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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버릇

파당병

by Healing New 2020. 9. 27.

  일본 제국주의가 그들 식민 정치의 필요성에서 이 부적정인 당폐 측면만을 
과장시킴으로써 사색당쟁에 고질적인 마이너스 이미지가 부각됐다고 본다. 

  북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들른 분이면 젊든 늙든 간에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에트"의 모델이 됐던 줄리에트의 무덤에 들르게 마련이다. 
줄리에트가 태어난 명문 귀족 카퓨레트가의 가족 묘지인지라 원주와 아치로 두른 
회랑 안에 성상이 놓인 예배당이 있고, 등나무 덩굴이 자색의 꽃을 드리운 그 
중정의 지하층에 줄리에트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묘소 입구 '줄리에트에의 우편함'이라 쓰인 대리석의 편지통에는 연중 세계 
각지에서 줄리에트에게 부쳐온다는 편지가 수십 통 꽂혀 있었다. 무심코 그 한 통을 
뽑아 읽어 보니 '부디 나의 사랑이 나의 연인의 맘을 움직이게 하여 내가 그를 
사랑한 만큼 그도 나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하는 사랑의 주력을 기원하는 워싱턴의 
한 노처녀로부터의 편지였다. 광한루의 성춘향이나 대동강의 심순애가 이 애주의 
편지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들...하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외국의 여러 당파 싸움
  지금 굳이 줄리에트의 무덤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그 무덤 입구에 역시 
고색창연한 대리석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문구에 조명을 대고 싶어서인 것이다.
  '몬태규 가나 몬태규 가와 붕당을 했던 일당의 후예는 출입을 엄중히 금함' 이라는 
금구였다. 몬태규 가는 줄리에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연인 로미오의 출신 
가문이다. 곧 몬태규 가가 속한 당파와 카퓨레트 가가 속한 당파와의 반목과 갈등 
때문에 이 사랑이 이뤄지질 못했고 그 파당에 대한 원념이 이 소설적 연인이 죽은 
수백 년후 까지도 이 금구에 생동하고 있다는 것은 서양 사람들의 파당에 대한 
강인한 집념의 일면을 엿보여 주고 있는 것이 된다.
  마키아벨리의 "대공"에 보면 당시 유럽의 각 도시마다 분당 없는 도시가 
없었으며, 각 명가들이 이 분당에 속해 반대당끼리는 교제나 결혼은 물론 같은 
샘물도 먹지 않았으며, 교회가 하나밖에 없는 소도시에서는 당색별로 앉았을 정도라 
했다.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도 이 당색에 있었다고 투기디데스는 쓰고 있고, 로마가 
멸망한 원인도 이 당색에 있다고 기봉은 쓰고 있다. 그 거대한 고전 "플루타르크 
영웅전"도 당색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고, 세익스피어도 이 당색이라는 
배경이 없었으면 그의 작품의 분량은 반감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일리 있는 평가랄 
수가 있다.
  이 당색에 대한 집착도는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의 정당을 자식이 
계승하는 비율로 그 집착도를 가늠해 보면 영국의 경우 보수당이 89퍼센트, 
노동당이 92퍼센트가 아버지의 당색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고 있다. 사회계층의 
이동이 격심한 미국에서도 10여 년 전 조사로 74퍼센트가 아버지의 당색을 
물려받고 있다.
  이에 비해 이웃 일본은 가장 계승률이 높다는 보수 정당인 자민당의 경우 
55퍼센트가 아버지의 당색을 계승할 뿐이며, 그 밖의 사회당이나 공명당 같은 데는 
20퍼센트 내외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당색 계승을 살펴볼 만큼 정당의 역사가 깊지 않고 또 당색 변질이 
무상하여 살펴볼 수도 없겠지만 자식에게의 계승은커녕 자기 세대에도 몇 번씩 
변질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10퍼센트쯤이라도 계승될까 의심스럽다.

  유럽보다 강한 우리 당색
  옛날 우리 선조들의 당색 농도는 아마 어느 유럽의 다른 나라에 못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관광지가 돼 있는 청주 화양동은 중국 천자를 모시는 만동묘가 있어 
예부터 많은 선비들의 순례지가 돼 있었다. 옛날 그 화양동에 환장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그 절의 한 스님은 그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행태만 보고도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당색을 틀림없이 알아냈다 한다.
  이를테면 만동묘 앞을 지날 때 공경하고 근신한 뜻이 안 보이며 잘 떠들고 
활달하게 행색을 부리는 사람은 진보적이던 남인이요, 만동묘에 이르러서는 처마만 
쳐다보아도 감개 무량이 여기고 몸을 굽혀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수적인 
노론이요, 그저 산수 구경을 간단히 하고 만동묘 구경도 절차를 무시, 산수구경처럼 
해버리지만 절에 와서는 중을 곧잘 꾸짖으면 혁신적인 소론이라는 것이다. 곧 
자신이 속해 있는 당색이 인격이나 언동에 배어 버린 것이다. 옛 우리 선조들은 
이같이 당색과 인간이 절충 융합돼 있었던 것 같다.
  남인 가문인 영남의 거유 장여헌의 손녀는 같은 당색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엄한 
불문률로 역시 남인 가문인 안씨의 집에 시집을 갔다. 한데 부인의 아들이 벼슬에 
급급하여 조상 대대로의 당색을 배반하고 서인에게 붙었던 것이다. 이에 격분한 
부인은 자식과 별거했던 바 어느 날 할머니를 찾아 손자가 문안을 왔다. 무엇하러 
왔느냐고 꾸짖자, "집에 돌아와 할머니를 뵙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고 대꾸를 
했다. "집에 돌아왔다 했으니 이게 바로 네 집이냐."고 반문하자, "그렇습니다." 
라는 손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가마를 준비시키며, "선조부터 대대로 남인인 
내가 서인의 집에 거처할 수 없다." 하면서 남인의 당색을 지켜내린 딸 유씨 집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죽었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당색에의 강인한 집념은 당색에 따라 옷의 디자인이나 헤어 
스타일도 달리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노론 가문의 부녀자는 저고리의 깃과 섶을 
모나지 않고 둥글게 접었다. 치마 주름은 굵고 접은 수가 적으며 머리쪽도 느슨하게 
늘어서 찌었다. 이에 비해 소론 가문의 부녀자는 깃과 섶을 뾰족하고 모나게 
접었다. 이 모난 디자인을 '당코'라 불렀으며 소론 가문을 '당코'로 속칭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치마 주름 수도 많고 잘며 머리쪽도 위쪽으로 바싹 추켜 찌었다. 이같은 
옷매무새나 머리 모양은 그들 당의 정신과 너무나 잘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곧 노소론의 분당 원인은 주자학을 둔 보수적 해석과 혁신적 해석 때문이며 
곧 보수, 혁신이 그 분당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당코처럼 날카로운 디자인, 잔주름 
많은 치마, 바싹 올려붙인 머리쪽이 혁신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고, 완곡한 옷깃, 
굵은 치마 주름, 느슨한 머리쪽은 보수적 이미지를 물씬 나게 한다.
  우리 한국인의 당색은 인간만을 변형시킨 것이 아니라, 이처럼 복색 같은 
차림새마저도 변형시켰을 만큼 강인하고 집요했던 것이다.
  우리 근세사에 있어 10붕 8당의 당폐가 막대했던 것은 부인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같은 당폐는 비단 우리 역사에만 있었던 일이 아닌데도 일본 제국주의가 
그들 식민 정치의 필요성에서 이 부정적인 당폐 측면만을 과장시킴으로써 우리 
사색당쟁에 고질적인 마이너스 이미지가 부각됐다고 본다.

  긍정적 측면이 많은 당파심
  따지고 보면 이 한국인의 강인한 당파심에는 부정적인 측면만큼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1694년(숙종 20)의 환국 이래, 불우한 지위에 놓였던 
남인들의 강인한 당파에의 집착이 없었던들 우리 사상사에 획기적인 전기랄 
이익이나 안정복 등에 의한 구시의 실학이 형성될 수 없었으며, 또 남인 당색을 
혈맥에 섞는 짙은 농도가 없었던들 서로 핏줄이 통한 이가환, 정약용 삼형제, 그리고 
이승훈, 이얼, 권일신 형제로 맥락되는 그 많은 순교를 수반한 개화 사상도 그 
태동이 적잖이 뒤졌을 것이다.
  오히려 근대화 과정에서 이 강인했던 당론에의 집착도가 형편없이 해이된 것을 
슬퍼해야 할 일인 줄 안다. 당론에의 집착력이 완전히 이지러진 해방 후의 
개연성으로 다음과 같은 현상을 우리는 흔히 보아 왔던 것이다. 어느 한 지역 
사회의 유지가 처음엔 좌경의 건국준비위원장을 하다가 그 후에 우경의 
독립촉성회장이 된다. 여당인 자유당 위원장이 되었다가 자유당이 망하면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위원장이 된다. 다시 공화당이 여당이 되면 그 위원장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물결타듯 당을 타고 식은 죽 먹듯 당을 
바꾼다.
  또한 표변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민들도 도덕적 불쾌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그 변절에 둔감하다. 앞서 장여헌의 손녀인 장 
부인이 보이듯한 변절에 대한 처절한 저항은 꿈만 같은 이야기가 돼버렸다.
  소속된 당이 '장(field)'이요, 당을 배경으로 하여 모색하는 유지, 국회의원, 
고급관료 같은 감투는 '격(class)'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격의 사고보다 장의 
사고가 우선되고 강했는데, 오늘날 우리 한국인은 장의 사고보다 격의 사고가 한결 
강해졌다. 그리하여 당은 자신의 개인적인 격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그 
수단으로써 당이 무의미해졌을 때는 지지배배 철새가 된다. 격의 사고는 개인을 
위한 이기심에 뿌리를 두기에 철새가 되고 장의 사고는 집단을 위한 이타심에 
뿌리를 두기에 순교를 수반한다.

  당론을 바른 문화 유전질로
  정치 해빙을 맞아 많은 당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고 공천을 둔 정치 
후조들이 이당 저당을 기웃거리고 있다. 문제는 당이 많다는 데 있다기보다 당에의 
귀속 농도가 전혀 없이 안남미밥처럼 불면 날리는 버글버글 유리된 채 그릇에 담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당이다. 그렇게 된 복합 이유로서 당의 찰기랄 이데올로기의 
부재를 들고 이데올로기 정립에 부심한다고 들었다. 후조 생리를 막는 법적인 
규제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같은 이데올로기 정립이나 정치 후조의 규제는 지엽적인 방책일 수는 있어도 
근원적인 방책일 수는 없을 것이다.
  갑자사화 때 자신의 당론에 집착하는 바람에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투성이가 된 
채 옥문 밖에 내어던져진 대제학 홍언충을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동문이면서 
반대당인 김안로가 보고 '참혹하도다.'고 동정을 하자, 그는 '홍문관의 물이 묻어 
그러내.' 하였다. 홍문관에서 김안로와 더불어 글을 읽던 학문의 물을 몸에 묻은 
피로 비긴 것이다.
  김안로가, '지혜를 죽이고 학식도 몽매해져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못 가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하고 말하자, 홍언충은 '그렇게 되면 지옥에 가서 
외롭지 않겠는가.'고 고개를 흔들었다 한다.
  김안로 같이 당색을 악용한 부정적 측면만을 보지 말고 홍언충 같은 당론을 둔 
긍정적 측면의 문화 유전질을 우리는 두뇌의 구피질 속에서 아련하게 감지해 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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