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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436

동조병 술집에 갔을 때 상석에 앉는 사람이 웃옷을 벗으면 좌중이 모두 따라 벗는다. 상석의 사람이 벗지 않는데 벗는다는 것은 이 동시 동조성의 한국적 생리에 배반되어 결례나 무례감이 수반된다. 한국인의 평균의식은 일상 생활 속에서 동시동조성 행위로 곧잘 나타나기도 한다. 곧 남들과 동조함으로서 평균에서 모나지 않으려 한다. 외국의 식당에 들를 때마다 항상 불안한 느낌을 못 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못 면하고 말 것이다. 그 불안감은 반드시 메뉴의 내용을 잘 몰라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구미에 맞거나 개성을 내세워 음식을 먹을 수 없게끔 되어 버린 우리 농촌사회에서 심신이 굳어 버린 전통적 자질이 그렇지 않은 자질의 문화와 부딪쳐 생긴 하나의 문화충격 때문인 것이다. 곧 외국 식당에 .. 2020. 9. 27.
추종병 주체인 나를 일상 대화에서 증발시켜 버린 이유는 나의 의견이나 창의력이나 행동이나 책임을 주변상황에 전가시키고 주변상황 속에 자기 자신을 극소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별나게 자주 쓰는 말로 '별수 없다, 할 수 없다. 어차피, 차라리...'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말들은 자연이나 세상의 흐름에 내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을 포기하거나 체념하고 되는 대로 내어 맡긴다는 말들이다. 곧 어떤 상태나 상황에 접했을 때 개인으로서의 어떤 작용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날이 가물면 내가 가물게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연의 조화이기에 그것을 어떻게든지 극복하려 들기보다는 '할 수 없다.'고 체념해 버린 뒤 '어차피 하늘의 뜻대로, 세상 돌아갈 대로 되겠지.' 하며 그것에 거역하고 자신의 의지를 세워 .. 2020. 9. 27.
비축병 '해 묵은 쌀밥 먹는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한 해 두 해를 넘겨가면서 곡식을 축적해 두는 행위. 곧 그런 구두쇠하고는 상종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한말 고종 초기에 정가소라는 벙어리가 서울 남북촌의 양반들 사랑방을 전전하면서 무엇의 팬터마임으로 당시 세태를 풍자하고 다녔다 한다. 한말 독립협회의 회원으로 독립과 개화운동을 선도했던 윤효정이 쓴 "최근 60년의 비록"이란 책을 보면 이 정가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손짓 발짓과 이목구비를 형형색색으로 놀려 흉내내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 뜻을 혼연히 알게 하는 것이 말함과 다를 것이 없고, 오히려 말로 하는 것보다 재미있고 자상하니 능히 여러 사람을 웃기는 고로 별명이 정가소라, 남북촌 여러 재상의 집을 돌아.. 2020. 9. 27.
파당병 일본 제국주의가 그들 식민 정치의 필요성에서 이 부적정인 당폐 측면만을 과장시킴으로써 사색당쟁에 고질적인 마이너스 이미지가 부각됐다고 본다. 북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들른 분이면 젊든 늙든 간에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에트"의 모델이 됐던 줄리에트의 무덤에 들르게 마련이다. 줄리에트가 태어난 명문 귀족 카퓨레트가의 가족 묘지인지라 원주와 아치로 두른 회랑 안에 성상이 놓인 예배당이 있고, 등나무 덩굴이 자색의 꽃을 드리운 그 중정의 지하층에 줄리에트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묘소 입구 '줄리에트에의 우편함'이라 쓰인 대리석의 편지통에는 연중 세계 각지에서 줄리에트에게 부쳐온다는 편지가 수십 통 꽂혀 있었다. 무심코 그 한 통을 뽑아 읽어 보니 '부디 나의 사랑이 나의 연인의 맘을 움직이게 하여 내가.. 2020. 9. 27.
기로병 이것은 내가 한 짓이다. 명망과 노숙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재주와 덕이 노숙하기를 조금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이 좋다. 이에 이덕형 혼연히 심복하고 있다. 미국에 있어 1960년대는 인종 차별을 없애는 연대였고, 1970년대는 남녀 차별을 없애는 연대였으며, 1980년대는 연령 차별을 없애는 연대가 될 것이라고 미국의 사회운동가 잭 오소프스키는 말하고 있다. 곧 미국에 있어 차별 철폐의 역사는 레이시즘(racism, 인종 차별)에서 섹시즘(sexism, 남녀 차별)으로 발전하였고, 지금부터는 에이지즘(agism, 연령 차별)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이미 미국의 남 캘리포니아 대학을 비롯, 구미의 대학에서는 제론트로지(연령학)라는 새 학문을 체계화, 연령학과를 신설하고 있어 섹시즘 연대인 .. 2020. 9. 27.
동반자살병 한국인에게는 누명보다 더 큰 죄도 죽으면 동정으로 변질되어 죽음은 미화의 대상이었으며, 굳이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었다. 식물성 자살과 동물성 자살 병자호란에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때 상신 장유는 판서 이식에게 사사로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성이 만약 불행하게 된다면 선비로서 자살하기는 심히 어려우니 어찌해야 잘 죽을 수 있겠는가." 이에 이식이 말했다. "칼을 빼어 제 목을 찌르는 것은 장사의 할 일이지 선비로서 할 일은 못 된다. 우리 중신은 군부 옆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가 만약 난병에게 죽지 않고 잡힌 몸이 되면 굴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비록 내 목숨에 손을 대질 않더라도 적이 칼질은 할 터이니 잘 죽는 도리는 이 길밖에 없다." 이 난중의 두 선비들 대화는 우리 한국의 전통적 지식층의.. 2020. 9. 27.