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외 정보/버릇

변명

by FraisGout 2020. 9. 30.

  변명이란 말의 원뜻은 플러스 이미지의 말이지만 이 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연후에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마이너스 이미지를 지니게 된 
것이다.

  어느 한 회사의 입사 시험에 '변명'을 한문으로 표기하라는 문제가 출제됐던 일이 
있다. 그 결과 '변명'으로 옳게 쓴 수험자보다'변명'으로 쓴 수험자가 많았다 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한글 세대의 한문에 대한 무식을 탓하려고 이 사례를 머리에 
인용한 것은 아니다. 변명이라는 행위자체를 둔 한국인의 공통된 의식구조가 그 
답안을 쓴 한국인으로 하여금 공통된 오답을 쓰게 한 것일 게다.
  변명이란 말은 글이나 말로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는 뜻이다. 이 말뜻에 조금도 
마이너스 이미지가 곁들여 있지 않다. "주역"에 보면 '아무리 조그만 일일지라도 
변명이 있어야 한다.' 했고, "관자"에 보면 '사물이나 사리를 정하는 데 있어 변명은 
예외다.'라고까지 했다.
  이처럼 변명의 본뜻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말에는 그 어원은 좋은 뜻이라도 
그 말이 쓰인 문화적 배경 또는 그 말이 쓰인 나라의 의식구조적 배경에 따라 좋지 
않은 마이너스 이미지가 붙을 수도 있는 법이다. 곧 말뜻과 말이 풍기는 이미지는 
반드시 일정치가 않다. 
  이를테면 Gift는 영어권에서 '선물'이란 뜻으로 플러스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독일어권에서는 선물이라는 말뜻 이외에 독이나 원념의 뜻도 있어 마이너스 
이미지를 풍겨주고 있듯이....
  변명이란 말의 원뜻은 플러스 이미지의 말이지만 이 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연후에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마이너스 이미지를 지니게 된 
것이다.
  곧 우리 한국 사람들 틈에서 변명한다는 것은 불리한 자기 입장을 구제하거나 또 
자기 입장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기 위해 또는 자기의 과실이나 실책이나 죄과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교묘하게 말을 만들어 한다는 그런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그러기에 변명은 사실이나 진실의 표명이 아니라 사실이나 진실을 왜곡하여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게끔 조작적으로 표명한다는 개운찮은 여운을 끄는 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첫째 한국인은 인간관계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천명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는 의식구조상의 개연성이 있다.
  구미에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각자의 입장이나 의견이나 주장이 
왕성하게 제출되고 그것의 타협과 통합으로써 해결해 나간다. 곧 자기 자신의 
왕성한 변명이 선행되게끔 구조적으로 돼 있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이나 입장의 
분명한 천명 없이는 자아의 소멸이나 패배를 의미한다. 곧 변명없이 못 사는 
사회다.
  한국인의 의지결정도 구미인과는 전혀 다른 코스를 밟는다.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이나 의사를 분명히 표명하는 것을 피하고 신중하고 애매하게 
상대방의 생각하고 있는 바를 통찰해 가며 또 언제라도 수정하고 철회할 수 있는 
그런 단정적이 아닌 표현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곧 구름잡듯 한다. 그리하여 
그 의사의 결정은 구미인들처럼 대립적인 의견의 충돌결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사의 침투작용으로 달성된다. 즉 우리 한국인은 변명에 의한 서로의 대립이나 
대결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기피하는 점에서 가장 민감하고 또 노력을 아끼지 
않는 민족인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변명이라는 행위는 
한국의 집단이나 한국적 인간관계에 있어 부덕이요, 악이며 가치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처럼 '변명'없이 무슨 일이 이루어지고 의사가 결정된 후에 그 일이나 그 결정에 
결함이 생겼을 때 비로소 한국인은 자신의 입장을 변명한다. 곧 서양 사람은 사전에 
변명을 하고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서도 전적인 책임을 지는데 우리 한국인은 
사전에 변명을 하지 않고서 그 사후의 결과에 대해 잘됐으면 자기 때문이었다고 
변명을 하고 잘못됐으면 발뺌을 하기 위한 변명을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 핑계 잘 대는 성미가 곧 이 사후변명의 의식구조 때문인 
것이다. 핑계는 사후변명의 한국적 표현이며 핑계없는 무덤 없다듯이 한국인은 모든 
사물이나 사리의 결과에 대해 반드시 핑계를 대려 한다. 그것은 사전에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밝히는 그런 사전변명이 없기에 그 반작용으로 핑계가 발달한 
것이며 변명이라는 본뜻의 플러스 이미지가 한국 사람에게 변명이라는 마이너스 
이미지로 보편화된 이유가 이에 있는 것이다. 
  소도둑을 잡아 관가에서 족쳤더니 이 소도둑은 완강히 그 도둑질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다만 길가에 새끼 한 토막이 떨어져 있기에 그 새끼를 주워들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 새끼 끝에 소가 따라들어온 것뿐이지 소를 도둑질 한 것은 
아니었다고 우겼다는 우스개 이야기는 곧 한국인의 변명이 변명으로 이미지 다운된 
개연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인은 이처럼 자기 입장이나 의견을 분명히 
밝히는 사전 변명이 의식구조상 용납되지 않기에 사후의 결과 특히 실수나 과실, 
죄악, 무례, 부실, 나태, 소홀, 같은 마이너스 결과를 무화시키는 수단으로써 변명을 
악용해 왔으며 따라서 '변명'에 악이라는 의식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그외 정보 > 버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과 겉이 다른 한국인  (0) 2020.09.30
강한 주제의식  (0) 2020.09.30
공공적 미성년  (0) 2020.09.30
외적변화보다 느린 한국인  (0) 2020.09.30
한국형 개인주의  (0) 2020.09.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