다면 
2000년에는 1백 세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의 우리나라 55년 정년제가 20년 후 까지 계속된다고 가정해 본다. 대학 
나올 때까지 24년과 3년 간 병역 의무를 치르고 고용이 되면 겨우 28년 간 일하고 
강제 해고를 당해야만 한다. 그럼 나머지 여생은 45년 동안이나 남아 있는 게 되니 
지겨워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65세 정년제 제정의 허와 실
  역사적으로 정년제와 연금제를 처음 만들어 낸 것은 19세기 프러시아의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서였다 한다. 1889년 비스마르크가 정년을 65세로 하여 연금제를 
정한 것이 선례가 되어 영국에서는 1908년에, 미국에서는 1935년에 이 65세 
정년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데 이 65세라는 숫자가 어떻게 계산된 것인가를 따져 
보면 요즈음 우리들 생각과는 전혀 판이한 판단에서 발상된 것이다.
  당시 독일 남자들의 평균 수명은 45세였다. 이 45세에서 20세를 더 살아야 
65세인데 당시 65세를 넘게 사는 독일 남자는 극소수요, 그 극소수에게 연금을 
준다는 것은 국가 예산으로 봐 새 발의 피에 불과했던 것이다. 만약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5퍼센트를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땅 속의 비스마르크가 
들었다면 아마 놀라서 졸도, 두 번 죽었을지 모를 일이다.
  만약 평균 수명이 연장된 현재에 비스마르크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아마도 정년을 
85세 이상으로 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미 공무원 정년을 70세로 연장하고 있고, 각 주와 기업에 따라 
정년제를 폐지하고 있으며 대체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55세 청년은 인간의 생리적 능력의 기준에서 발상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문화 인류학자 다베글렌에 의하면 사람의 능력은 30세에 피크에 이르나 
판단력은 계속 상승하므로 이 능력 곡선과 판단 곡선의 가장 이상적인 교차점이 몇 
세가 되는가는 민족이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했다. 곧 동양 문화권에서는 그 
이상적 교차점이 유럽의 그것보다 높다는 것이다.
  J.W 스틸의 연령별 인간능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적 능력인 기억력은 
10세에서 23세까지가 절정이요, 상상력은 20세 전후에서 30세 전후가 절정이며, 
창조력은 30세에서 55세까지가 절정이며, 사리를 추상 종합하는 판단력은 45세부터 
신장하여 70세를 넘겨서까지 유지된다고 했다. 
  육체적 능력도 18세에서 28세까지가 신속의 절정이요, 25세에서 35세까지가 
스테미나의 절정이며, 33세에서 43세까지가 기량의 절정이고, 38세에서 48세까지가 
인내의 절정, 40세에서 70세까지가 불굴의 절정이라 했다.
  미국의 아폴로 비행사가 모두 40세 전후였음은 바로 이 스틸의 정신 및 육체능력 
조사에 바탕을 두고 가장 우주 여행에 적성의 능력들이 갖추어진 연령대이기 
때문이며 로마 교황이나 미국의 최고 재판소 판사 등 판단력을 필요로 한 직위가 
고령자인 것은 늙을수록 늘어나는 판단 능력 때문인 것이다.
  역시 인간능력을 연구한 테일러 박사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창조적인 일로 미국에 
공헌한 것은 패기 있는 중약년층보다 중, 고년층이 세 배나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지적인 영역에 도달하면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은 쇠퇴하지만 사고력, 추상력, 
활용력, 판단력 같은 창조적인 정신능력은 중년이 넘은 후에도 계속 신장을 한다.
  뇌 세포는 전두엽을 제외하고는 20세에 일단 완성을 한다. 그 이후부터는 하루 
10만 개씩의 뇌 세포가 사라져간다. 따라서 30년이면 10억 개의 뇌세포가 사라져 
버림으로써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현상이 일어난다.
  문제는 이 뇌 세포란 일종의 창고 속에 무작정 저축된 자료일 뿐 이 뇌 세포 
자체만으로는 창조나 판단이 불가능하다. 그 같은 창조나 판단을 하는 능력은 
10세부터 60대까지 끊임없이 발달한다는 전두엽인 것이다. 곧 중, 고령의 존재 
가치는 이 전두엽으로 생리적 보장을 받는다 할 것이다.
  임어당의 "The Importance of Living"중국에서는 통성명을 한 연후에 반드시 
'수령은?' 하고 묻는다 한다. 그리하여 20대라고 대답하면 언젠가는 노인이 될 
테니까 섭섭해 할 것이 없다는 노인이 못 된데 대한 위로의 인사말을 하고, 중년 
나이면 축하한다 하며, 쉰 몇이라 하면 묻는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어 존경의 태도를 
보인다.
  중국 속담에도 있듯이 '젊은 사람은 귀는 있어도 입은 없다.' 40대가 30대에게 
말을 하면 듣고만 있어야 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설교하다가도 할머니가 입을 
열면 아버지는 입을 닫아 버려야 한다. 아비가 가로질러온 길보다 할머니가 더 많이 
가로질렀다는데 대한 존경의 폐구인 것이다.
  그러기에 중국에서 최고의 존칭은 노인이나 웃어른이나 아버지를 뜻한 '야'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해장인 진도독이 이순신 장군의 지략에 감탄하여 연하인데도 
반드시 '이야'라 불렀다는 고사는 유명하다.
  옛날 중국의 천자가 조선 임금에게 여러 가지 난문을 물어왔는데 그 중 하나로, 
일곱 굽으로 구멍난 7곡옥 속에 어떻게 실을 꿰느냐는 것이었다. 이를 온 나라에 
공표하여 지혜를 현상공모 했는데 어느 한 사람이 늙어서 고려장 속에 묻어두었던 
노부에게 찾아가서 물었다.
  옥의 양쪽에 난 구멍 가운데 한 쪽에 꿀칠을 하고 다른 한 쪽 구멍에다 실을 묶은 
개미 한 마리를 들어가게 하면 된다고 했다.
  이를 임금에게 아뢰자 노인의 지혜는 국사에 큰 도움이 된다 하여 그 후부터 
고려장 제도를 폐지했다 한다.
  우리 옛날 향약을 보면 나이에 따라 5계의 서열을 정하여 깍듯한 예절과 규범을 
정해 놓고 있음을 본다. 20세 연상일 때는 존자라 하여 아버지와 같은 대우를 해야 
하며, 10세 연상은 장자라 하여 형님과 같은 대우를 해야 하며, 10세 미만의 연상을 
칭장, 10세 미만의 연하를 칭소, 10세 이하를 소자, 20세 연하를 유자라 했다.
  그리하여, 유자가 먼 길을 떠날 때는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반드시 마을의 
장자와 존자를 두루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떠나야 하는 등 그 연장자에 대한 
규율이 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을의 중요한 일이나 향약에 입각한 재판을 할 때는 동네 남자들의 평균 
연령으로 계산해서 나온 장자단이 모여 몇 가지 결론을 내고는 존자단이 결정하게끔 
돼 있어 중, 고년층의 판단력을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선조 때 퇴계 이황이 예문관 제학으로 재수되자 그때 상급자인 대제학으로 있던 
보다 연하의 박순은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던 것이다.
  "이황이 제학이 되니 나이 높은 큰 선비는 도리어 낮은 벼슬에 있고, 후진 초학의 
선비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인재를 쓰는 것이 거꾸로 된 것이오니, 청컨대 신의 
관직을 거꾸로 하여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임금은 울면서 이 갸륵한 상소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후세에 성호이익이 이를 
두고 이렇게 개탄하고 있다.
  "아름답도다. 사암(박순)의 어진 것이 세속에 모범이 될 만한데 어찌하여 지금 
세상에는 이를 본받는 이가 없는고, 슬픈 일이로다."
  명망이 컸던 이덕형이 나이 31세에 대제학의 망에 올랐는데, 이를 천거하는 
정승들 모임에서 무기명 투표로 하는 원점 하나가 부족하여 낙천되자 김귀영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한 짓이다. 명망과 노숙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재주와 덕이 
노숙하기를 조금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이 좋다."
  이에 이덕형 혼연히 심복하고 있다.

  로마 멸망의 원인 중 노인 멸시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각도의 군사는 왕을 수호하기 위해 서울로 집중하게 됐는데, 
도중에 모두 패하고 오로지 권율 장군이 영도하는 전라군만이 싸움에 이겨 목적을 
달성했는데, 이때 전라군에는 노쇠하여 업혀 다니는 지휘관이 많았다는 것과 이 
연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곧 활동이나 용기나 힘으로는 젊은 사람을 
못 당해내지만 작전에는 이 노인들의 지혜나 판단력이 뛰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 고년층의 판단력이나 체험에 의한 지혜는 이처럼 하나의 자원이었던 것이다.
  기봉의 "로마제국 멸망사"에 보면, 로마의 젊은이들이 그 대로마의 부와 힘에 
도취하여 체험과 지혜와 판단력의 축적자인 노인을 거부하고 멸시한 데 큰 원인을 
두고 있다. 그 멸시한 실례로서 로마의 젊은이들이 로마의 원로원을 지배한 
노인들에게 반기를 들고 '60세 이상의 자들은 다리로부터 떼밀어 버리라.'는 구호를 
공공연하게 외치고 다녔던 사실을 들고 있다.
  중국 대륙의 대제국이었던 진 나라의 멸망 이유에 대해 목공은 '젊은 전사들보다 
분명히 힘은 없지만 경험 많은 노인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이같은 경국의 
죄를 짓고 말았다.'고 했다.
  사회학자 D.G 브린톤의 "The Basis of Social Relation"에 보면 체험의 
축적자를 배제한 기업체들의 사양을 다각도로 채집, 제시해 놓고도 있다.
  그리하여 가장 젊음을 구가하는 미국에서도 근년에 중년 비서, 중년 스튜어디스, 
중년 운전기사, 중년 볼런티어 등 젊은이를 대체하여 중, 고령층이 각종 직업에서 
부쩍 늘어나고 있음은 결코 에이지즘 시대의 범연한 일이 아니라고 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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